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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도 연필로 씁시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탈 일이 생겼다. 언제나 그랬듯이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한다. 얼핏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의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공직을 맡지 않고 외유를 떠나기로 했다는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람의 기사였다. 순간 ‘의리’란 말 대신 퇴임한 대통령 곁에서 ‘말동무’라도 되겠다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왠지 의리란 말은 불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장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배신은 흔히 의리와 짝을 이루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굳이 G.E.무어의 주장을 빌리자면 ‘의리’는 사실과 존재의 영역에 속하고, ‘배신’은 가치와 당위의 영역에 속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의리와 배신은 곧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인식의 혼란을 가져왔다. 그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리켜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우리는 의리 있는 사람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과연 그럴까? 의리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배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의리와 배신은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자기가 생각하는 의리와 배신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일까? 

사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병폐인 혈연, 학연, 지연도 따지고 보면 그릇된 의리와 거기서 비롯된 배신의 정서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허위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인지상정까지 무시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삼국지연의’를 읽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의리와 배신이란 말은 어딘가 귀에 거슬린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의리와 배신의 정서는 소박한 이기심을 억압하고 거창한 이타심을 강요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치를 획일화하고 전체주의적 사고를 함축한 악성 바이러스를 유포하기도 한다. 추운 겨울날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효과는 두꺼운 옷 한두 가지를 입는 것보다 얇은 옷 여러 벌을 겹쳐 입는 것이 훨씬 더 크다. 우리들의 인간관계도 딱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못되면 언제든지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는 정도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가수 전영록이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고 노래 부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너무 어렵잖아요.” 그렇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의리로 시작하면 허무한 배신으로 끝나기 일쑤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하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런 자연현상을 가리켜 붓다는 ‘무상’이라고 갈파했고, 다윈은 ‘진화’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감정의 다이어트가 필요할 때다. 몸과 마음에서 동시에 힘을 빼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건강해진다. 무미건조한 맛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안에 은은한 향기가 번지는 와인을 좋은 와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언제나 의리를 지키는 사람도 없고, 이유 없이 배신하는 사람도 없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사회적 인간관계를 ‘친족선택’ ‘상호이익’ ‘호혜주의’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선택과 적응의 밑바탕에는 개체가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집단행동이 있다. 우리는 기껏해야 이기적 유전자의 탈것에 불과하다. 인간관계가 답답할 때는 가끔 과학지식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더이상 ‘의리(義理)’라고 쓰고 ‘이권(利權)’이라고 읽히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누군가를 향해 의리 없다고 비난하거나 배신했다고 절망하지 않을 것을 서원한다. 사랑만 연필로 쓸 일이 아니다. 인간관계도 연필로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필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덧칠하면서 차츰 진하게 써 내려가 보면 어떨까. 그런 관계는 금방 타오르지도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식지도 않는다. 의리와 배신을 함부로 말하는 세태가 못마땅하다고 흥분한 나머지 말이 조금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통 크게 이해해 주시기를.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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