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모 사진작가
양현모 사진작가
  • 정주연 기자
  • 승인 2021.01.18 14:24
  • 호수 157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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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찍을 땐 ‘탑과 나’ 둘만 존재…번뇌 씻겨주는 나의 수행처”

패션·인물 등 상업사진 분야서 억대연봉 스타 작가로 불렸지만
2009년 우연히 만난 감은사지 삼층석탑 계기로 탑 사진 시작
“한국 석탑 웅장함·섬세함·단아함, 세계에 선보이는 작가될 것”
양현모 작가가 석탑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다. ‘빈티지 엔틱 아날로그 카메라’로 불린다. 석탑 본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손수 렌즈를 깎고 카메라를 조립했다.
양현모 작가가 석탑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다. ‘빈티지 엔틱 아날로그 카메라’로 불린다. 석탑 본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손수 렌즈를 깎고 카메라를 조립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일이 또렷하다. 2009년 늦여름, 여행을 좋아하던 양현모 작가는 오랜만에 경주를 찾았다. 시내에서 차로 30분만 가면 동해안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길 듣고,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 바다로 향하는 길이었다. 당시엔 고속도로가 없었고 국도만 있었다. 운전 하다 창밖을 보니 거대한 석탑 두 기가 보였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이었다. 호기심에 차를 세웠고 탑이 있는 언덕으로 뚜벅뚜벅 올라갔다. 이제 막 해질 무렵, 쌀쌀하고 어둑한 시간이었다. 

감은사지엔 석탑을 환히 비추는 조명이 있었다. 그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 탑 뒤 광경은 까맣게 보였다. 흰 탑과 까만 하늘이 조화를 이루며 웅장함을 뽐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절터에서 천년 세월을 홀로 버텨낸 석탑을 보는 순간 온몸이 찌릿했고 경외감이 들었다. 흘러온 시간을 꾹꾹 눌러담은 외로움과 서글픔도 보였다.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동해안이 있으니 그리로 가면 하루정도 묵을만한 공간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바닷가 앞엔 식당이 줄 지어있었다. 이견대(利見臺) 바로 아래에 있는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엔 ‘민박’이란 글씨도 함께 적혀있었다. 다른 곳보단 허름했지만 문무대왕릉이 잘 보이는 이견대와 전망이 비슷하겠다 싶어 그냥 묵기로 했다. 

저녁식사 후 2층으로 올라가자 천장이 낮은 방 하나가 있었다.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우니, 파도 소리도 거세게 들려왔다. 소리에 맞춰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떠올랐다. 탑을 본 순간 느낀 감정들, 까만 하늘과 흰 탑, 일렁이는 바다결이 소용돌이 치며 그를 건들였다. 잠깐 선잠에 들었으나 거대한 석탑이 파도를 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면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깨기도 했다.

잠을 설쳤다. 희뿌연 새벽이 되자마자 민박집을 나섰다. 다시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싶었다. 밤새 설레게 만든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해뜰 무렵 만난 석탑은 어제와는 또다른 감동을 줬다. 듣는 이 하나 없는 허허로운 절터에서 그는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엔 어떤 방식으로 석탑을 담아내고 어떻게 인화할 지 분주히 생각했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석탑을 찍었던 건 아니었다.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다큐를 전공했다. 졸업 후 1년 간 ‘동춘서커스’를 좇아다녔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곡예단 사람들 삶을 담아낸 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부초(浮草)’를 인상깊게 봤다. 서커스에 담긴 간절하고 절박한 꿈을 잔잔한 흑백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 시기 구본창 작가를 만나 사진의 묘미를 익혔다. 구 작가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 예술 사진을 정착시킨 이로 잘 알려져있다. 구 작가의 작업을 도우며 사진으로 대상의 내면세계를 세련되게 드러내는 방법을 차근차근 익혔다.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간 이유도 구 작가의 영향이었다. 독일에서 사진을 배운 구 작가의 조언으로 그도 유럽행을 택했다. 패션·인물 분야를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싶었다. 그래서 패션의 도시 밀라노를 선택했다. 인스티튜토 이탈리아노 디 포토그라피아(Instituto Italiano di Fotograpia) 사진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니 그 일이 적성에 제법 잘 맞았다. 

유학 기간 동안 통신원으로도 활동했다. 그 덕에 프레스 카드(press card)를 들고 보그·엘르 등 세계적인 패션잡지 촬영 현장을 누빌 수 있었다. 최고의 흑인 모델로 불리는 나오미 캠벨과, 샤넬이 사랑한 모델로 알려진 스텔라 테넌트 등 슈퍼모델을 이끌어가는 감독의 노하우도 익혔다. 1998년 이탈리아 밀라노 산 페델라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서울은 ‘광고시장 호황기’였다. 그는 강남 논현동에 스튜디오를 열고 보그·하퍼스바자·마리끌레르·메종·GQ 등 패션잡지 화보를 찍었다. 삼성·LG 등 대기업 의뢰를 받아 이나영·송혜교·한예슬·비(Rain) 등 이른바 ‘잘 나간다’는 연예인과 작업했다. 밀라노에서 익힌 경험을 도입했고, 업계에서 그는 ‘남다른 세련미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은 미모와 옷의 화려함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는 달랐다. 사람의 얼굴에 어떤 분위기가 잠재돼 있는지를 면밀히 살폈고 이끌어냈다. 잠재된 매력을 새롭게 해석해내니 그의 주가는 하루하루 솟구쳤다. 그 덕에 카드값 걱정 없이 사고 싶은 장비를 마음껏 살 수 있었고 그의 ‘큐’ 사인에 수십명 스탭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랬던 그가 돌연 “사람 대신 탑을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경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마감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일조차 흥미롭고 스릴있게 느꼈던 그였지만, 그날따라 유독 불편했다. 광고주·매니저의 재촉에 싫증이 났고, 한 번 사용한 후 가차없이 버려지는 사진은 그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천 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떠올랐다. 타인이 만족한 사진은 그동안 많이 찍었으니 이젠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찾고 싶었다. 

