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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실천운동본부 이사장 해광 스님

“소년원·교도소 모두 비워질 때까지 그들 곁에 있으리라”

청소년 시절 분노·방랑
돈 벌겠다며 울릉도행

3000원 받은 인연 소중
범죄 안 저지르고 귀가

선행회 만나서 봉사 시작
고아원·탁아소 아이 돌봐

소년원·교도소만 20여년
한 맺힌 이야기 가슴 아파

비행소년 낙인 너무 가혹
포용만이 재범률 낮춰

재탄생 의미 하얀 팝콘
“병마 극복 후 또 튀길 터”

독지가의 포차 시주 소망
주정차한 곳이 거리정사

​​​​​​​‘나와 그들 이야기’ 전하며
남은 생 멋지게 살고 싶어

“팝콘 기계와 성능 좋은 스피커 실은 탑차를 몰며 전국을 누비고 싶다”는 자비실천운동본부 이사장 해광 스님은 “제가 일으켰던 분노, 방랑을 고백하고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2020년 동짓날, 극락세계에서 법을 설하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량에 서 있는 지장보살상의 품을 지나 허름한 계단을 오른 찬바람이 무량수전을 밝히는 촛불에 닿았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말 없는 말’이 흘렀다.

“21년 지장기도를 지금 시작합니다!”

세납 6살 때 아버지는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공양주를 자처한 어머니를 따라 대전의 한 작은 절에 들어서고는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슴은 늘 먹먹했다. 가난해서 먹먹했고, 절에만 머무는 것도 먹먹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자괴감에 분노도 일었다.

어느 날, 울릉도에서 숙박사업 하는 형에게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세 명이 포항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뱃삯을 제하니 1000원이 남아 팥빙수 세 그릇을 주문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대전서 300원 하는 팥빙수가 포항에서 500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위 바위 보에서 져 ‘500원 탁발’에 나섰으나 거들떠보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난감했다. 얼마 후, 한 여성이 먼 발취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직감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학생, 여기서 뭐하고 있어?”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3000원을 건넸다.

“나도 고향이 있지만 갈 신세 못 돼 여기 있어. 지금 가진 돈이 부족해 차비는 못 줘. 울릉도에서 돈 좀 생기면 곧장 집으로 가.”
“돈 벌어서 꼭 갚겠습니다.”
“나한테 갚을 것 없다. 훗날 너도 누군가 도와!”

친구의 ‘형’은 숙박업을 하는 게 아니고 숙박할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노잣돈 벌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어렴풋이나마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울릉도에서의 여정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절에 온 스님들은 자주 이르곤 했다.

“단명할 상이니 출가해야 오래 산다.”

긴 방랑 마치고 자연스레 사문의 길을 걸었다.

고아원, 탁아소 아이들을 돌보는 모델들의 봉사단체인 선행회(善行會)와 인연이 닿았다.(1990) 적은 모델료라도 받으면 한 푼이라도 내놓아 신발 하나라도 사려했던 그들, 의류 행사 마치면 아이들에게 줄 옷부터 챙긴 그들, 손수 빨래까지 해 주며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그들은 참 아름다웠다. 아이들과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해광 스님이 주지로 있는 천안 자비사.

충남 천안 자비사(慈悲寺)에 안착하며 자비실천운동본부를 설립했다.(2000) 안산 소년원 지도위원으로 위촉되며 굴레 속에서 버겁게 살아가는 아이들 곁에 서기 시작했다. 들려주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아꼈다. 대신 자비실천운동본부 어머니회와 함께 손수 지은 음식을 건넸다.

3개월쯤 흘렀을까. 음식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설핏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읽혀졌다. 이것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소년원으로 향한 걸음은 공주 소재의 치료 감호소인 국립법무병원으로도 이어졌다. 울분에 차 있던 청년과 일대일 결연을 맺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 그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래도 곁에 앉았다. 6개월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입을 열었다.

“스님!”

새엄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보복 심리로 새엄마의 친딸에게 폭력을 가해 화를 자초했다고 했다. 울분에 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채 세상에 나가면 살인도 저지를 것만 같았다. 

“보고 싶은 사람 없느냐”는 물음에 청년은 “할머니”라 답했다.
“원양어선을 타라. 할머니 오래 봐야지.”

내면에 똬리 튼 한(恨)이 풀리기 전까지 바다에 나가 있어보라는 뜻이었다. 훗날 알게 됐지만 석방된 그 청년은 교도소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2006년부터 청송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던 해광 스님은 2007년 청주교도소 불교분과장을 맡았다. 말 한마디 함부로 할 수 없는 수감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사유 끝에 ‘선율’을 떠올렸다. 서울 종로거리를 뒤져가며 중고 악기들을 사 모으고는 불가대(佛歌隊)를 창단했다. 전자오르간 연주를 위해 하얀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가며 연습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 기뻤다. 청주교도소에 울려 퍼지는 찬불가 연주와 노래는 부처님을 향한 ‘절’이자 ‘참회’였다.

그 언젠가 ‘지옥이 비워질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되새기며 서원했다. ‘부처님, 소년원·교도소가 완전히 비워질 때까지 그들 곁에 서 있겠습니다!’ 소년원, 국립법무병원, 천안·청주·충주 교도소를 순회하며 음식 전하고, 심리치유 프로그램 열고, 불가대 지원하고, 형편 되면 영치금까지 넣어주고 있다. 검정고시 치르는 아이를 위한 기도와 응원도 잊지 않는다. 요양원이나 장애단체를 찾아가 후원금도 내놓는다. 하여 ‘돈 많은 스님’으로 아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니다. 대웅전 하나에 작은 요사채 두 개가 전부인 자비사의 전기세가 70만원까지 밀린 적도 있다. 대통령 표창(2013)과 법무부 장관 표창(2006)이 30년 봉사에 대한 보답이라면 보답이다.

