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使頂戴經塵劫 身爲床座徧三千 若不傳法度衆生 畢竟無能報恩者
가사정대경진겁 신위상좌변삼천 약불전법도중생 필경무능보은자
(설령 경전을 받들어 수지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지나더라도 / 이 몸이 침상이 되어 삼천세계에 두루 하더라도 / 만약 법을 전하지 아니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 마침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무능한 자가 될 것이다.)
구미 보천사 대웅전 주련에는 명(明)나라 임제종의 여근(如巹 1425~?) 스님이 속집한 ‘치문경훈’ 권 제4 가운데 ‘화상삼보'편에 나오는 게송이 새겨져 있다. 흔히 전법게(傳法偈)라고 한다. ‘치문경훈’에는 ‘전법을 함에 있어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경을 수지함이며, 두 번째는 경을 간독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경을 풍송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경을 해설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경을 서사하는 것’이라고 해 이를 전법유오(傳法有五)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게송이 누구의 글인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며 다만 여러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가사는 가령이란 표현으로 흔히 ‘예를 들면, 이를테면’ 이렇게 가정(假定)을 들어 설명할 때 쓰는 단어다. 정대는 머리에 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사정대는 ‘예를 들어 말하자면 누구라도 경전을 정성껏 받들어 수지하길’이란 표현이 된다.
경진겁(經塵劫)에서 경(經)은 경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가다, 통과하다, 보내다’라는 표현이다. 그러기에 뒤이어서 나오는 티끌처럼 많은 시간이라는 뜻을 가진 진겁과 어우러져서 ‘숱한 세월이 지나더라도’란 표현이 되는 것이다.
경전은 장식품이 아니다. 책이 책꽂이에 아무리 많더라도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또 경전을 아끼고 보호하며 귀히 여긴다는 마음으로 보자기에 싸서 옷장 밑에 넣어두는 것도 모두 ‘가사정대경진겁’에 해당한다. 그러기에 이 게송은 지금 경책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상좌(床座)는 침상을 말하며 이는 누울 때 쓰는 물건의 하나다. 문장에 따라 상좌(牀座)로도 표현된다. 이어서 나오는 변삼천은 ‘삼천세계를 두루두루 하더라도’란 표현이다. 구미 보천사 대웅전 주련에서는 편(徧)이라고 나타냈지만, 문헌 대부분에서는 편(遍)으로 쓰인다. 편(遍)이나 편(徧)은 뜻이 같다. 곧 ‘신위상좌변삼천’은 이 절, 저 절 분주하게 순례 하는 것을 말한다. 순례는 단순하게 여러 사원을 참배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사원을 방문하더라도 신심을 내 참배를 하고 경을 봉독하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봐야한다. 그냥 절만 세 번 하고 쑥 빠져나온다면 이는 순례가 아니고 관광일 뿐이다. 배우지 아니하고 이 절 저 절을 분주하게 쫓아다닌다면 도업을 이룰 수 없다. 늘 이러한 행위를 밥 먹듯이 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신심은 불자들의 기본이고 전법은 불자들의 사명이 돼야 한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전법을 구르는 수레바퀴에 비유하여 법륜이라 했다. 굴러가지 못하는 바퀴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법륜을 굴리는 것을 포교라고 한다. 포교의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러주어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이러한 것을 이름하여 ‘중생 제도’라 한다. 출가 사문의 근본 목적은 전법이다. 이를 외면하고 산중으로만 안거한다면 이는 생각해 볼 일이다.
이 게송은 예리한 칼로 무를 ‘댕강’ 자르듯 결론을 나타내고 있다. 불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지 못한다면 이는 부처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무능한 불자가 되는 것이다.
제발 부처님 말씀을 여러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며 포교를 밥 먹듯이 해야 한다. 그것만이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72호 / 2021년 2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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