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제53칙 암두편범(巖頭片帆)
54. 제53칙 암두편범(巖頭片帆)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1.02.22 13:33
  • 호수 15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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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실상은 왜곡 없이 완벽하게 노출돼 있다

승이 자기 본래면목을 물어오자
후원에서 풀을 뜯는 나귀로 대답
눈 앞의 형이하학적인 모습 통해 
언어도단 질문에 적확하게 대답

승이 암두에게 물었다. “옛 돛을 내걸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암두가 말했다. “후원에서 나귀가 풀을 뜯어먹는다.”

본 문답은 본래 여여한 불법의 이치를 아무런 조작이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응용할 줄 알아차려야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암두(巖頭)는 암두전할(巖頭全豁, 828~887)로서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의 제자이다.

옛돛[古帆]은 예로부터 전승해 오는 가르침 내지 이치 등 언설로 표현된 일체를 말한다. 여기에서 승이 질문한 옛 돛을 내걸지 않을 때란 언설 내지 개념 등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것은 달리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 위음왕불이전(威音王佛以前), 공겁이전(空劫以前)이라고도 말하는데 모두 천지미분이전(天地未分以前)의 용어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분별심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데,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본래면목을 의미한다.

부모는 단순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모든 개념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체의 분별심이 형성되기 이전의 순수하고 청정한 마음의 상태를 지칭한다. 위음왕불은 위음나반(威音那畔)이라고도 하는데 과거 장엄겁의 최초의 부처로서 무량하고 무변하여 지극히 먼 시간으로 불교의 우주관에서 가장 원초적인 시작을 가리킨다. 곧 시간적인 이치에서 근원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위음왕불이 출세하기 이전으로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생의 깜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태초를 가리킨다. 또한 공겁이전에서 공겁은 아직 성겁(成劫)이 출현하기 이전의 시대를 가리킨다. 곧 천지가 열리기 이전으로서 유무(有無)‧미오(迷悟)‧선악(善惡)‧범성(凡聖) 등 상대적인 차별의 모든 현상이 분기하기 이전의 절대적인 상황을 가리킨다. 선수행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분별 내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질문한 승은 자신이 제시한 내용에 걸맞는 것으로 암두에게서 대단히 고고하고 형이상학적인 답변이라도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암두는 후원에서 나귀가 풀을 뜯어먹는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였다. 오히려 답변을 대신했다기보다도 이것이야말로 그대로 가장 적합한 답변이었다. 후원에서 나귀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평이하고 근심걱정이 없는 모습이다. 선의 수행과 깨침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바로 이와 같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그리고 모든 존재의 살림살이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왜곡됨이 없이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옛 돛을 내걸지 않는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돛을 내다 걸기 위해서는 어떤 배를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돛을 골라야 하는지, 언제 내다 걸어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돛을 내걸 것인지 등에 대하여 친절하게 일러주는 것이었다면 그것도 불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승이 질문한 의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는 꼬락서니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선문답에서 비근하게 언급되고 있는 비유 내지 상징은 직접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언어도단이고 불립문자의 경우에는 지극히 유효한 방식이다. 암두는 중생의 분별심으로 감히 접근할 수가 없는 무분별의 상태인 옛 돛을 내걸지 않았을 때[古帆不挂時]에 대하여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형이하학적인 모습에 의탁하여 형이상학적인 승의 질문에 응답해준 것이다. 이 경우에 승이 다시 나귀가 풀을 뜯고 있다는 말에 대하여 굳이 왜 후원에서 그리고 어째서 풀을 먹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다면 그것은 머리 위에다 다시 머리를 얹는 격으로 설상가상의 꼴이 되고 만다. 암두가 답변한 언설의 흔적을 따라서 해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귀가 풀을 뜯어먹건 잠을 자건 울음소리를 내건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그로부터 초연하게 암두의 의중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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