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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수행과 잠에 대한 몇 가지 가르침

수행의 요체는 깨달음…특별한 상태 구하는 것 아니다

잠에서 떠난 상태에 있는 한
깨어있음이 수행 필수 요소
율장에 정지와 정념 갖추면
편안하고 온전하게 자게 돼

초기경전의 대부분은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선정수행에 대한 가르침, 선정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예비수행, 번뇌에 대처하는 수행법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잠을 번뇌로 언급할 때는 나태와 게으름, 혹은 수면의 달콤함 등으로 설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경전에 보면 잠과 수행을 직접 연결 지어서 설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경우를 보면 잠과 수행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앙굿따라니까야’ (AN.III, 156)에 나오는 ‘잠을 못 이루는 자의 경(Appaṃsupatisutta)’에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는 다섯 유형의 사람이 나온다.

“비구들이여, 남자를 희구하는 여인은…  여인을 희구하는 남자는… 절도를 희구하는 도둑은… 정무에 묶여있는 왕은… 결박의 여읨을 희구하는 비구는 밤에 잠을 잘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결박의 여읨을 희구하는 [자](visaṃyogādhippāyo)’ 란 번뇌로부터 떠남을 의욕하는 비구로 이해된다. 보통 결박, 족쇄로 번역되어 번뇌를 의미하는 말은 삼요자나(saṃyojana)가 일반적인데, 삼요가(saṃyoga) 역시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깨어 있음’은 수행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법구경’ 296~301번 게송에서는 ‘고따마의 제자들은 언제나 잘 깨어 있다.(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Gotamasāvakā)’라는 말로 깨어있음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경문이 ‘숫따니빠따’의 ‘자애경(Mettasutta)’에 나온다. ‘자애경’은 사무량심 수행의 하나인 자애수행(mettabhāvanā)에 대한 내용이다.

“서 있거나, 가고 있거나, 앉은 [상태]이거나, 누워 있거나, 그가 잠에서 떠난 상태에 있는 한, 이 사띠를 확립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것을 청정한 경지[라고] 말합니다.”(Sn.115)

위 경문에서 ‘잠에서 떠난 상태(vitamiddho)’란 잠자지 않는 상태, 즉 깨어 있을 때를 말한다.  또 다른 경문은 율장인 ‘마하박가’에 나온다. ‘몽정’에 대한 내용인데, 부처님 말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아난다여, 사띠를 잃고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잠에 떨어지면 꿈을 꾸다가 몽정을 하게 된다. 아난다여, 그 비구들이 사띠를 확립하고 바르게 알고 잠에 들면, 그들에게 몽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난다여, 일반사람들도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그들에게 몽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난다여, 아라한이 몽정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Vin.III, 295)

사띠(sati)는 흔히 정념(正念)으로, 바르게 앎은 정지(正知, sampajañña)로 번역된다. 이어서 정념과 정지를 갖추고 잠에 들면 얻게 되는 다섯 가지 공덕이 설해진다. 

“첫째는 편안하게 잠들고, 둘째는 편안하게 잠깨고, 셋째는 악몽을 꾸지 않고, 넷째는 하늘사람이 수호하고, 다섯째는 몽정을 하지 않는다.”

정념과 정지를 갖추면 걸을 때는 온전히 걷고, 앉을 때는 온전히 앉으며,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히 머물거나 할 때도 온전히 그것을 하게 된다. 나아가 율장의 내용은 정념과 정지를 갖추고 잠에 들면, 온전히 잠을 자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수행의 요체는 번뇌를 제거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있는 것이지, 어떤 특정한 상태를 구하는데 있지 않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76번경인 ‘산다까의 경’을 보더라도 명확하다. 이 경은 아난다 존자와 유행자 산다까사이의 대화를 전하는데, 다양한 능력과 견해를 갖고 있는 당시의 스승들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아난다 존자의 결론은 그들의 가르침이 번뇌를 멸진시키는 것과 관련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으로 모아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번뇌의 멸진을 통한 완전한 해탈로 이어진다. 잠을 잘 자는 것도 수행의 하나일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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