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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와 관계하는 방법의 다양성

조상천도재 정당성 논증하는 것도 종학 역할

종잡을 수 없는 세상서 의도 선명히 하려면 ‘종’잡는 일 중요
종립대는 불교와 관계 맺는 방식이 일반대학과 다른 게 당연
대승부 경전이 불설 수용된 것도 대승논사들 논증이 큰 기여

세상에는 다양한 주장과 생각이 있는데, 그 속에서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학’이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사진은 천도재를 지내는 모습.
세상에는 다양한 주장과 생각이 있는데, 그 속에서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학’이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사진은 천도재를 지내는 모습.

사람들은 불교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이 질문을 좀 더 일반화해서 재구성해보자. 사람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보니 또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세상’은 무엇이고, ‘관계 맺음’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언어를 분석하고 논증을 염두에 두는 것은 철학을 전공하는 필자에게는 숙명이다.

신문에 쓰는 글이니 쉽고 선명하게 소통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결국 첫 문장에서부터 호되게 걸렸다. 문장을 바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종’을 잡으려 한 본래의 의도를 그대로 밀고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사실, 세상과 우리네의 인생살이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다 선명하게 하려면 결국은 ‘종’을 잡아야 하니,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세상’에 대해 말해보자. 불교를 포함한 인도철학 전통에서는 ‘세 종류의 세간’을 말한다. 필자가 자종(自宗)으로 삼는 화엄종의 교학(=화엄종학)에서는 첫째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국토인 ‘기세간’, 둘째 다양한 생명체들을 지칭하는 ‘중생세간’, 셋째 모든 부처님네들을 지칭하는 ‘지정각세간’을 꼽고 있다. 같은 불교이면서도 천태종의 교학에서는 첫째 중생세간, 둘째 국토세간, 셋째 오음세간을 들고 있다. 한편 대승불교의 강렬한 논적이었던 고대인도 6파 철학의 하나인 수론파(sāṃkhya, 상키야)의 교학에서는 천상, 인간, 짐승으로 셋을 들고 있다.

이상을 다시 정리하면, 우리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세상은 첫째 인간이 있고, 둘째 인간이 만든 문명(문화)이 있고, 셋째 자연이 있다. 첫째와 셋째는 우선 제쳐두고, 둘째의 ‘인간이 만든 문명’의 하나 속에 ‘불교’가 있다. 물론 그 ‘불교’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당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인데, 그런 ‘불교’와 사람들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이제 ‘관계 맺기’의 문제와 당면하게 된다.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전문적 연구와 교육은 대학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득이 대학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다. ‘일반대학’에서는 철학과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또 종교학과에서 그러는 경우, 역사학과에서 그러는 경우, 국문학과에서 그러는 경우 등이 있다. 관계 맺는 ‘방법’으로 치환해보면, 철학적, 종교학적, 역사학적, 문학적, 언어학적, 문헌학적, 민속학적 방법 등이 있다.

필자의 경우는 연세대에서 철학적 방법으로 불교와 관계를 맺는다. 철학에는 지식 방법상 크게 두 전통이 있다. 하나는 합리주의 전통이고 하나는 경험주의 전통이다. 필자는 방법적으로 이성의 직관보다는 언어의 분석을 존중하는 경험주의 전통에 서 있다. 이때의 불교는 철두철미 연구의 대상일 뿐이다. 연구에서 획득한 보편적 지식을 활용해서 인간을 포함한 생명공동체와 인간이 만든 문명(문화)과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에 대해서 갑론을박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야만 한다느니 저렇게 해야만 한다느니 당위적 주장도 한다.

불교를 ‘대상’으로 삼아 철학적 방법으로 얻어진 지식은, 다시 그런 방법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필자의 ‘주체’ 속으로 들어온다. 그 지식으로 재구성된 ‘주체’는 또다시 불교를 ‘대상’으로 삼아 새 지식을 만들고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는 변증과정의 연속이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는 남들이 평가할 일이다. 다만 필자는 부지런히 논문 쓰고 책 쓰고 발표하고 그렇게 교수생활을 1994년부터 해오고 있다.

