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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가 엮어낸 화엄의 깊은 묘미

  • 불서
  • 입력 2021.01.08 19:13
  • 수정 2021.01.11 13:40
  • 호수 1569
  • 댓글 1

‘화엄경초역’ / 월운 해룡 역 / 신규탁 회편 / 운당문고

월운 스님이 1978년 쓴 책에 자신의 관련 연구를 보태 ‘화엄경초역’을 발간한 신규탁 연세대 교수가 스승을 직접 찾아뵙고 책을 드리고 있다.
월운 스님이 1978년 쓴 책에 자신의 관련 연구를 보태 ‘화엄경초역’을 발간한 신규탁 연세대 교수가 스승을 직접 찾아뵙고 책을 드리고 있다.

1978년 봄, 철학과 학생이었던 신규탁 연세대 교수는 숙세부터 이어졌을지 모를 지중한 인연과 마주했다. 바로 월운 스님이었다. 스님은 21살 때인 1949년 남해 화방사로 출가해 운허 스님으로부터 전강 받아 1959년 10월부터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강백이었다. 신 교수는 남양주 봉선사에서 스님을 처음 뵌 순간 저절로 평생을 모셔도 좋을 스승이라 여겨졌다. 그는 무시로 봉선사를 오갔다. 스님에게 한문불전 교육을 받고 종종 대화도 나눴다. 날이 갈수록 스승을 향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월운 스님은 경전을 번역하고, 주지를 맡아 절 살림을 했다. 사이사이 짬을 내어 후학들을 교육하되 게으른 모습을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강의를 물리치는 일이 없었고 늘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깊은 감동으로 각인됐다.

신 교수는 월운 스님을 가까이 하면서 교학에 뜻을 세웠다. 1994년 3월 일본 도쿄대학에서 중국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그해 봄부터 지금까지 모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젊은 철학도가 불교학자가 되어 숱한 저서와 논문을 쓰고, 불교 관련 학회들을 이끌었던 모든 일이 ‘스승’ 월운 스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셈이다.

2018년 스승의 구순을 기념해 세상에 유통되는 문장들을 모아 848쪽에 이르는 문집 ‘월운당 가리사’를 편찬한 신 교수가 이번에는 ‘화엄경초역’을 선보였다. 그가 스승을 처음 뵀던 1978년 발간된 책으로 월운 스님이 ‘화엄경’ 중 일상에서 자주 읽혔으면 하는 부분을 선별해 번역했다. 불교사상과 실천의 정수라는 화엄의 세계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한권으로 대폭 줄이되 화엄의 구조는 쉽고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 안목과 노고 덕에 바닷물을 다 마시거나 범의 터럭을 다 세지 않고도, 바닷물의 맛과 범의 털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월이 지나며 ‘화엄경초역’은 소수에 귀히 여겨졌을 뿐 일반인이 접하기는 어려웠다. 그 가치를 잘 알았기에 누구보다 애석해하던 신 교수가 책에 생기를 불어넣자고 다짐했다. 한 방울의 바닷물로 전체 바다의 맛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서였다. 동시에 스승의 은공에 조금이라도 보답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원문과 번역 외에 참고서적을 소개하고, 찾아보기를 첨부해 독서의 편리함을 보탰다. 지참에 편리하도록 4×6배판으로, 부드러운 표지에 한 손에 잡히게 장정했다. 무엇보다 신 교수가 그동안 지속해온 교학 관련 연구를 부록에 곁들인 게 특징이다.

화엄학과 선을 전공한 그는 ‘화엄경’이 설해진 이유, 경전 본문을 분석할 이유, ‘화엄경’에 담긴 교리의 범위와 양상, ‘화엄경’ 읽기의 10종 분과, 일상 독서를 위한 이 같은 단행본의 필요성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당나라 때 최고의 화엄학자인 현수법장 스님이 측천무후에게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을 일러주기 위해 사용한 ‘금사자’의 비유를 분석해 화엄의 핵심을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다. ‘화엄경’ 강학의 현주소, ‘화엄경’ 구조와 해석 지평, 별행본인 ‘보현행원품’의 유행 등에 대해 자세히 밝혔으며, 80화엄경 구조도와 3천대천세계설 및 화장세계해도에 대해서도 누구나 알도록 부록으로 덧붙였다. 한 권의 책으로 ‘화엄경’의 깊은 묘미와 교학적 이해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간행후기에서 “어른의 글을 만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새삼 느꼈다”며 ‘법화경’의 ‘권지품’ 구절인 ‘유원세존(唯願世尊) 불이위려(不以爲慮)’로 마무리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는 의미로 부처님에 대한 신 교수의 깊은 신심과 스승을 향한 극진함이 오롯이 배어난다. 2만3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69호 / 2021년 1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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