새 출발은 쉽지 않았고, 탑을 찍는 일은 고됐다. 억대 연봉도, 일사분란한 수십명의 스탭도 없었다. 조수 4~5명만이 그를 도왔다. 500kg에 가까운 장비를 들고 산속을 오르내렸다. 무거운 장비와 고된 작업을 기꺼이 감당한 것은 석탑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한다는 확고한 철학 때문이었다.  

석탑 본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싶었다. 시중에 나온 렌즈 선명도로는 탑의 피부를 담기 어려웠다. 손수 렌즈를 깎았고, 깎아낸 렌즈가 맞는 사진기가 없어 카메라를 직접 조립했다. 조작이 쉬운 디지털 카메라로는 탑을 진솔하게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아 아날로그 필름으로 구했다.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탑 정중앙에서 찍어야 했다. 8미터 높이의 석탑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4미터의 삼각대가 필요했다. 탑 뒤로 검은 장막을 설치한 이유는 감은사지 삼층석탑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가 봤던 까만 하늘을 표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모든 장비가 준비되면 그는 아슬아슬한 사다리 위로 올라선다. 스산한 새벽바람이 불어올 때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석탑을 응시한다. 작은 움직임에도 떨어질 수 있는 높이, 방심하면 모두가 다친다는 생각에 두 발에 힘을 꽉 준다. 

“탑에 온 신경을 기울이면 그 순간 탑과 저만 존재합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공간이 없죠. 정신이 맑아지고 오히려 몸이 개운해집니다. 그래서 촬영은 렌즈보다는 마음을 쉼없이 닦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양현모 작가가 사다리에 올라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촬영하는 모습. 이 촬영을 계기로 석탑에 매료돼 전국의 탑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양현모 작가가 사다리에 올라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촬영하는 모습. 이 촬영을 계기로 석탑에 매료돼 전국의 탑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석탑의 깊이를 담아내려면 무엇보다 교감이 중요했다. 양 작가는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 피사체와 교감하면 그 에너지가 필름에 스며든다”며 “교감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알아채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웃어보였다. 이어 “내 마음이 불편한 날엔 석탑에 매달린 고드름이 슬퍼보이고 기분이 상쾌하면 석탑이 물을 머금은 듯 반짝인다”며 “강릉 심복사지 삼층석탑과 마주한 보살상은 갈 때마다 표정을 달리해 나를 성찰시키는 거울”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예술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늘 기본에 충실한다. 양 작가는 “작가의 예술의욕, 미학적 태도, 감수성을 최대한 발휘해 석탑을 새롭게 응용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미학적 의도를 제거하는 게 석탑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판단해 내 견해·개성·감성표현을 가능한 한 절제한다”고 했다. 

한국 석탑의 아름다움을 세계 무대에서 확인받고 싶다는 양 작가는 “광고와 화보 촬영을 하며 세계 명소를 제법 많이 다녔지만 한국 탑과 견줄 수 있는 피사체는 보지 못했다”며 “그리스하면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하면 피라미드, 로마하면 콜로세움이 떠오르듯 대한민국하면 석탑이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석탑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2017년 12월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윌터 위키저 갤러리’에서, 2018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에서 ‘PAGODA’라는 타이틀로 사진전을 개최했다. 양 작가는 “현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도록 실물 사이즈로 인화해 한국 석탑이 가진 웅장함, 섬세함, 단아함을 세계인에게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8×10인치 필름으로 촬영한 것도 이를 염두해둬서였다. 코로나19가 끝나는 대로 해외 전시를 시작하겠다는 그의 포부가 남다르다.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에 단 한 장의 석탑을 찍고자 밤낮을 지새우는 그는 작가의 영혼과 흘린 땀이 서려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는 석탑에서 천년의 세월을 응시하고 그 내면을 오롯이 담아내는 역사의 기록자다.

 산해리 5층 모전석탑. 양현모 작가 작품.
신복사지 3층 석탑. 양현모 작가 작품.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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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 2021-01-22 11:44:02
좋은 기사 감사히 읽었습니다.
저는 우리 불교 행사에서 탑돌이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탑이 있는 절에 가게 되면 혼자서 탑돌이 합니다.
제 소원 중의 하나가 전국에 있는 사찰의 탑을 순례하는 것 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신복사지에 가서 탑과 보살의 대화를 엿듣고 싶습니다.
도세 도세 백팔 번의 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