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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컬러렌즈를 낀 눈 푸른 선지식

기자명 자현 스님

변화 두려워하면 ‘꼰대’ 전락

붓다 정신은 선제적 ‘전도선언’
‘현대파고’ 뚫고 삶아 남으려면
대처 빠른 젊은 선지식이 필수

‘푸른 눈의 수행자’라는 말이 있다. 불교가 ‘메이드 인 인디아’다 보니, 인도 문화권 승려들이 더 오리지널한 선지식이라는 의미다. 또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 선지식이었다. 연륜에는 반복되는 많은 노하우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소학’에는 ‘조정에서는 관직 높은 사람이 위에 서고, 일할 때는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앞장서며, 사랑방에서는 나이 든 사람이 어른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 존중 대상이 다르게 된다는 의미다.

현대에 들어서면 선지식의 개념도 많이 달라진다. 변화가 빠르다 보니, 어른은 선지식보다는 화석화된 ‘꼰대’로 인식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한 ‘라떼는 말이야’는 이와 같은 양상을 잘 나타내준다.

몇 년 전 조계종 포교원에서 ‘붓다로 살자 앱을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듣는 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더랬다. 휴대폰에 무엇을 다운받아 깔고 로그인을 해야 하면, 벌써 ‘사요나라’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제공한다 해도 진입장벽이 높으면, 아니 어떤 형태로든 진입장벽이 존재하면 그 자체가 사망각인 시절이다.

유튜브의 성공에는, 구글이라는 안드로이드를 가진 강력한 모기업의 존재가 한몫했다. 휴대폰을 사면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유튜브는 바탕화면에 천연덕스럽게 깔려 있다. 게다가 구글은 모든 계정을 통합하는 로그인 방식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유튜브는 네이버나 다음처럼 그냥 누르기만 하면 실행되는 매우 가벼운 환경을 갖추게 된다.

나는 포교원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판단은 분명 올드하다. 때문에 선제적이지 못하며, 변화를 주도하기 어렵다.

현대적인 변화의 수용에는 점잖은 선지식이 아닌 젊고 광기 어린 선지식이 필요하다. 이제 불교의 선지식 판단에 대대적인 재고(再考)가 요청되는 것이다.

노스님 중에는 스마트폰 쓰는 것에 익숙지 않아 ‘진품명품’에나 나올 것 같은 2G폰을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분들을 보면 조금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SNS를 안 하는 것이 승려의 본분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이런 분은 사실 ‘노답’이다. 노자가 말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 즉 원시사회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 같아, 고구마에 건빵을 말아 먹은 듯 답답하기 그지없다. 불교를 박제시켜 박물관의 진열품으로 만들자는 말인가?

현대사회에서는 변화를 타지 못하면 쇠락이 아니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가 될 뿐이다. 붓다의 정신은 복고가 아닌 ‘전도선언’에 있음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흔히 잘 모르는 분들은 전문가 하면, 그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는 제공되는 정보량이 너무나 많고 변화가 빠르다. 때문에 가장 빨리 어디를 찾는지를 알면 그 사람이 바로 전문가다. 또 요즘은 혼자서 모든 일을 주관할 수 없는 집단지성의 시대다. 그래서 현대라는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대처가 빠른 젊은 선지식들이 필수적이다.

유튜브를 하려면 선지식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의 눈 푸른 선지식은 컬러렌즈를 끼고 온다. 컬러렌즈 선지식인 셈이다. 사찰에서 선지식을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도분의 자재 중에서 찾는 것이다. 이때 제일 주의해야 할 부분이 바로 ‘섣부른 재능기부’의 요구다.

재능기부란 경제력이 안정된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일 뿐, 젊은이들에게는 노동착취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관계를 원한다면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참선에 눈 푸른 선지식이 있다면 유튜브에는 컬러렌즈의 눈 푸른 선지식이 있다. 이 선지식들이 갖춰지면 비로소 대항해 시대의 항로 개척이 가능해진다. 모든 제반 상황을 아는 것이 아닌 상태에서 선지식 없이 출발하면 로빈슨 크루소가 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572호 / 2021년 2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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