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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정체성과 배금주의

일찍이 미국을 중심으로 ‘커머셜 릴리젼(commercial religion')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일상화되어 있는 산업사회에서 종교의 자립을 위해 상업과 종교가 융합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런데 혹자는 이런 점을 악용한다. 종교가 지니는 지순성이나 청정함을 버리고 세속에 영합해 이윤 활동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교회나 사찰이 추구하는 일상의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종교적 감성마저도 상업성과 결부 지어 이용하려는 위험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종교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지키지 않는다면 한국의 종교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로운 기술을 창안해 내는 것은 어렵지만 모방하기는 쉽다. 서구를 중심으로 발전한 산업사회와 과학문명은 20세기의 지구촌을 바꾸어 버렸다. 서구의 식민통치라는 아픔을 겪은 아시아는, 농본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비교적 빠르게 전환했다. 그 결과 현재 한중일 중심의 동북아시아는 선진국과 기술 패권을 다투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딱히 누구의 덕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전통문화의 상실이나 가치관의 혼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빠르게 변하는 사회 흐름으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이 많다. 한국불교에 팽배한 배금주의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무상한 것이 세상이라고 했던가? 변하는 세상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빠른 변화로 인해 약간의 스트레스와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정보화시대는 기존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상응하는 결과를 충분히 향유하면서도, 다만 인간의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를 중시하는 배금주의가 한국불교계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걱정일 뿐이다.

불교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한국불교계가 불교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붓다의 이상을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부단한 성찰과 수행으로 가능하다고 보지만, 그 수행의 핵심은 무소유의 정신이어야 한다. 평등과 자유,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비움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진부한 이야기가 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교학자 바첼러는 ‘불교 교단에 불타의 정신은 없고, 집단 이기주의만 남았다’고 그의 책 ‘without buddha'에서 탄식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에서 직접 수행을 했던 그이기에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다. 바첼러의 눈에 보인 아시아의 불교 교단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불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교단 소속원의 집단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한국불교계에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계의 혼란은 그 여진이 오래 지속되었다. 최근까지 이어진 한국불교계의 혼란 역시 그 여진의 하나로 인식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해방둥이 세대가 이미 70대 중반을 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지난 시간을 탓하고 있다는 것은 교단의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불교계의 건강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불교의 정체성과 배금주의의 사이에 명확한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에는 수백 개의 종단이 난립하고 있다. 새로운 종단이 생긴다는 것은 불교계 내부에 등장하는 다양성이란 점에서 발전적 시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종지나 종풍도 없이 수많은 종단이 등장한다는 것은, 한국불교계가 그만큼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하다. 불교의 미래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청정한 교단의 확립과 정체성의 재정립이다. 배금주의가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불교주의가 있어야 한다.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svhaha@hanmail.net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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