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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개의 행실을 닦는 자를 교화하다

부처님은 계급 아닌 행위 따른 차이 인정

개·소 행실 닦으며 해탈추구
축생계 혹은 지옥 떨어질 뿐
독선 물든 잘못된 종교 행위
구원 아닌 파멸과 지옥 귀결

세상에는 다양한 종들이 존재한다. 종들마다 각각의 특징을 갖는다. ‘숫따니빠따’ 제3품에 ‘와셋타의 경(Vāseṭṭhasutta)’에서는 출생에 의해 바라문이 우월하다는 이야기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한다. 생물에게는 각기 출생에 따른 특징의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인간에게는 출생에 기인한 특징의 다양성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가르침인 것이다. 

부처님은 계급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인간들의 행위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셨다. 흔히 좋은 덕성을 갖춘 행위와 비열한 행위를 하는 자가 동등하게 평가받거나 대우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을 ‘행위론자’라고도 말한다. 

한편 수행을 한다는 사람은 자신이 실천하는 행위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다. 수행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른 수행의 방법이 아닌 삿된 수행을 하면서 수승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외도들 가운데 개를 흉내내거나 소를 흉내내면서 해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내용이 ‘맛지마니까야’ 개의 행실을 닦는 자에 대한 경(Kukkuravatikasutta)에 소개되어 있다. 한 때 부처님께서 꼴리야(Koliyā)국의 할릿다바사나(Haliddavasana)라는 마을에 머물고 계실 때, 소의 행실을 닦는 뿐나(Puṇṇa)와 벌거벗고 다니며 개의 행실을 닦는 세니야(Seniya)가 찾아와 부처님께 질문을 하면서 경이 시작된다. 먼저 뿐나가 개를 흉내내며 수행하는 세니야가 사후 어떤 곳에 태어날지 여쭙게 된다. 부처님은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거듭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신다.

[붓다] 뿐나여,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완전히 철저하게 개의 행실을 닦고, 완전히 철저하게 개의 습관을 닦고, 완전히 철저하게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히 철저하게 개의 행동을 닦는다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개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러한 계행, 이러한 수행, 이러한 고행, 이러한 청정행으로 나는 신이 된다던지 다른 하늘나라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지닌 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운명 즉 지옥이나 축생이 그를 기다린다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뿐나여, 그의 개의 행실이 성공하면 개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그것이 실패하면 그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이 경전을 읽다 보면, 그리스의 철학학파 중에 견유학파(犬儒學派)에 속하는 디오게네스(Diogenes, ? B.C.412~? B.C.323)가 생각난다. 그는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던 사람으로 나중에는 개와 같이 핥아먹고, 오줌을 누는 등의 기행을 일삼던 사람이었다. 그가 세니야와 같은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개의 행실을 흉내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신의 행위, 즉 개를 흉내내는 행위로 인해 신이 되거나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는 가르침이다. 실제 우리는 이와 유사한 행위들을 본다. 아집과 독선에 물들어 있으면서, 자신이 하는 종교적 행위가 혹은 수행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자신을 파괴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모두 파멸로 이끄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그러한 행위가 잘못인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이 갈 길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이며 지옥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개를 흉내내는 세니야와 소를 흉내내는 뿐냐는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잘못된 행위들을 버릴 수 있는지 가르침을 청하게 된다. 부처님은 그들의 청에 따라 네 가지 행위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셨다. 어떤 사람이 악의를 갖고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의도를 하게 되면 그것으로 고통을 경험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즐거움을 경험하며,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면 고통과 즐거움을 경험하고, 어떠한 것에도 속박되지 않으면 행위의 소멸로 이끈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듣고 세니야와 뿐냐는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버리고 뿐냐는 재가신자가 되고 세니야는 출가제자가 되어 오래지 않아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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