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통과 설법
6. 신통과 설법
  • 이제열
  • 승인 2021.02.06 17:04
  • 호수 157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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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소리에 머리 조아리는 이유

불경에 온갖 신통력 등장하지만
신통력 경계할 것도 항상 강조
“신통에 빠지면 지혜 등질 것”
‘설법 신통’만은 부처님도 권장

종교에는 세상의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들이 많다. 기적이나 신통은 빼놓을 수 없다. 물위를 걷고 허공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다.

불교에서도 부처님이 신이 아님에도 갖가지 신통을 썼다고 전해진다. 천상에 올라가 설법하고 지옥에 내려가 그곳 중생들과 대화를 하신다. 때로는 몸을 여러 개로 분신하거나 모습을 바꾸는 변신술도 쓰셨다. 부처님만 신통을 갖춘 것은 아니다. 부처님 제자들도 신통을 보였다. 마하 목갈라나는 신통이 뛰어나 ‘신통제일 목갈라나’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였다.

불교를 포함한 대다수 종교는 기적과 신통이라는 대중의 성취 욕구를 무시하지 못한다. 불자들의 경우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심리 속에는 자신의 정성이 부처님에게 전해져 기적과 신통의 힘이 미칠 거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굳이 불자가 아닌 일반인도 기적과 신통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지닌다. 누가 산에서 도를 닦았다고 하면 초능력이나 신통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도인이나 성인은 마음에 탐·진·치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신통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는 일과는 무관하다. 수당 시대의 우두종의 개조인 우두법융 선사가 한때 대덕스님들과 함께 당시 신심이 깊던 임금 팽성왕과 마주 앉게 되었다. 팽성왕은 법융 선사에게 예를 갖추지 않았고 설법도 청하지 않았다. 팽성왕은 “대덕들이 실제로 도를 깨쳤다면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불이 나오게 하고, 오른쪽 어깨에서 불이 나오게 하며, 허공을 날고 광명을 드러내고 땅을 진동시키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즉시 그대들을 스승으로 삼겠소.”

이에 법융 선사가 대답했다.

“이러한 신통은 불도와 어긋나기에 염려스럽습니다. 만약 대왕의 말씀처럼 그 같은 것이 성불이라면 환술사도 부처님일 것입니다. 옛날 석가세존께서도 승가에서 무상도를 설했지만 승가 대중과 다르지 않았고, 유마거사도 해탈과를 설했지만 속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승만부인도 대승법을 설했으나 여인의 모습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지혜가 변화하는 것으로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불도를 닦는 일과 이러한 초능력, 기적현상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히는 법문이다. 경전에서는 팽성왕 식의 신통을 극히 주의할 것과 삼매를 닦는 중에 신통이 발생하면 곧바로 버려야 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마하지관’에서는 “(신통은) 반야의 걸림돌일 뿐 아니라 재앙을 받는다”고 경고한다. 나도 불교 일을 하면서 그동안 경험한 것은 신통을 앞세운 사람들 치고 종국에 팔자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국법에 걸려 고생하거나 신상에 해로운 일이 발생해 파국으로 막을 내리고는 했다. 혹세무민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신통을 보였다고 하지만 번뇌가 다한 누진통의 경지와 그 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갖가지 무루 공덕의 힘이 있기에 무방했다. 부처님도 스스로 신통을 경계하셨으며 제자들에게 신통을 금하는 금계까지 내리셨다. 하지만 이렇게 기적과 신통을 멀리하는 불교에서도 한 가지 신통만은 적극 권장하고 있다. 바로 설법이다. 설법이 곧 신통력이라는 것이다. ‘보적경’에서 부처님이 문수보살에게 신통에 대해 묻자 문수보살은 “세존이시여 설법이 큰 신통변화입니다. 하열한 중생에게 대자비를 베풀어 방편을 써서 갖가지 법을 설하니 이를 능가할 신통은 없는 줄 압니다”라고 하였다.

신통과 기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설법 능력을 갖춰 중생에게 펴는 것이 기적이며 신통이라는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이 정법을 설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현상적인 기적이나 신통을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진정한 신통을 성취한 사람이다. 부처님께 귀의해 불자가 된 것은 예배와 기도의 차원을 떠나 설법을 듣기 위해서라고 여겨야 한다. 중생계를 벗어나 불계에 이르려면 설법을 듣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설법이라는 신통만이 중생의 공덕을 증장시킨다. 다른 신통은 미혹만 더하고 악도의 길에 빠지게 한다. 설법하는 소리에 머리를 조아려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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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도사 2021-02-21 11:13:13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합장

이덕순 2021-02-06 21:05:00
아주 좋은 기사다. 불교를 중흥시킬 놀라운 발언이다. 큰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불교계의 설법 수준은 최하위급이다. 밤낮 제사밥에만 매달린다. 실제로 영가가 신통을 부릴 수도, 영험을 줄 수도 없다는 걸, 스님들이 잘 알고 있다. 요즈음 49재. 천도재가 절간의 으뜸 존재 방식이 되었다. 여기는 감동도 가피도 가르침도 없다. 의식집을 반복해서 1~2시간 외워대면 수백만원이 떨어진다. 중세 면죄부 팔아먹기보다 더 악질적이다. 이것은 가난한 중생을 등쳐먹는 악행이다. 승가는 부끄럽고 참담하지 않은가? 진짜 신통 설법을 참구하고 밤새워 연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사 한판 끝내고 시장에 나가서 목이나 축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출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보적경'에 제일의 신통이 설법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