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 - 상
2. 개 - 상
  • 김진영 교수
  • 승인 2021.01.19 10:10
  • 호수 15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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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왕이 인간의 왕 일깨워

약한 동물 향한 배려심 강조로
생명 존중 말한 부처님 본생담
현대인에 책임의식 가르쳐 줘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용어는 1983년 오스트리아 동물 행동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K.로렌츠가 ‘사랑스러워 구경하고 싶은 동물’을 뜻하는 애완동물(Pet Animal) 대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며 제안한 말이다. 반려동물은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이 키운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보편화되는 추세이며, 핵가족화, 고령화,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정서적 공감을 나누는 반려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이러한 반려동물 중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가족과 같은 동물로는 개(犬, kukkura)가 대표적이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는 개를 비천한 동물로 취급해 집 안에서 개를 기르는 경우가 드물다. 대도시 큰길가에도 피부병에 걸린 개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 떼지어 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하기 때문에 인도인들에게 개는 불쾌한 동물에 가깝다. 

하지만 고대 인도에서 왕과 귀족은 사냥개를 길렀고 무덤가 주변에 사는 떠돌이 개들과 차별하였다. 당시 인도 사냥개는 페르시아, 이집트 등으로 수출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원정 때 간다라 왕이 사냥개 150마리를 선물할 정도로 유명했다. 이에 비해 무덤가의 떠돌이 개는 화장(火葬)용 장작을 사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나 가난한 이들이 시신을 그대로 매장했기 때문에 가장 불결하고 천하게 취급하였다.   

부처님 본생담 중에 개의 전생이야기로 ‘쿡쿠라 자타카(Kukkura Jātaka)’가 있다. 북인도 바라나시의 왕 브라마닷타(Brahmadatta)는 사냥을 매우 즐겼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비오는 날 밤, 궁중에 사는 사냥개들은 비를 맞아 물렁해진 가죽 마구(馬具)를 물어뜯어 먹어치워 버린다. 다음 날 이를 발견한 왕은 크게 분노하고 이에 신하들은 떠돌이 개들의 소행이라고 둘러댄다. 

왕은 왕국의 모든 개를 죽이라 명하고, 개들은 포획되어 살상 당한다. 이에 크게 동요한 개들은 무덤가를 떠도는 ‘개들의 왕(kukkura-rāja)’에게 도움을 청한다. 부처님의 전생인 개들의 왕은 브라마닷타를 대면하여 사건의 내막을 묻게 되고, 왕은 떠돌이 개들이 왕실의 마구를 함부로 손상시켰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에 개들의 왕은 다바(dabha)풀과 버터 섞인 우유를 혼합한 용토약(涌吐藥)을 만들어 왕실 개에게 먹이면 진범을 잡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이를 먹은 사냥개들이 가죽 마구를 토해내자, 브라마닷타왕은 개들의 왕이 보여준 용기와 지혜에 감탄하면서 영예의 일산(日傘)을 하사하지만 개들의 왕은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왕이란 약한 자를 상해하지 않으며 약자를 위한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내리고 돌아간다. 이후 브라마닷타왕은 떠돌이 개들에게도 먹이를 나누어주고 왕국 내에 어떤 생명도 상해하지 말 것을 명하며 모두가 이를 지키도록 하였다. 

이 자타카에 등장하는 왕실 사냥개와 떠돌이 개의 이야기는 지금의 반려견과 유기견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우리나라 반려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푸들, 말티즈, 비숑, 포메라니안 등은 순수혈통의 해외 품종견이고, 선발육종(選拔育種, selection breeding)된 개체들로 선천적 유전병이 많고 치료비 자체가 비싸다. 품종견의 소유라는 과시적 애착과 상반되게 혼종견(잡종견)은 마당개나 공장개로 키워지거나 성견이 되면 유기해 버리는 방임의 방식으로 소비된다. 병들고 나이 들어 버려진 개들은 유기견이 되고, 이를 동물보호센터에서 포획하고 7일간의 공고기간과 10일간의 보호기간을 거친 후 안락사 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아픈 노견을 키우고 존엄한 장례를 치루는 반려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어리고 예쁜 품종견에 대한 끝없는 수요가 유기견을 양산하고 그들을 살상케 하고 있다. ‘쿡쿠라 자타카’는 약한 존재를 죽여서 얻는 거짓된 정의를 풍자하는 현대적 우화이다. 약한 동물에 대한 배려심을 강조하는 자타카 에피소드는 반려견과 유기견에 대한 현대인들의 책임의식을 요청하는 불교적 가르침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진영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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