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제52칙 수산보리(首山菩提)
53. 제52칙 수산보리(首山菩提)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1.02.06 18:08
  • 호수 157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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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물물이 고불 가풍, 깨침 멀리서 찾지 말라

깨침으로 가는 방법 묻는 승에게
본래 여기가 깨침의 자리라 대답
깨침이란 이미 갖추어져 있기에
가까우면서 또한 왕래 쉽지 않아

승이 수산에게 물었다. “깨침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여기서부터 양현(襄縣)까지의 거리는 오 리이다.” 승이 말했다. “그렇다면 향상사(向上事)란 무엇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왕래하기가 쉽지 않다.”

본 문답의 요점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입장과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입장을 적절하게 섞어서 납자를 이끌어주고 있는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의 안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에 달려 있다. 상구보리에 대하여 향상(向上)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화중생에 대해서는 향하(向下)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라는 개념은 대승불교의 기치로 내세운 말이다. 이것은 출가하여 수도하는 납자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반야지혜를 깨치는 행위와 그것을 사람들에게 베풀어 교화해주는 행위에 해당한다. 수도하는 납자의 입장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깨치는 문제이다. 깨친다는 것은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고 중생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며 윤회의 삶을 끝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깨침이야말로 바로 출가의 본분사라고 말한다. 깨치는 것이 시주의 은혜를 갚는 것이고 불보살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평생토록 깨치지 못한다면 그대로 업이 되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승은 바로 이런 입장에서 묻고 있다. 과연 어떤 행위를 해야만 깨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 퍽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여기에서 승은 깨침으로 향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미 정해진 방식과 길이 있는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 그것은 경전에 들어 있는 것인지, 조사의 말씀에 담겨 있는 것인지, 홀로 좌선수행을 하는 것인지, 염불수행을 하거나, 주력(呪力)수행을 하거나, 기타 방식에 대하여 궁금했을 터이다. 아무튼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했기에 단적으로 질문을 제기하였다. 승의 질문에 대하여 수산은 승의 마음을 곧바로 직지(直指)하였다. 그것은 깨침에 대하여 일종의 도그마와 같은 법칙에 얽매여 있음을 파악하였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참으로 눈 밝은 선지식의 안목에는 그와 같은 납자의 질문은 가장 일반적인 유형에 속한다.

수산은 우선 깨침이란 특정한 것이 아니라 왕도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하였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양현이라는 지명을 들어서 그 자리로부터 매우 가깝다는 의미를 오 리의 거리에 있다고 일러주었다. 깨침이라고 해서 너무 신비롭다거나 지극히 고고하다거나 일반의 사람과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쯤으로 간주하고 있는 막연한 개념에 빠져 있는 승에 대하여 수산은 바로‧지금‧여기‧이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수산이 일러주고자 하는 것은 처처에 깨침이 없는 곳이 없어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그대로 깨침이고, 두두물물이 그대로 고불(古佛)의 가풍이므로 멀리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언제든지 출발하면 곧 바로 닿을 수 있는 거리의 지명처럼 승의 곁에 본래부터 깨침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나무라는 답변이다.

이에 승은 조금이라도 이해한 것이 있었던지 이제 정색을 하고 하화중생의 행위로서 교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기에 갈 수가 있는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물었다. 수산은 그와 같은 사고방식에 대하여 깡그리 부정해버리고 만다. 그것이 바로 왕래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수산의 가르침은 명백하다. 거리가 오 리라는 것은 깨침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경박한 마음을 일으킬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이제는 다시 왕래하기기 쉽지 않다고 말해준 것은 결코 당장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수산의 답변은 우선 자신을 깨치는 것이 바로 상구보리이고, 자신의 마음이 어리석은 경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곧 하화중생임을 드러내준 것이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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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다 2021-02-16 09:17:20
깨달음은 쉬운게 아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