‘종립대학’의 경우는 불교와 ‘관계 맺는’ 방식이 ‘일반대학’과 다를 수 있다. 조계종에서 세운 동국대의 경우, 조계종이 간화선을 종지로 표방하는 연장선에서 선학과를 설치하여 교수를 채용하고 그 방면의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게 한다. 한편 진각종에서 세운 진각대와 원불교에서 세운 영산선학대학은 종단 교학(종학)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교육한다. 창종의 종조나 개산조의 삶과 사상은 수용과 계승의 대상이지 비판이나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여기에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교조화이고, 장점은 서유럽의 중세 스콜라철학처럼 사변적 사고의 확장이다.

여러분께 감히 여쭙겠다. 불교는 ‘연구의 대상’인가? 대상화시켜 연구하는 철학에서는 어떤 종교의 교리와 믿음도 모두 의심 가능하다. ‘부처의 깨달음’ ‘신(God)의 존재’ ‘불법승은 삼보이다’ 등은 철학에서 볼 때 믿음과 선언일 뿐이다. 논증을 거쳐야만 ‘참인 명제’가 되었던아니면 ‘거짓 명제’가 되었던 판명된다. 저 유명한 인도의 ‘목샤카라 굽타’ 스님이 저술한 ‘타르카바아샤’에서 스님께서는 “전지자인 불타의 존재 가능성”의 논증, “윤회”의 논증 등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종학(宗學)의 한 사례이다.

참인 명제로 구성된 지식에 의존해서 행동해야 원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원하는 목적이 성취될 때에 그 명제는 참인 명제이다. 불교의 전통에서 지식(앎)의 획득 방법으로 두 가지만 인정한다. 하나는 ‘경험’이고, 둘째는 ‘추론’이다. ‘경험’과 ‘추론’에는 제대로 된 경우와 잘못된 경우가 있다. 제대로 된 경험과 추론만이 우리에게 참인 지식을 가져다준다. 물론 같은 불교라고 해도 지식의 성립 근거에 대해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와, 반야중관과, 유가유식과, 화엄법성과 서로 입장을 달리한다.

자종(自宗)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타종(他宗)을 비판수용하려는 노력들이 불교의 역사를 풍부하게 했다. 같은 불교라도 해당 공동체, 즉 종단의 전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자, ‘종단에 소속된 재가 또는 출가 여러분! 자종(自宗) 지식 이론에 입각하여 이상의 ‘경험’과 ‘추론’의 두 방법으로 여러분이 관계하는 절에서 말하는 왕생극락을 논증해보세요. 또 해마다 반복적으로 올리는 조상 천도재가 불교일 수 있는 정당성을 논증해보세요. 극악무도한 파렴치한에게도 불성 있음을 논증해보세요. 임신중절의 교리적 정당성을 논증해보세요. 또 선사들이 곧잘 운운하는 ‘생사가 본래 없다’느니, ‘마음이 부처이다’느니 하는 선법문의 교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논증해보세요.’ 이런 문제가 현실에 널려있고, 그 답을 내야 하는 종문(宗門)의 교학이 바로 ‘종학(宗學)’이다. 다른 말로 ‘종승(宗乘)’이라고도 한다.

철학의 방법으로 관계 맺는 불교와 종학의 방법으로 관계 맺는 불교, 그들의 주장(지식) 사이에는 교집합의 부분도 있고 여집합의 부분도 있다. 이 연재를 하는 의도는 필자가 종학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 아니고, 종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비달마 논사들의 논증과 논의가 있었기에 ‘아함부’ 경전이 전승되어 속뜻도 선명해졌고, 대승 논사들의 논증과 논의가 있었기에 ‘대승부’ 경전이 불설로 수용되어 내용도 선명해졌듯이 말이다. 불교 논사들에 저런 노력이 ‘종학’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주장과 생각이 있는데, 그 속에서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학’이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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