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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떠돌이 신세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온 고성 옥천사 나한상과 삼장보살도

기자명 이숙희

도난된 ‘나한상’…경매물품·전시품으로 등장

경매장에 등장한 도난문화재…‘선의취득’ 주장하며 반환 거부
‘옥천사 십육나한상’ 두 구는 제주 박물관 개관전 출품되기도
미국 경매장에 등장한 한 구는 소장자 설득 끝에 회수에 성공

옥천사 십육나한상 제3존자.

최근 되찾은 나한상들이 있다. 1988년 1월30일에 도난된 경상남도 고성군 옥천사 나한상 일곱 구 가운데 두 구가 2014년 6월2일 서울 관훈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아트 옥션에 경매물품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도난된 지 30년 만에 문화재청·조계종·경찰청이 협력해, 서울 한 사립박물관장으로부터 나한상들을 회수했다. 사립박물관 측은 “도난문화재인 줄 몰랐고 고미술상으로부터 합법적으로 구입했다”며 선의취득을 주장해 사찰 측과의 소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본래 고성 옥천사 나한전에 모셔졌던 열여섯 존의 나한상으로 이 가운데 ‘제3존자 가낙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惰)’와 ‘제14존자 벌나파사(伐那婆斯)’가 당시 회수됐다. 

제13존자.
제14존자.

나머지 다섯 구 가운데 ‘제15존자 아씨다(阿氏多)’와 ‘제16존자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 두 구는 2013년 제주본태박물관 개관전에 출품됐던 사실을 확인하고, 2016년 개인소장가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2017년에는 ‘제13존자 인게타(因揭陀) 나한상’ 이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으며, 소장가를 설득한 끝에 국내로 반환됐다. 도난된 일곱 구 가운데 다섯 구를 회수했으니, 이제 두 구만 더 찾으면 되는 셈이다.

되찾은 ‘옥천사 나한상’ 네 구는 대략 65~67cm 크기로, 나무로 만들어졌다. 천진스러운 얼굴과 다양한 자세, 예스러운 채색 등이 특징이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신체비례이다. 얼굴은 네모난 형태이나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몸에는 고색을 띠고 채색이 화려한 가사와 장삼을 걸치고 있는데 둥근 깃이 있는 내의를 입은 상이 있는가 하면 내의를 입지 않은 상도 있다. 

제15존자.
제16존자. 이들 나한상은 조선후기 제작됐고, 높이는 65.5cm이다.

나한상은 모두 바위 위에 앉아 결가부좌를 하고 있거나 한쪽 다리를 세운 윤왕좌(輪王坐), 한쪽 다리를 늘어뜨린 유희좌(遊坐), 두 다리를 내리고 있는 의좌(倚坐) 등 다양한 자세를 하고 있다. 대좌 앞면에는 ‘삼(三)’ ‘십삼(十三)’ ‘십사(十四)’ ‘십오(十五)’ ‘십육(十六)’이라는 숫자가 음각돼 나한상의 존명을 알려준다. 무릎 위에 편안하게 엎드린 서수(瑞獸; 상서로운 짐승)와 두 손으로 서수의 앞 발을 잡아 세우고 있는 자태, 대좌 앞면에 조각된 작고 앙증스러운 호랑이의 모습은 1693년 조성된 ‘구례 천은사 나한상’이나 1706년 제작된 ‘영광 불갑사 나한상’과 매우 닮아있다. 특히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돌려서 정면을 쳐다보는 서수의 표현은 동적이면서 해학적이라 가히 조선 후기의 나한상을 대표할 만하다.

2016년 고성 옥천사 대웅전에 봉안됐던 ‘삼장보살도’를 추가로 회수했다. 1988년 9월2일에 도난된 것으로 천장(天藏)보살, 지지(持地)보살, 지장(地藏)보살과 그 권속들을 각각 그린 세 폭이 한 짝을 이루는 독특한 형식의 불화이다. 

삼장보살의 연원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 삼신불(三身佛; 법신 비로자나불·보신 노사나불·화신 석가불) 사상이 유행하면서 지장보살 신앙이 확대됐고, 천장보살과 지지보살이 유래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삼장보살도’는 죽은 자와 그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인 수륙재와 관련있는 의식용 불화로, 조선 전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조선 후기에 다수 조성됐다. 소의경전을 바탕으로 한 예배용 불화가 아니라, 의식집을 근간으로 그려진 것이라 등장하는 불·보살 이름이 매우 낯설고 생소하다. 조선시대 불화로는 주제나 형식에서 특이하나 남아 있는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고성 옥천사 ‘삼장보살도’는 폭마다 주존 보살을 중심으로 대좌 아래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있다. 보살 주변으로는 20여명 권속이 둘러싸고 있는 상하 2단의 구도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권속 배치는 18세기 조선 후기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천장보살은 진주보살·대진주보살 및 여러 천중이 배열돼 있고, 지지보살은 용수보살·다라니보살·신중들이, 지장보살은 도명존자·무독귀왕·시왕들이 배치돼 있다. 

도상의 특징으로는 천장보살과 지지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결가부좌하여 앉아 있는 것이 같다. 하지만 설법인을 하거나 손에 경책(警策)을 들고 있는 점이 다르다. 지장보살은 고리가 6개인 육환장이라는 지팡이를 쥐고 있다. 

옥천사 삼장보살도 천장보살.  옥천사 성보박물관 제공
지지보살.  옥천사 성보박물관 제공
지장보살. 이들 불화는 1744년 제작됐고, 크기는 180.5×127.7cm로 동일하다. 옥천사 성보박물관 제공

또 천장보살은 협시보살 외 천중들이 문인과 같은 모습이며, 지지보살은 이전과 달리 무인이나 천부중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보살 형식의 협시로 표현돼 있다. 지장보살은 명부의 세계를 주관하는 10명의 시왕과 판관·사자(使者) 등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있다.

화면은 붉은색과 초록색이 주조를 이룬다. 보살의 천의와 몇몇 권속의 옷에 는 푸른색·황색이 부분적으로 칠해져 있는데, 채색이 두꺼운 편이라 전반적으로 어둡고 탁한 느낌이다. 이 때문에 필선이 선명히 드러나지 않으나, 얼굴·손· 발 부분에는 차분하고 섬세한 필선이 엿보인다.

화기(畵記)는 원 봉안처를 지운 후 다시 채색해 훼손됐다. 하지만 연호(年號)에 의해 1744년에 금어 등계 효안 스님(曉岸)의 주도로 최현, 상오, 징순, 지심, 지성 스님 등 11명의 화승이 함께 제작했음이 확인됐다. 

특히 고성 옥천사에는 효안계 화승들이 같은 해에 제작한 ‘지장보살도’ ‘시왕도’ ‘영산회상도’도 있었으나, ‘시왕도’ 2점과 ‘영산회상도’는 1976년에 도난돼 남아있지 않다. 다행히 ‘시왕도’ 가운데 제2초강대왕도(第二初江大王圖)는 어느 프랑스인이 1981년 서울 인사동에서 구입해 35년간 갖고 있다가 2016년 9월에 기증해 국내로 환수됐다. 이 ‘시왕도’는 현재 옥천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도’와 함께 보물 제1693호로 지정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 불화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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