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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삶은 내 것이다

기자명 승한 스님

어릴 적부터 나는 손목에 염주 팔찌 끼기를 좋아했다. 까닭은 모른다. 까까머리 시절, 어머니를 따라 어느 절에 갔었는데(영광 불갑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노스님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른쪽 손목에 나무구슬로 된 염주 팔찌를 끼워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염주 팔찌를 항상 끼고 다녀라. 언제가 너에게 좋은 인연이 될 것이다.”

그 말씀과 염주 팔찌가 씨앗이 됐을까. 어떻게 어떻게 살다보니, 그리고 ‘눈뜨고’ 보니, 어느 날 내가 승려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내가 불교와 ‘첫’을 맺은 건 고3 때의 일이다. 사춘기의 지독한 늪에 빠져 온 세상의 고통과 괴로움을 내 한 몸에 다 짊어지고 허우적거리던 그해 봄, 나는 한 움큼의 흰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죽었다, 한 달 동안. 그리고 마침내 한 줌의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살아 있었다. 어느 날 ‘눈뜨고’ 보니 나는 왼쪽 팔뚝에 링거를 꽂은 채 노랗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병실 천장아래 누워 있었다.

퇴원 후 학교를 그만둔 나는 산에 있는 절로 갔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덕유산 용추사였다. 그리고 6개월간 행자 생활을 했다. 스님 따라 해인사도 다녀왔다. 불교와 나의 ‘첫’은 그렇게 맺어졌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불교는 나의 ‘좋은 인연’이 못되었던 같다. 술도 더 마시고 싶고, 여자도 더 만나고 싶고, 무엇보다 평생 동안 새벽 3시면 일어나 도량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고 까마득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하산해버렸다.

그리고 20년 뒤. 30대 중반이 지나 나는 다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 인연은 아직 ‘좋은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80년대 시퍼런 시대를 술과 뜨거움 하나로 관통해오던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6개월간의 병상 생활. 그 기간 동안 나의 방황은 끝이 없었다. 종교 편력도 대단했다.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천주교에서 원불교로, 원불교에서 증산도로, 증산도에서 어떤 사이비교로 떠돌았다. 제3의 종교를 포함한 그 어떤 종교도 내 침울한 영혼을 쉬게 해주지 못했다. 어떻게든, 기어코, 나는, 죽고만 싶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방랑 끝에, 비로소 ‘필연’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가 너에게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고 했던 그때 그 노스님의 예언이 나를 보듬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승려가 되었다.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알게 됐다. 세상과 사회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변하면’ 세상은 저절로 바뀐다는 것을. 온 세계를 잔인무도하게 집어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보면서 그것은 더 큰 확신으로 변했다.

얼마 전 새벽예불을 마치고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을 꺼냈다. 와타나베 쇼코가 쓰고 법정 스님이 옮긴 ‘불타 석가모니’라는 책이다. 재독(再讀)하는 동안, 그땐 몰랐던 불교와 나의 ‘첫’들이 떨리는 진리로 다시 들어왔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땐 만나지 못했던 부처님 가르침이 장장마다 쪽쪽마다 깊이깊이 배어있었다. 무참하게 죽어간 ‘정인이’를 다시 알게 되고, 세계를 다시 알게 되고, 코로나19를 다시 알게 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시 알게 됐다. 정의(진리)는 언제나 정의(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됐다. 

지금 나는 부처님을 향한 ‘첫’ 하나 때문에, 그래도 중(僧)답게, 인간답게 살고 있다. 그 ‘첫’은 이제 내 생명의 감로가 됐다. 깊숙한 산중에 있는 절이 아니어도 좋다. 코로나 블루 시대의 이 추운 겨울, 많은 분들이 절집 담장 너머로 은은히 들려오는 쇠북소리와 목탁소리를 만나보길 권하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한없이 맑고 따뜻한 삶의 기운을 받도록 기원한다. 결국 삶은 내 것이므로.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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