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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하인두의 만다라 : 심리학적 불성의 표상

기자명 주수완

만다라는 내면의 부처 끌어낸 방편

불교·정신치료 접목한 김종해 박사 영향으로 추상기술 확립
추상과 표현융합방법 불교서 찾고 만다라서 영향받아 가시화
불보살 배치로 구성된 기하학적 도형이 인간심상 꿰뚫어

하인두의 <만다라>(1982년, 왼쪽)와 일본 도지(東寺)의 <태장계만다라>(헤이안시대, 오른쪽).

서양화가 청화 하인두(靑華 河麟斗, 1930~1989) 화백은 우리나라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개척한 화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간략히 정의하자면 이렇다. 추상이란 자연적인 형체를 떠나 그 형체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본질을 추출하는 미술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추상은 객관, 보편을 지향하는 한편, 추상표현은 개인의 주관, 경험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하인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왜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평가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소 부족하나마 이처럼 짚어보았다.

법관이 되기를 바랬던 부친의 뜻과 달리 화가가 되고 싶었던 하인두는 형의 지원으로 서울로 올라와 서양화가 남관(南寬, 1913~1990)의 화실에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9년 홍익대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에 피난 갔다가 그곳에 피난 캠퍼스를 설치한 서울대에 편입하면서 화업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에게 있어 미술의 화두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나’에서 출발한 추상이 그의 추상표현주의가 지향했던 바였다. 불교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분이라면 그것이 곧 자신 내면의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성불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큰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은 동양철학자 범부 김정설(凡父 金鼎卨, 1897~1966)이었다. 하인두와 깊은 교류가 있었던 소설가 김동리의 형이기도 한 김정설은 유·불·선을 아울렀던 최치원의 풍류도와 최제우의 동학사상을 연결하여 독특한 한국철학체계를 확립한 학자였다. 하인두는 김정설과 교유하며 철학적으로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그림에 녹여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런데 김정설은 동학사상을 연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불·선의 통합이라는 의도에 맞게 불교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친분이 있던 경남 사천 다솔사의 주지 효당 최범술과 함께 다솔사에 기거하며 원효사상과 화엄사상에 대해 연구했다. 나아가 불교와 유교, 예를 들어 역(易)과 화엄을 비교하는 저술을 구상하던 중 196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과정을 함께 한 하인두 역시 동학사상에서 불교사상으로 관심이 옮겨갈 수 있었다. 더불어 그에게 불교사상적으로 영향을 준 분은 정신과의사인 김종해 박사였는데, 그는 불교수행법을 정신치료에 접목한 독특한 의사였다. 하인두 화백이 자신의 추상미술을 확립하는데 있어 김종해 박사의 도움이 컸다고 직접 밝혔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아마도 심리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티베트의 만다라에 관심을 가지고 정신과 치료에 응용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인두는 ‘만다라’라는 제목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하인두의 <밀문>(1977년, 오른쪽)와 일본 도지(東寺)의 <금강계만다라>(헤이안시대, 왼쪽).

그러나 언뜻 불교회화에서 널리 알려진 티베트의 만다라를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보면 과연 이것이 불교와 연관이 있는 작품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다라’라는 것은 일종의 불교적 우주관이고, 나의 내면세계의 투영이기도 하다.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하인두에게 있어 만다라는 일정한 규범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을 끌어내는 방편이었다. 만다라에는 법식도 있지만, 그것은 이해를 위한 원리일 뿐이고, 그것을 이해한 뒤에는 누구나 자신만의 만다라를 내면으로부터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끌어낸 자신의 깊은 내면은 알고 보면 부처이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그렇게 참된 자아와 마주하면 자신이 곧 부처임을 알게 된다. 결국은 모두 부처라는 보편으로 회귀하게 된다. 가장 개인적인 내면으로 파고 들었지만, 결국은 가장 보편인 부처에 귀결된다. 이것이 곧 화엄에서 말하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가 아닐까? 

추상표현주의를 선도한 하인두는 어떻게 추상과 표현을 하나로 융합시켜야할지를 불교에서 찾았고, 그것을 가시화한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다라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만다라의 겉만 흡사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언뜻 볼 때는 전혀 만다라처럼 보이지 않는 그만의 만다라를 자유자재로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만다라의 세부는 오방불, 팔대보살과 같은 다양한 불·보살로 구성되어 있지만, 만다라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각각의 존상이 아니라 불·보살이 어떻게 배치되는가 하는 기하학적인 도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인두는 이렇게 기하학적 도형이 어떻게 인간의 심상을 표현하는지를 꿰뚫어 보았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시각으로 보면 그의 1982년작 ‘만다라’는 마치 누애고치 안에 애벌레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아가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애벌레는 눈·코·입을 다 갖춘 어떤 존재이지만 아직 스스로의 완연한 모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말 그대로 태장계 만다라, 즉 아직 태 안에 들어있는 자아의 만다라를 표현인 셈이다. 겹겹이 중앙에서 바깥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태장계 만다라의 또다른 표현이다.

그에 반해 1977년작 ‘밀문(密門)’ 즉, 밀교로 들어가는 문을 보면 여러 개의 문이 질서있게 열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엄의 십지품처럼 단계단계 부처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한 금강계 만다라를 한마디로 압축한 듯한 그림이다.

그는 한국적 추상화라는 것 따위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열렬히 내면의 자신을 끄집어내고 싶었고, 불교는 그가 자신을 꺼낼 수 있는 사유와 만다라를 알려주었을 뿐이다.
 

하인두 <역동의 빛>, 1988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그는 정식으로 기독교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만다라적 미술은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그가 작고하기 1년 전에 그린 ‘역동의 빛’은 마치 화엄의 중중무진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거품우주처럼 여러 개의 우주가 공존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그는 이 중중무진에서 영생의 빛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어떤 우주에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지만, 어떤 세상에서는 죽지 않는 그런 평행우주의 빛을 그는 화엄의 세계에서 보았던 것 같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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