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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팽의 왈츠

기자명 김준희

왈츠에 폴란드 색채와 프랑스 정서 담아 탈바꿈

간단 명료한 기본 리듬 안에 최고의 아름다움 담겨
초보자에게 왈츠는 수행자의 ‘초발심자경문’과 같아
가장 익숙하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

라드치빌트 공작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쇼팽.
라드치빌트 공작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쇼팽.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의 대강당에서는 매년 1월1일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대대로 궁정 무도회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의 작품들이 주요 레퍼토리다. 왈츠와 폴카 등 빈을 대표하는 춤곡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프로그램은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1920년대부터 주로 연주해왔던 작품들로 전 세계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을 비롯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Op.410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다. 원래는 오케스트라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되었지만 주로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된다. 도입부부터 유니즌으로 펼쳐지는 경쾌한 3/4박자의 선율은 환희에 넘치는 봄을 묘사한 사랑스러운 곡이다. 19세기 사교계의 무도회장을 떠올리게 하는 세 개의 왈츠가 등장하고 난 후 첫 번째 왈츠가 반복되며 끝나는 이 곡은 봄을 노래하는 듯 섬세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춤곡이라고 할 수 있는 왈츠는 3/4박자의 음악에 두 남녀가 원을 그리듯이 춤을 추게 된다. 무도회를 대표하는 춤곡으로 가장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무도회를 위한 왈츠를 연주를 위한 왈츠로 변모시켜 춤곡의 격을 한 층 끌어올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회에서 수준있는 작품을 감상하도록 했다. 그는 친숙한 선율들을 따뜻하고 폭넓은 관현악의 음색으로 표현했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왈츠를 무도회장에서 콘서트홀로 이끌었다면, 프레데릭 쇼팽은 특유의 피아니즘으로 연주회용 왈츠를 더욱 더 매력적인 장르로 변화시켰다. 조국을 떠나 음악의 도시 빈에서 활동하던 쇼팽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빈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많은 이들이 즐기는 ‘빈 왈츠’를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장르로 탈바꿈 시켰다. 쇼팽은 특유의 피아니즘으로 왈츠를 통해 화려한 기교와 서정성을 동시에 선보였다. 또한 그는 빈 고유의 왈츠에 그의 모국인 폴란드의 춤곡인 폴카와 마주르카의 색채, 그리고 세련된 프랑스적 정서를 함께 담았다.

특히 그의 왈츠의 주요 선율은 격조 있는 세련된 음악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각인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가 즐겨 연주하는 왈츠 Db장조, Op.64-1는 비바체(Vivace, 매우 빠르게) 템포의 작품으로,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드 상주의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느낌을 묘사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강아지 왈츠’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테크닉적으로 연주하기에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왈츠 특유의 친근한 리듬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공부한 학생들이 한 번 쯤 연주해 보고 싶은 곡이기도 하다.

쇼팽의 20여곡 왈츠 중 실제 춤곡의 정서를 지니면서도 쇼팽의 피아니즘을 잘 나타내는 곡은 화려한 왈츠 Eb장조, Op.18이다. 간결한 주제와 명확한 리듬이 돋보이는 이 곡은 우아한 서정성과 유쾌함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팡파레 풍의 서주에 이어지는 첫 번째 선율은 포물선을 그리는 듯 상승하다가 하강하며 반복된다. 경쾌한 리듬 위에 이어지는 3도와 6도 화음의 주제와 연타음을 통한 발랄한 프레이즈들은 많은 연주자들과 감상자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대해 “어느새 우리 모두를 춤으로 인도하는 곡”이라고 말했던 로베르트 슈만은 쇼팽의 왈츠를 두고 “그리운 추억과 이루지 못한 꿈들로 황홀감을 고조시킨다”라고 평하며 쇼팽의 기품 있는 작품세계를 극찬했다. 또한 이 곡은 ‘강아지 왈츠’와 더불어 학습자들이 무대에 올리고 싶어 하는 작품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왈츠는 명료하고 분명한 3/4의 리듬 덕분으로 상당한 친근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어린이나 비음악인들도 두 손가락으로 쉽게 연주 할 수 있는 ‘젓가락 행진곡(Celebrated Chop Waltz)'도 3/4의 왈츠 리듬을 바탕으로 한 소품이다.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장르가 왈츠인 것이다.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 음악을 작곡했던 타케미츠 토루(武満徹, 1930-1996)는 영화 ‘타인의 얼굴(他人の顔,1966)’에서 그가 작곡한 현을 위한 왈츠를 선보였다. 영화에 삽입된 작품이지만 수준 높은 예술성을 자랑하는 이 곡은 친근하고 익숙한 왈츠의 리듬과 강렬한 선율로 듣는 이로 하여금 영화의 내용에 몰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국적 애상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영화의 정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간결한 왈츠의 리듬이 가진 매력 덕분이다.

새해 첫날 익숙하고도 친근한 왈츠를 들으며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생각해본다. 특히 수행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좌우명과도 같은 야운(野雲)선사의 ‘자경문’은 재가 불자들 역시 평생 곁에 두고 보아야 할 지침이다. 수행자가 부드러운 옷과 좋은 음식을 수용해서는 안 되고, 자기 재물에 인색하지 말고 남의 물건을 구하지 말며, 좋은 벗만 가까이 하고 나쁜 벗과는 어울리지 말라는 등의 열 가지 내용은, 필자에게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는 음악인으로서의 다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가장 익숙하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쇼팽의 왈츠는 익숙함 위에 자신만의 음악적 개성을 얹어 더 많은 사람들이 수준 높은 음악을 감상하거나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기본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최고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을 들으며 새해 첫날 초심을 기억해 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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