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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군정의 적산불하

기자명 이병두

일본인 종교재산 특혜 불하, 기독교 급성장 배경

패망한 일본이 남긴 토지·가옥에 100여개 기독교 시설 건립
사찰 수십 곳도 개신교계에 불하…장로교·성결교단 등 대표적
미군정 적산불하로 기독교, 천도교·유교 제치고 ‘3대종교’ 도약

서울 장충동 현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박문사. 원칙대로라면 불교계가 인수했어야 한다.
군정청에서 한국 최대 천리교 경성대교당 자리를 인수한 곳에 들어선 영락교회.

1970년대 말까지 서울 영락교회는 ‘세계에서 신도 숫자가 가장 많은 교회’라는 지위(?)를 오랫동안 누렸다.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명성교회·사랑의교회 등 곳곳에 대형교회들이 많아지면서 그 지위를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개신교 대한예수회장로회(예장) 통합 측을 대표하는 곳이다. 한편 서울 장충동에 자리 잡은 경동교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를 대표한다는 사실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교회가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제가 물러가면서 남기고 간 일본 천리교 교회 재산을 미군정 당국에서 ‘손쉽게 넘겨받았다’는 ‘특별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본 종교단체들이 남기고 간 많은 재산이 미군정의 관할을 받는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자리에 교회나 학교 등 100개가 훨씬 넘는 기독교 시설이 들어섰다. 일본 신사와 기독교 조합교회의 재산은 거의 대부분 개신교에 불하되었다. 장로교 총회의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 두 곳 다 적산을 불하받아 세워졌다. 천리교 교회를 인수하여 시작한 서울역 앞 성남교회에 있던 ‘조선신학교’는 한신대학교로 발전하여, 기장 교단의 모체 역할을 했다. ‘장로회신학교’는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로 발전하여 예장 통합과 합동 교단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뿐 아니라 장로교에서는 천리교 교회·신도 신사(神道神社)·일본인 교회·일본불교 사찰·일본군(軍) 기지 등과 적산 가옥·건물·대지 수십 건을 특혜 불하받았다. 성결교단은 전국에 걸쳐 불교 사찰 수십 곳을 불하받았고, 감리교단은 신사를 물려받은 곳이 많았다. 포항중앙교회(신사)·이리제일교회(불교 사찰)·의정부교회(신사)·부천제일교회(불교 사찰)·숭의교회(적산 건물·대지)·유성교회(적산 대지) 등, 개신교계가 대지 1000~2000평에 이르는 대규모 적산 종교시설을 인수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교 사찰 수십 곳과 신도 신사와 천리교회를 차지하게 해준 미군정의 적산 불하가 개신교에게는 한국 종교지형을 바꾸고 성장하는 ‘큰 힘’이 된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미국 신학교 출신으로 영어를 잘하고 북한에서 내려와 반공으로 무장한 한경직 등 목사들이 ‘적산 불하’를 미군정과 해결할 교단의 중요사업으로 정하여 적극 나서고, 군정청 안에 이들의 요구를 받아줄 고위직 개신교 인사들이 넘쳐난 덕분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시대 흐름과 세계정세를 잘 읽어내 일본인들을 ‘박해자’로 그리고 일본 종교를 ‘사교’(邪敎)로 규정하여 자신들의 적산 인수를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사교에 대한 승리’로 정당화하는 전술을 쓸 줄 알았다. 하지만 군경 유가족·고아·피난민 등 사회적 약자가 자리 잡은 보금자리를 빼앗은 경우도 많아서 겉으로 내세운 그럴듯한 명분과 달리 악행을 저지른 일이 많았던 사실을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

본래 미군정에서는 “일본불교의 재산은 조선불교에, 일본기독교의 재산은 조선기독교로 이속하겠다”고 1946년 2월과 8월에 분명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일본 개신교 재산뿐 아니라 천리교와 신사 재산도 개신교에 대부분 불하되고, 앞에서 말했듯 불교 사찰 수십 곳도 교회로 넘겨주었던 것이다. 한신대의 전신인 조선신학교 불하 문제로 군정청과 접촉했던 김재준 목사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이 재산을 접수한다”는 문서를 작성해주고 그곳에서 버티던 천리교도들에게 “불복하면 검속(檢束)한다”며 강제로 쫓아내준 군정청 관리들의 막강한 힘을 보고 “우리 자신들도 군정(軍政)이란 이런 건가 싶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물론 여기에는 김재준-한경직 목사의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 동문으로 군정청 고위직에 있던 남궁혁 목사의 역할도 컸다. 1945년 11월 천리교에서 가장 컸던 경성대교회와 두 번째로 큰 덕수교회를 빼앗아 영락교회와 경동교회로 바뀌는 과정에 대해 피해자인 천리교 쪽과 수혜자인 두 교회가 남긴 역사 기록을 보면, 개신교가 그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군정과 그곳에서 일하던 기독교인들이 엄청난 적산 재산을 빼앗아 넘겨준 데에 힘입어 급속성장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처음에 군정청이 내세웠던 원칙대로라면, 개신교회로 넘겨준 수십 곳의 사찰들과 서울 장충동의 박문사(현 신라호텔) 등은 불교계로 귀속되었어야 마땅하지만 당시 현실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웠고, 그나마 범산 김법린이 애쓴 덕분에 동국대학교가 남산 북쪽에서 일부 부지를 불하받는 정도에 만족하였던 것이다.

한편 가톨릭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에 주목하게 된다. 조선공산당의 당 기관지 발행소였던 서울 중구의 근택인쇄소[조선정판사]를 1946년 8월 하순에 인수하여 경향신문사와 대건인쇄소를 설립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창립한 ‘경향신문’이 훗날 박정희 정권 시절에 5‧16장학회로 넘어가기 전까지 거의 가톨릭 기관지처럼 운영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신자 급증을 견인해낼 정도로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1945년 민족해방 당시 소수 종교에 지나지 않았던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가 멀지 않은 시기에, 대종교‧천도교‧유교 등을 제치고 이른바 ‘4대종교’와 ‘3대종교’에 진입하여, 이제는 신도 숫자에서 1위 자리를 넘보게 되었으며 정치·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계속된 성장의 흐름은 미군정의 적산 재산 불하 과정의 특혜(기독교)와 탄압(불교와 유교 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적산 불하는 미군정 이후의 종교경관 형성이나 각 종교들의 경쟁력 구도에 장기간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좋은 조건의 적산을 많이 차지한 종교는 승승장구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마련한 반면, 그렇지 못한 종교들은 발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 되었다. 같은 종교 안에서도 번듯한 적산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교구, 교당, 단체, 학교 등은 그렇지 못한 곳들에 비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 적산에 대한 접근능력은 각 종교들의 경쟁력에 큰 격차를 빚어냈다.” 종교사회학자 강인철의 말이다.

요즈음 “과거 적폐를 청산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가까운 정권 시절의 적폐뿐 아니라 미군정 시기에 이루어진 일본종교재산과 적산 처리과정에서의 불교 탄압과 기독교 특혜와 같은 ‘적폐’도 샅샅이 밝혀내고, 불교재산은 불교계로 신도(神道) 신사와 천리교 재산이었던 곳은 국고로 환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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