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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하깟사빠 존자의 일화

기자명 마성 스님

정진 존경 분위기가 훌륭한 수행자 배출한다

붓다시대 수행 않고 말썽 일으키는 출가자 늘어나 계율 제정돼
유익한 법, 교계하는 비구들 많아야 퇴보 아닌 향상 기대될 것
마하깟사바, “수행자의 좋은 덕목은 소욕·지족·한거·정진 열의”

태국의 수도원은 정진 기간 동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출을 금지한다. 탁발하려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수도원의 식당에서 조리한 음식을 각자 배식 받아 강당으로 돌아와 먼저 도착한 사람은 기다렸다가 다 모였을 때 함께 공양한다. 공양 시간에는 담화를 일체 할 수 없다. 사진 속에 필자의 모습도 보인다.
태국의 수도원은 정진 기간 동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출을 금지한다. 탁발하려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수도원의 식당에서 조리한 음식을 각자 배식 받아 강당으로 돌아와 먼저 도착한 사람은 기다렸다가 다 모였을 때 함께 공양한다. 공양 시간에는 담화를 일체 할 수 없다. 사진 속에 필자의 모습도 보인다.

붓다의 뛰어난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마하깟사빠(Mahākassapa, 摩訶迦葉) 존자는 스승인 붓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스승인 붓다를 찾아뵙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 붓다는 그를 높이 평가했고, 자신과 동격으로 여겨 다른 비구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라고 부탁했다.

‘오와다-숫따(Ovāda-sutta, 敎誡經)’(SN16:6)에 의하면,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을 찾아뵈었다. 그때 붓다는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깟사빠여, 비구들에게 교계(敎誡: 가르치고 훈계함)하라.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라. 깟사빠여, 나 혹은 그대가 비구들을 교계해야 한다. 나 혹은 그대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SN.Ⅱ.203-4)

이처럼 붓다는 마하깟사빠 존자를 자신과 동격으로 예우했다. 그 이유에 대해 주석서에서는 “장로를 당신의 위치(ṭhāna)에 놓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SA.Ⅱ.173)이라고 했다. 즉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다. 주석서의 해석은 신뢰하기 어렵다.

어쨌든 마하깟사빠 존자는 스승인 붓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비구들을 교계할 마음이 없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비구들은 훈계하기 어려운 성품들을 지니고 있고 인욕하지 못하고 교계를 받아들임에 능숙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월폴라 라훌라는 “지금의 비구들은 순종하지 않고 완고하게 굴며, 편협하고 충고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저는 아난다(Ānanda)의 제자 반다(Bhaṇḍa)라는 비구와 아누룻다(Anuruddha)의 제자 아빈지까(Abhiñjika)라는 비구가 서로 ‘비구여, 누가 더 많이 외울 수 있는가? 누가 더 잘 암송할 수 있는가? 누가 더 오래 암송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SN.Ⅱ.204)

이것이 마하깟사빠 존자가 비구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라는 붓다의 요청을 거부한 이유다. 즉 지금의 비구들은 법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예로 반다와 아빈지까와 같은 비구들은 아직 배움의 단계에 있음에도, 자기들이 최고로 많이 알고 있다고 서로 다투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탄식이다.

마하깟사빠 존자의 입장에서 보면 붓다를 대신해 가르치고 훈계해야 할 대상에는 아난다 존자와 아누룻다 존자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들의 제자들이 자기가 최고로 많이 알고 있다고 시합하자고 한다. 이런 자들에게는 교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붓다는 곧바로 반다와 아빈지까 비구를 불러 크게 꾸짖었다. 그들은 붓다의 꾸지람을 듣고,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일화는 다른 불교문헌과 학자들의 논문에도 인용되었다. 이 일화를 근거로 한 편의 논문을 작성했던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는 현재의 승려들에게는 만족하지 못하지만, 붓다시대의 출가자들은 수행에 매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수행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말썽만 일으킨 제자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계율이 제정되었다. 이른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승가에 들어온 도피형・생계형 출가자들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의 불교승가에도 있고, 미래의 불교승가에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경(SN16:7)에서는 마하깟사빠 존자가 이렇게 말한다. 즉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양심이 없고, 수치심이 없고, 정진이 없고), 지혜가 없는 자는 누구든지 날이 갈수록 유익한 법들에 있어서 퇴보가 기대되고 향상이 기대되지 않는다.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양심이 없는 사람, 게으른 사람, 지혜가 없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바로 퇴보이다. 교계해 주는 비구들이 없다는 것이 바로 퇴보이다.

반대로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있고(양심이 있고, 수치심이 있고, 정진이 있고), 지혜가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밤과 낮이 갈수록 유익한 법들에 있어서 향상이 기대되고 쇠퇴가 기대되지 않는다.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수치심이 있는 사람,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 분노하지 않는 사람,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람)이 바로 향상이다. 교계해 주는 비구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향상이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지금의 비구들은 스스로 고귀한 삶을 살겠다는 열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구들에게 교계하는 것을 꺼린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붓다는 마하깟사빠 존자의 지적이 옳다고 동의한다. 이른바 “교계해 주는 비구들이 없다는 것이 바로 퇴보요, 교계해 주는 비구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향상”(SN.Ⅱ.205-210)이라는 것이 이 경의 핵심이다.

또 다른 경(SN16:8)에서는 마하깟사빠 존자가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장로 비구들은 숲에 머무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삼의(三衣)만 입는 자였다. 그들은 원하는 것이 적었고[少慾], 만족하였고[知足] 한거(閑居)하였다. 또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이러한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 당시에 인기가 있었고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비구들은 이러한 좋은 덕목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붓다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붓다는 마하깟사빠 존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러하다. 깟사빠여, 예전에 장로 비구들은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다.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다. … 삼의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다. 원하는 것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다. …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칭송하였다.”(SN.Ⅱ.208-9; 각묵 옮김, ‘상윳따 니까야’ 제2권, p.493)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가 존경받는 교단의 분위기라야 훌륭한 수행자들이 많이 배출된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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