재탄생의 의미를 담은 팝콘을 소년원과 교도소에 전해왔다.

소년원과 교도소에 공통적으로 전하는 게 있었다. 2018년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던 그것은 팝콘(Popcorn)이다. 업소용 기계를 가져가 교도소에서 직접 튀겨냈으니 팝콘 특유의 고소함을 외면한 사람은 전무했을 것이다. 기관의 특성상 일정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기에 기계 서너대를 온 종일 쉼 없이 돌렸다. 그런 공을 들여야 1500인분을 만들 수 있었다.
2020년 겨울로 접어들며 팝콘은 튀겨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여파 때문만은 아니었다.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옥수수를 튀겼던 때문이었을까! 기관지와 연관된 ‘큰 병’을 얻고 말았다. 의사 권유로 12월부터는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몸을 추스르고 있다.

‘팝콘 스님’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여기에 쏟는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노란 옥수수 알이 하얀 팝콘으로 피어납니다. 찰나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출현한 듯합니다. 이 놀라운 변화가 그들 가슴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누군가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그때는 꿈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목표도 분명했을 겁니다. 한 번의 과오로 그 모든 것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추억이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의지를 다지게도 합니다. 잠깐 즐기는 팝콘 타임이 ‘바르게 살겠다’는 의지를 세우는 전변의 일대사 인연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찬불가대회’도 개최하지만 토크쇼를 연상케하는 ‘음악과 함께하는 세상이야기 버스킹’도 열어왔다. 이때는 가요와 팝도 들을 수 있다.

“저 깊숙이 박혀 있는 한, 화, 울분을 스스로 끄집어내 풀어야 진정한 참회가 시작됩니다. 그 실마리는 ‘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시작을 조금이라도 앞당겨보려 추진한 버스킹입니다. 가족, 친구, 동행, 분노조절, 희망나눔 등을 주제로 질문하고 답합니다. 가슴 속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나옵니다. 그들만의 세상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참회도 깊어집니다.”

소년원의 아이, 국립법무병원의 환우(患友), 교도소의 수형자에게 “해광 스님은 어떤 존재”이냐는 물음에 “아이들의 가족이고 환우들의 보호자이며 재소자들의 벗이고자 한다”고 했다. 활동을 잠시 멈춘 지금 가장 눈에 밟히는 건 아이들이라고 토로했다.

“학교폭력 뉴스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의 강력범죄가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경미한 비행 사건이 대부분입니다. 청소년 강력범죄에 따른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서일까요? 실수, 호기심으로 저지른 가벼운 과오에도 ‘비행 청소년’ ‘범죄자’ 등의 낙인을 쉽게 찍는데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그 사회적 낙인이 반감과 분노를 일으켜 강력범죄까지 저지르게도 합니다. 진중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건 재범률입니다. 2018년 기준만 놓고 보아도 3년 이내 소년원으로 다시 돌아온 아이들 비율은 20%였습니다. 그들만의 책임일까요? 성인들이 져야 할 책임은 진정 없는 것일까요? 재범률을 낮추는 건 냉기 서린 시선이 아니라 따듯한 포용입니다.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아이들도 우리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1년에 10만km를 달리며 자비행을 펼친 해광 스님. 2017년 천안에 내린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에 자비사 역시 큰 피해를 입어 경황이 없었음에도 소년원과 교도소 가는 일만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병마에 걸린 상황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고 한다. 그래도 크게 건진 게 하나 있다고 했다.

“지난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 자비를 실천한 것인가?’ 고개를 저을 것도, 끄덕일 것도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주님들의 심부름 한 정도일 겁니다. 저 나름대로 마음을 다해 그들을 품으려 했는데 그 자체가 부족함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품는 게 아니라 모셔야 했습니다. 그들도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

해광 스님에게도 소망이 있었다. 독지가로부터 탑차(塔車) 한 대 시주 받아 팝콘 기계 장착해 전국의 소년원과 교도소를 돌며 팝콘을 나눠주고 싶었다. 그렇게 향후 10년 정도 더 봉사하고 남은 생은 소홀했던 절을 가꿔가며 신도들과 시간을 더 가지려 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절은 이 정도면 딱 좋습니다. 제 발길 닿는 거리마다 정사를 지으려 합니다. 기둥, 대들보 필요 없습니다. 팝콘 기계와 성능 좋은 스피커 실은 탑차가 머무르는 곳이 도량입니다. 소년원, 교도소, 양로원, 요양원으로 달려갈 겁니다. 강변, 바닷가를 지나 시골 마을, 도심 광장에도 정차합니다. 그곳에서 팝콘과 함께 제가 일으켰던 분노, 방랑을 고백하고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제 이야기에 공감해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마음 하나 일으킨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아, 이 병마를 물리친 ‘영웅담’도 빼놓지 않고 생생하게 들려드릴 겁니다.”

소년원이나 교도소의 연단에 오를 기회가 있을 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혹시 팝콘 드시면서 고맙다는 생각에 언젠가 보답하겠다는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진정 그러하시다면 저에게 갚을 건 없습니다. 다시 자유를 얻으면 누군가를 도와주세요!”

해광 스님 마음에서 솟은 선한 영향력이 우리 사회 저변에 퍼져가고 있다. 그 선함과 자비가 부처를 만들고 정토를 일구고 있다. 탑차 인연은 맺어질 것이고 거리정사는 세워질 것이다. ‘21년 지장기도’ 역시 원만회향 할 것이라 믿는다. 수술만 잘 끝나면 될 일이다! 자비사 마당에 내린 2월의 빛이 따듯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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