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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밤중에 감쪽같이 사라진 제천 정방사 불상과 불화

기자명 이숙희

“한낮에 사찰 구조 파악했다가 한밤중에 절도”

10년 만에 경매장서 등장…용천사 영산회상도 등 4점도
여래식법 및 아미타불 손모양 전형적인 조선후기 특징
나한도·독성도의 과도한 자유분방함 또다른 미감 보여줘

1)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689년, 높이 51cm. 필자 제공.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161-1번지 정방사 법당에 주불로 봉안됐던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좌상’<사진1>이 2004년 5월13일 새벽 2시경 도난됐다. 2000년 7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다. 아마 문화재 절도범들이 사찰에 불공드리러 온 것처럼 가장하고 낮에 법당 경내 구조를 살펴보았다가 한밤중 훔쳤을 것이다. 

높이 51cm, 어깨폭 20cm로 크기가 작은 상이다. 불상 내부의 발원문에 의해 1689년 3월 단응(端應), 보웅(寶雄), 유특(裕特), 탁린(琢璘) 스님 등 조각승 4명이 제작했으며 주불인 아미타불상 협시로 조성된 관음보살상임이 밝혀졌다. 아미타삼존불상으로 조성됐으나 현재 본존불인 아미타불상과 우협시보살상은 남아있지 않다. 또 불상의 후불탱인 ‘정방사 나한도’ ‘정방사 독성도’ 2점도 함께 도난됐다. 

10년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정방사 불상·불화가 모습을 드러낸 건, 2014년 6월2일경이었다. 서울 관훈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아트 옥션에 경매물품으로 등장했다.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서울 한 사립박물관장이 상환대금으로 문화재 31점을 양도했고, 그중 18점이 경매 의뢰됐던 것이다. 청도 용천사 영산회상도, 삼척 영은사 영산회상도, 청송 대전사 신중도 등 4점도 함께 도난문화재로 확인됐다. 이들 대부분은 경매장에서 압수한 후 불교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임시 보관됐다가 행정적, 법적인 절차가 모두 끝나면 원 봉안처로 되돌아간다.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이전 시기에 비해 크기가 아담하고 얼굴과 신체가 네모난 형태로 평면적 느낌이 두드러진다. 머리에 쓴 보관, 양 옆으로 뻗은 관대는 입체적으로 조각돼 화려하게 장식됐다. 보관 가운데에는 관음보살상의 상징인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얼굴에는 눈·코·입이 작고 단정하게 표현됐으나 표정은 전혀 없다.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여래식 법의’와 ‘아미타불의 손모양’은 조선후기 유행한 전형적인 특징이다. 법의는 양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입었고 오른쪽 어깨 위는 반원형 옷자락이 내려와 있다. 오른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다리 아래로 늘어졌다가 배를 가로질러 옷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슴 위로는 수평으로 입은 내의(內衣)가 있고, 끝부분에는 주름이 잡혀있다. 다리 사이로 펼쳐진 넓고 둥근 옷자락 역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이다. 왼손은 들고 오른손은 내린 수인은 설법인을 나타내며, 손 방향으로 볼 땐 주불인 아미타불상 왼쪽에 모셔진 협시(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여러 조각승이 함께 불상을 제작하고 불상 조성연대와 조각승 정보를 적어놓은 발원문과 복장문도 이 시기 불상의 주요한 특징이다. 정방사 불상 조성 당시 소임을 맡았던 단응, 보웅, 유특, 탁린 스님은 주로 17세기 후반 경상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조각승이다. 이들이 조성한 불상은 도상이나 양식이 거의 같고 조각솜씨도 비슷해 일정한 형식을 갖춘 불상양식을 보여준다. 

조각승은 화공(畫工), 양공(良工), 금어(金魚)로 다양하게 불린다. 시기마다 명칭은 약간씩 다르나 단순히 나이나 지위를 의미하진 않는다. 다만 불상 제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승려를 수화승(首畵僧) 또는 수조각승으로 구분할 뿐이다. 특히 수화승 단응 스님은 1656년 무염 스님과 함께 송광사 목조석가삼존불상과 오백나한상을 제작했다. 또 1684년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과 아미타목각불탱 등을 조성했다. 이러한 수화승은 조각승 계보에 따른 공통 불상양식을 만들고 지역적 특성을 형성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기도 한다.
 

2)정방사 나한도, 1900년, 125x79cm. 최선일 제공.
3)정방사 독성도, 1900년, 125x79cm. 최선일 제공.

‘정방사 나한도’<사진2>와 ‘정방사 독성도’<사진3>는 화기를 절단해 인위적으로 훼손했다. 다행히 일부가 남아있어 광무 4년(1900)에 그려졌음이 확인됐다. 탱화는 높이 125cm, 폭 79cm로 크기가 아담해 사찰의 큰 법당이 아닌 정방암(淨芳庵)의 작은 예불공간에 모셔졌음을 알 수 있다. 

나한도는 한 화면에 열 여섯분의 존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얼굴 표정과 몸짓이 다양하고 과장된 모습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해학적이다.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해 비를 내리게 하거나 수명을 연장시키는 나한의 위력을 보는 듯하다. 

명칭도 정확하게 ‘십육나한도’라고 해야 맞다. 얼굴 묘사에 따라 나이를 구분할 수 있다. 노인은 흰 머리와 수염, 긴 눈썹을 가졌고 중년은 검은 눈썹과 수염, 가는 눈썹을 가졌다. 머리 형태로 약간씩 달리 표현됐다. 앉아있는 자세도 서로 다르다. 등을 긁는 모습, 거울을 보는 모습, 귀를 파는 모습, 웅크린 모습, 손에 경전, 용, 학을 든 모습 등 다양하다. 

십육나한의 존명, 성격, 역할은 경전에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으나 형상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지 않아 다른 주제의 불화에 비해 자유롭게 그려졌다. 그리하여 나한도는 종교화이면서도 회화적인 성격이 강해 유난히 친근감을 주는 이미지로 인식돼 많은 이들로부터 신앙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독성도는 스승없이 혼자 도를 깨친 성자를 형상화했다. 흔히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부른다. 십육나한 가운데 제1존자인 빈도로존자(賓頭盧尊者)는 열반에 들지않고 영원히 세상에 머무른다는 특징, 흰 머리와 긴 눈썹의 묘사로 불교에서는 나반존자로 보고 있다. 특히 민간신앙과 결합돼 새롭게 전개된 독특한 신앙형태로 조선후기 널리 유행해 불화 주제로도 많이 그려졌다. 그래서인지 독성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괴석·산·소나무·구름 등 배경은 19세기 흔히 등장하는 민화 요소로 흥미롭다. 

도난 이후 가채가 됐는지 모르겠으나 필선이 경직됐고 굵은 편이며, 채색도 조선후기 주조를 이뤘던 적색·녹색이 줄어들며 청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진하고 탁한 느낌을 준다. 

정방사 나한도와 독성도는 조선후기 작품이지만 특이한 구성과 과도한 표현, 새로운 기물의 등장으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불화와는 또다른 미감을 보여준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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