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수행 한선희(청지, 49) - 상
염불수행 한선희(청지, 49) - 상
  • 법보
  • 승인 2021.02.07 13:40
  • 호수 15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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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스님 소개로 봉화사 인연
인터넷 ‘새벽명상기도’ 참여
매 아침 정성 들여108배·발심
청지, 49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참 많이 바꾸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장기화됐고,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고, 삶이 비대면을 요구하게 되었다. 절에서 기도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그래서 주지스님은 ‘동안거 100일 기도’를 ‘봉화사 밴드’에 올려주시기로 하셨다. 원래 간단한 봉화사 소식과 주지스님이 법문해주시는 작은 소통창구였는데 ‘라이브 새벽명상기도’를 시작해주신 거다. 집에서 멀어 자주 가보지도 못하면서 내려갈 수 없다니 동안거 기도가 얼마나 애틋했을까. 나에게 라이브방송은 큰 선물과도 같았다. 사실 집에서 혼자 기도하는 게 좀 쑥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혼자 하다보면 쉽게 포기하게 되는데 기도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화면 속 스님과 함께 명상과 108배를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지리산 끝자락 고즈넉한 하늘의 풍경이 장관인 봉화사 법당에 있다.

5시30분! 알람소리에 깨어나 앉는 것으로 일상이 시작된다.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세수하고 물 한모금 먹고 정신을 차린다. 5시45분이면 봉화사 밴드 ‘행복가득 수행쉼터’ 라이브가 시작된다. 도반들의 출석체크로 눈인사를 나눈다. 맑은 종이 울려퍼지며, 스님의 음색으로 자비명상을 시작하고 108배로 아침기도를 마무리한다. 봉화사에서 하는 108배는 주지스님께서 만드신 것으로 특별하다. 내용은 이렇다.

나는 본래 행복한 존재! 지금 바로 행복하기를!/내 자신을 비판치 않고, 친절하게 돌보기를!/좋다! 싫다! 분별버리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나와 다름! 틀림아니니,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나의 삶! 모두의 덕분, 감사하며 베풀기를!/내게 일어난 어떤일도, 그만큼에 감사하기를!/미소는 아름다운 내 모습, 늘미소 짓기를!/힘들수록 미소지어, 마음이 평화롭기를!/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이 행복하기를!/당신은 또 다른 나의 모습, 당신이 행복하기를!/나는 연기적존재!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결정코 극락왕생, 부처 뵙고 성불하기를!

이걸 아홉 번 하면 108배가 된다. 몇 분 만에 해치우는 게 아닌 한 배 한 배 온몸으로 기억하는 108배를 한다. ‘자비송염불명상’과 행복해지는 ‘자비송 108배명상’은 내 하루의 첫출발인 셈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기도는 헝클어진 내 머릿속을 잠시나마 쉬게 해준다.

돌이켜보면 나와 봉화사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10여년 전 나는 집 근처 작은 절에 다니고 있었다. 스님께선 종종 나를 데리고 봉화사를 다녀오셨다. 4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고도 비포장도로를 따라 2km쯤 더 들어가야 했다. 봉화사에 처음 갔을 땐 해뜨기 전 새벽에 도착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흙 같은 어둠이라 밤하늘 별들이 유난히 빛났던 곳이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너무 좋았던 곳이었다. 날이 밝고 절 풍경을 보았을 땐 내가 생각했던 큰 절이 아니었다. 산비탈길에 위치한 조립식 법당. 산길 옆에 작은 컨테이너 몇 개가 전부인 절. 화장실은 낭떠러지 위에 있었고 공양간은 작은 컨테이너에 싱크대 하나 놓을 정도였다. ‘겨우 쌀 몇자루 챙겨 내려오실려구 용인에서 하동까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은사스님과 봉화사 주지스님은 도반이셨다. 불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한달음에 내려오셨다는 걸 그땐 몰랐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은사스님께서 돌아가셨다. 은사스님께서 살아생전에 늘 말씀하셨던 “수행하는 스님이시다. 공부하는 스님이시다”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봉화사에 은사스님 재를 모시게 되었고 봉화사 불자의 일원이 되었다. 나에게 봉화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며 머나먼 곳이었다.

그래서 맘속 거리두기를 했었다. 일부러 용인에서 밤 12시 출발해 새벽기도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다른 신도들과 부딪히는 게 불편해서였다. 사시기도 후 다들 식사하러 내려가면 나는 산신각에서 기도하고 내려왔다. 불심이 가득해서가 아니다.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싫고, 쓸데없이 웃어야하는 것도 싫었고, 관심 없는 대화에 장단 맞추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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