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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불교계 역할

배구계에서 촉발된 학교폭력 여파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나도 당했다’고 폭로되고 있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나 또한 폭력의 장 속에서 살아왔음을 느낀다. 어릴 때 집안에서는 부모님의 폭력,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폭력, 군대에서는 고참들의 폭력, 대학생 때는 경찰들에 의한 폭력의 세례를 받았다. 민주화 끄트머리에서는 죽고 싶을 정도의 육체적 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절정을 이루었다. 커갈수록 더욱 ‘쎈’ 폭력을 온몸으로 받은 셈이다. 하나하나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로 각인되어 있다. 

지난날 한국은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였다. 아니 지금도 그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대학과 교단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선택을 강요하거나 자존감 내치는 언어로, 일방적이면서도 회피할 수 없게 하는 갑질로, 감내하지 않으면 다른 형태의 보복을 떠올리게 하는 권력으로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사회는 폭력의 연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자연 생태계는 폭력의 연결망일까’라는 의문마저 든다. 

많은 정의가 있지만 폭력은 다양한 형태 즉, 물리적, 정신적, 사회적 형태의 강압을 행사함으로써 폭력 행사자의 의지를 상대에게 관철시켜 상처를 주거나 굴복시키고 마침내 자신과 동화되도록 하는 행위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구조적으로 다층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폭력은 다른 폭력을 양산하거나 위로부터 가해진 폭력은 아래로 전가되어 가장 약한 자에게 집중된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들이 주장하듯이 내면과 외면의 폭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내 안의 폭력성을 제거하지 않고는 그 어떤 폭력도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제불조사들로부터 받은 가르침이다. 

폭력은 어떤 면에서는 자본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즉각적으로 목표를 성취시켜준다. 집단적 폭력 형태의 정점은 국가다. 합법적 형태로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국가가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해독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점은 이미 주위에서 목격하는 대로다.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대하는 여러 유형의 갑질은 산업계의 악질적 폭력이다.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 또한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상의 자유를 폭압한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떤가. 나는 최근까지의 연구를 통해 종교가 국가에 종속되면 어떤 폭력보다도 최악에 이를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와 천황제는 불교로 하여금 자신의 교의를 배반하고, 민중을 저항 없이 살육의 전쟁터로 보내는 도구로 만들었다. 전시교학은 이들이 만든 특수한 교의다. 예를 들면, 전시상황에서는 불법인 진제(眞諦)가 국가윤리인 속제(俗諦)를 따라야 한다는 교지나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수를 살린다는 일살다생(一殺多生)의 논리가 그것이다. 중세 기독교의 정의의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교단주의에 매몰된 동서양의 종교는 지금도 언제든 국가의 전쟁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폭력의 뿌리를 안에서부터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무력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면세계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현실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틱낫한 스님이 ‘행동하는 자비’라고 한 것은 그 한계를 돌파한 것이다. 요한 갈퉁이 인위적 폭력, 구조적 폭력의 부재를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로 부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열반은 모든 번뇌로부터 해방된 평화를 말한다. 공업인 사회적 번뇌가 바로 인위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다. 

지금 일고 있는 학교폭력 미투운동은 폭력이 우리 안에 얼마나 깊이 내재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학생들은 부모세대가 겪은 폭력을 모방하고 있다. 아니 전가되었다. 모든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사회적 해탈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목숨 건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평화의 마음과 실천적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분투한 간디처럼, 불교계가 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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