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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욱  조계종 사회노동위원

  • 무진등
  • 입력 2021.02.01 14:12
  • 호수 1572
  • 댓글 0

“소수자도 차별 않는 평등 세상, 불교와 함께 만듭니다” 

고등학생 시설 성직자 차별 발언에 종교 반감 키워
약자 위한 스님들의 기도·오체투지에 진심 느껴져 
불교의 선한 영향력 확신…“소통창구 역할 하겠다”

소성욱 위원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전국을 순회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평등버스가 대전-부산-순천-홍성을 거쳐 천안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무지개 옷을 입은 소성욱(활동가명 소주, 30) 위원과 동료활동가들이 내리자 사방에서 모여든 개신교 신자들이 이들을 에워쌌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동성애는 질병이다” 등 모욕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고의적인 방해도 이어졌다. 갈등의 현장에서 매번 겪어왔던 상황이라 제법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지만 실은 피고름도 가시지 않은 상처 옆으로 또 다른 상처 하나가 자리 잡을 뿐이었다.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성애의 성적 지향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 심리학회가 2011년 작성한 ‘성적지향과 젠더 정체성’이라는 문서에는 ‘성적 지향이 자발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2014년 영국 신경정신의학회의 ‘성적 지향에 관한 선언문’과 2016년 세계 신경정신의학회의 ‘젠더 정체성과 동성애 성적 지향, 매력과 행동에 대한 선언문’에서도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라고 단언한다. 앞서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면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학계의 상식이 됐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성소수자를 마주하는 시선이 곱지 않다.

우리사회에서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모욕과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소 위원의 성장과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다. 모태 가톨릭 신자였던 소 위원은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성직자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동성애는 병이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외로웠다. 소 위원의 마음에서 종교는 고통을 주는 존재로 낙인 찍혔다.

차별과 혐오에 짓눌릴 수만은 없었다. 스스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온몸으로 맞서야했다.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2009년 대학생이던 소 위원은 학교 내 ‘성소수자 인권 모임’을 결성했다. 홍보물 제작, 성소수자 관련 영화 상영회, 피켓 시위 등 성소수자의 인식개선을 위해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성소수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수록 이들을 향한 반발은 거세져 갔다. 의욕 넘치던 소 위원도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차별과 혐오 앞에서 도전과 좌절을 반복했다.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학술대회(ICAAP, 이하 아이캅)에 청소년 위원으로 참여했다. 생소한 분야지만 HIV/AIDS 감염 청소년들의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공부했다. 더 소외되고 참담한 고통을 직접 확인하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소위원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2012년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을 개설했다. 기댈 곳조차 없던 청소년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단체명 ‘알’은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표현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HIV/AIDS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정기모임과 또래지지·옹호 프로그램, 인권캠프, 온라인 소통 커뮤니티, 인권침해 상담 및 대응 등 서로에게 ‘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하철  캠페인을 펼쳤다.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은 태산을 무너뜨리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버거웠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2018년, 성소수자의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과의 첫 만남은 변화의 시작이 됐다. 스님들은 불교계 단체로는 처음 부스를 차리고 연꽃을 나눠주면서 “차별에 물들지 말고 맑게 피어나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 짧은 덕담에 괜스레 환희심이 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료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불교계가 진행했던 부처님오신날 성소수자 법회에서 많은 위안을 얻고 왔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스님들의 차별 없는 모습에 지쳐있던 마음에 위안을 얻었고, 자연스레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불교가 있어 고맙고 참 다행입니다.”

이후 소 위원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노동자·장애인·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 약자의 인권 증진에 관심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불교와의 접점은 계속됐다. 그는 사회 약자들의 설움이 있는 곳이라면 달려갔고 그 자리에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있었다. 갈등의 현장에서 만난 스님들은 누구보다 간절해 보였다. 약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종교인이 적었기에 스님들의 활동은 더욱 특별했다. 마음 깊이 자리했던 ‘종교’에 대한 불신도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 했다.

“활동현장에서 스님들을 보면서 직접적인 이익이 없어 보이는데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거짓된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스님들에게서는 누구보다 사회 약자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약자들이 ‘자비와 사랑’으로 행복한 삶을 살길 발원하시는 스님들을 보면 참 든든하고 존경스러웠어요.”

소 위원과 사회노동위원회와의 인연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을 통해 더욱 견고해졌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해 8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는 평등버스를 운행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들에게 차별금지법은 더욱 절실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존재하는 모든 차별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이 차별인지 인지하고 멈춰달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차별받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무엇이 차별인지 국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가가 사회 약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13박14일의 일정 내내 소 위원은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과 같은 방을 썼다. 하루일과를 마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양 집행위원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사회의 차가운 시선,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까지 허심탄회하게 물어왔다. 오히려 감추고 쉬쉬하지 않았던 양 집행위원장이 고마웠다. 성소수자 문제가 낯설지만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고, 알면 도움을 주고 싶다 말하는 양 집행위원장의 따뜻함에 서서히 마음이 열렸다.     

양 집행위원장은 조계종 제4기 사회노동위원회 재가위원이 되어줄 것을 제안했다. 성소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성을 갖춰 접근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흔쾌히 승낙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스님들의 활동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의 힘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비방으로 점철된 타종교계에 비해 불교는 평등의 종교입니다. 불교계의 활동은 사회 약자를 바라보는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고,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시야를 넓히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1월19일 사회노동위원회 재가위원으로 임명된 소 위원의 어깨는 무겁다. 그렇지만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당당하다. 

“성소수자 인권문제는 제가 좀 더 잘 아는 분야이기에 불교와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기에 변화는 필요하니까요. 불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내 보고 싶습니다. 사회 약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도록요. 그것이 모든 불자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부처님 세상 아닐까요.”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572호 / 2021년 2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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