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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스콧 맥클라우드의 ‘조각가’

기자명 박사

부디, 죽음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하라

돌‧철에 순간 새기려는 조각가
그 삶에서 예외없는 죽음 보고
모두 멸하고 생긴 건 사라지니
취착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돼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시길, 붓다는 우리에게 매일 “다섯 가지 기억들”을 낭독하라고 권유했다. 늙어가는 본성, 건강이 나빠지는 본성, 죽는 본성, 변화의 본성, 그리고 “나의 행위는 진정으로 내게 속한 유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경구다. 죽음, 병, 이별과 같은 고통은 체험을 통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는데 영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내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는 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한때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는 말이 많은 문학청년을 사로잡았다. 문학도 살아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니 말 그대로의 뜻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매혹적으로 절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목숨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기개지만, 사실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객기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 스미스는 유명한 조각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하던 햄버거 가게에서도 잘리고, 집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돈도 없이 스물여섯 살의 생일을 맞는다. 혼자 술집에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마신 술에 취해 있는 그의 앞에 큰할아버지가 나타난다. 사실 그는 오래전에 죽은 큰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죽음의 신이다. 

아주 크고 굉장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만드는 꿈을 매일 꾸지만 돈도 자원도 시간도 없어 괴로워하던 그는 죽음의 신과 거래한다. 자유롭게 원하는 조각을 맨손으로 휘저어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받는 대신 딱 200일만 살 수 있는 조건이다. 200일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거래를 받아들인다. 그에게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이 생겼으니까, 200일 동안은 말 그대로 “목매달고 죽어도 좋을” 꿈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인생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의 작품은 그가 생각한 만큼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돈 없고 집 없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데, 설상가상으로 사랑에 빠진다. 남은 생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건 상대방을 괴롭히는 결과만을 낳는 것 아닐까? 그러나 메그는 어렵게 꺼낸 그의 말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들 둘은 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있는 매일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이 찾아온다. 그 마지막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온다. “이렇게 끝나선 안 돼”라고 오열하는 데이비드에게 죽음의 신은 말한다. “언제나 이렇게 끝나게 돼 있어.”그리고 모든 죽음은 울림을 남긴다. “인생의 순간순간은 바다와도 같다. 모두 뛰어들어. 용감히 뛰어들어라.”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안다면 삶은 지금과는 다를까. 미루고 도망가고 제처두었던 것들이 우선순위에 따라 투명하게 떠오를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확연히 보일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연못 속의 진흙이 가라앉듯 그렇게 분명하게 갈라설까. 데이비드는 모르고 메그는 알았던 것에 마음이 간다. 내게 있는 것이 ‘지금’ 뿐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시간에 맞서 이기지 못하고, 죽음에 맞서서는 더더욱 이기지 못한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지는 편에 속해 있다. 메그는 말한다. “시간에 맞서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적극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거야.” 메그의 목소리에 부처님의 말씀이 겹친다. 모든 것은 변하고 생성된 것은 사라지니, 그중 어떤 것도 취착할 것이 없다. 무겁고 단단한 돌과 강철에 순간을 새겨넣으려고 애쓰는 조각가의 건너편에 서서 그의 삶을 바라본다. 망각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는 것을, 한 젊은 조각가의 200일을 보며 배운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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