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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봄을 만들며

기자명 성원 스님

봄 맞아 웃자란 가지 정리하다
나무 아닌 나 위한 것임을 생각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세상 발원

햇살이 정말 쏟아지는 듯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매화가 가지마다 잔뜩 피어 있다. 겨우내 웃자란 소나무 가지와 하귤을 가리는 삼나무 가지를 높은 장대톱을 구입해 종일 자르고 치우다 보니 땀이 흠뻑하다. 눈이 내릴 때 밑둥이 늘어진 소나무 가지가 눈에 거슬려 오늘 이리저리 살피며 자르다 보니 마치 이발사라도 된 것 같다.

예전에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실제 영화 제목은 ‘The Barber of Siberia’였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인생을 걸어버린 러시아 초급장교 지망생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다 보니 ‘시베리아의 이발사’라는 원제목보다는 시베리아의 사랑이 훨씬 주제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미국의 사업가가 시베리아 한대수림을 마치 이발하듯이 싹둑싹둑 자르는 장면이 있어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하는 마음의 진심을 서로에게 바로 전해보지도 못하고 마는 애절함보다 조금 엉뚱하게도 시베리아 숲이 잘려가는 장면 때문에 마음속 눈물을 오래 흘렸었다.

봄이 온 제주의 바닷가에서 오늘 나뭇가지를 자르면서 엉뚱하게도 시베리아 벌목꾼이 자꾸 생각났다. 나무들이 잘 자라라고 자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보기 좋게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하면서 보낸다. 전하는 목적이 결국 자신의 생각을 복제하고 싶어하는 본능적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학창 시절 아메바를 처음 배울 때 아메바는 자신의 몸을 둘로 나누어 번식한다고 했다. 그때 ‘아메바는 왜 자꾸 번식하려 하느냐’고 선생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기만 하고 답을 해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메바의 번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자꾸 번식하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빵을 갖고 지나가다가 자기 아들에게만 빵을 주고 갔다. 그때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 떼쓰는 바람에 조끔씩 나누어 주기는 했던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면서 부모님께 “나는 커서 장가 가도 아이를 낳지 않고 입양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에는 자기 자식만 챙기는 어른이 못마땅하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야기했는데 부모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라 했다.

어린 시절의 생각은 잘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내가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기르면 나는 내 친자식과 똑같다고 생각하고 말하곤 한다. 내가 그렇게 말해봤자 신도들은 그저 웃다가 “아마 스님도 직접 자신의 아이를 가져보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나무를 자르며 나의 생각 속 세상을 자꾸 그려나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 자신도 아메바 같이 자신을 복제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것이 본능적 아상(我相)일까? 자신의 생각 때문에 살아가는 일생 내내 피곤하고 괴롭고 힘들다. 모두 자신의 생각을 생물학적이든, 철학적이든, 형이하학적이든, 미술, 음악, 그 어떤 예술의 형태로든 세상에 펼치고자 안달이다.

성원 스님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고서도 귀는 조금도 순해지지 않고, 입은 더욱 빨리 놀려지고, 생각은 망상이 멈춰지지 않으며, 온갖 주장하는 것들은 더욱 공고해지니 참으로 나는 200살까지 살거라고 이르고 있는 것일까?봄이 온 아름다운 정원에서 나 자신의 마음속 봄 정원을 만들면서 하루를 보냈다. 이제 봄은 내 마음속의 그림같이 다가올 것이고 내 아상(我相)의 나이테는 더 두터워만지겠지? 언젠가 한번쯤 온전히 너만을 위해 봄을 준비할 날이 이번 생에 오긴 올건가?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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