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의 ‘시간과 물에 대하여’
24.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의 ‘시간과 물에 대하여’
  • ​​​​​​​박사
  • 승인 2021.01.12 09:35
  • 호수 15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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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면 현실 위기가 보인다

기후변화는 어떤 사건보다 심각
당장 삶 바꿔야 겨우 지연 가능
위기를 신화‧역사‧경험에 녹여
자각 가능 현실 목소리로 전달 
‘시간과 물에 대하여’

부처님이 “있는 그대로 보라”며 가리키실 때, 부처님 눈에는 무엇이 보였던 것일까 상상했다. 우리가 겨우 부처님의 손가락 끝이라도 보려고 애쓸 때 부처님은 어떤 광대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고 계셨던 것일까. 부처님은 자신이 볼 수 있으니 같은 인간인 우리 또한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언해주셨지만 여전히 나는 못미더웠다. 내 손의 한 뼘 자로 지구의 둘레를 재볼 수 있을까? 돌을 힘껏 던져 닿는 거리가 몇 번이 반복되어야 달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아이슬란드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이다. 그는 지금의 긴박한 위기와, 그 위기를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과학자들의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지금의 급격한 변화가 “우리의 모든 과거 경험을 뛰어넘고 우리가 현실의 나침반으로 삼는 대부분의 언어와 은유를 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화산폭발음을 녹음하는 것을 예로 든다. 너무나 강력하고 압도적인 소리를 녹음하면 뭉개져 백색잡음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런 백색잡음에 불과하다. 그보다 사소한 문제에 견해를 표명하는 건 쉽다.(…)하지만 무한히 큰 것, 성스러운 것,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것이 결부된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한다. 그런 척도는 뇌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일어난 어떤 사건보다 심각한 일. 우리의 삶을 당장 직접적으로 바꾸어야 겨우겨우 지연시킬 수 있는 일. 그것을 가리키는 ‘빙하 해빙’ ‘기록적 고온’ ‘해수 산성화’ 등의 단어는 백색잡음처럼 의미 불명으로 지직거릴 뿐이다. 저자는 이 거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의 귀에 들리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다. 그 결과는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은 그 너머로, 옆으로, 아래로,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 개인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로 신화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는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개념을 우리가 만지고 상상할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바꾸어놓는다. 까마득한 과거인 것 같지만 살펴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경험한 일이다. 아득한 미래인 것 같지만 찬찬히 보면 우리가 쓰다듬는 아이가 살아서 볼 시간이다. “그게 네가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야. 250년 넘게 말이지.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단다.”

과학이 경고하는 기후 위기의 현실은 신화, 역사, 개인적인 경험 속에 녹아들어 비로소 생생하게 들려온다. 어마어마한 수치와 그래프의 세계를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세계의 목소리로 말한다. 달라이라마와 대담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는 아이슬란드와 티베트의 공통점을 찾아보다가 한 단어를 만난다. “아이슬란드어 단어 중에는 힌디어에도 있는 단어가 있다. ‘삼반드(samband)’와 ‘삼반드(sambandh)’, 둘다 ‘연결’을 뜻한다. 만물과 만물이 연결되고 모든 것이 서로 들어맞는다.”   

지나치게 압도적인 스케일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불교를 공부하던 초기에 부처님이 이야기하는 세계의 스케일에 압도되어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다. 그가 보는 세계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작고 너무나 하찮아서 먼지에도 비유하기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때 도법 스님이 말씀하셨다. “너무 크고, 너무 작은 건 문제가 아니야.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렇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우리의 눈이 담을 수 없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지금 눈앞의 현실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외로 간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부처님이 가리키신 것을 향해 눈을 돌린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69호 / 2021년 1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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