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근원통
7. 이근원통
  • 이제열
  • 승인 2021.02.22 17:06
  • 호수 15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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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되 듣는 놈을 관하라

능엄경 원통품에 제시된 수행법
관세음보살 이름도 여기서 유래
바깥소리 듣는데 집착하지 말고
진여불성 쪽으로 마음 돌리는 것

부처님 말씀이 기록된 경전 중에 가장 읽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능엄경(楞嚴經)’이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경전의 어법과 논리가 난해하기 그지없다. 특히 2권과 3권의 견(見)에 관한 법문은 극도의 집중력과 논리력을 동원해야 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능엄경’에서의 능엄(楞嚴)은 ‘최상무극(最上無極)’, ‘필경견고(畢竟堅固)’의 의미를 지닌다. 최상무극은 가장 높아서 더 이상 없다는 뜻이고, 필경견고는 끝내 굳세다는 뜻이다. ‘능엄경’ 내용들 중 수행과 관련한 부분은 ‘원통품(圓通品)’이다. 원통이란 부처님의 완전무결한 깨달음의 경지이다. 원(圓)은 높고 두루하며 밝고 걸림 없는 깨달음의 자리이며, 통(通)은 그 깨달음이 아래로는 중생계와 하나가 되고 위로는 불계와 하나 된 자리이다.

원통의 경지에서는 중생계와 불계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 지옥 중생과 삼세의 부처님들이 한 정토에 머물러 있음이다. ‘원통품’에서는 부처님 앞에서 소승의 아라한들과 대승의 보살 25명이 출현해 원통에 들어가는 각자의 수행법에 대해 사뢴다. 그들은 저마다 음성을 듣는 법, 들숨과 날숨을 관하는 법, 육근·육경·육식을 관하는 법 등 각양각색의 수행법들을 소개한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등장하는 분이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앞의 수행법들을 언급하며 원통에 드는데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그러면서 관세음보살은 원통에 들어가는 최상의 수행법으로 소리와 관련된 이근(耳根) 원통법을 설한다. 중생의 육근 가운데 귀에 해당하는 이근은 항상 열려 있다. 소리가 들리건 안 들리건 귀는 항상 듣는 성품을 유지한다. 눈은 앞엣것만 보기에 장애물이 생기면 볼 수 없지만 귀는 사방의 소리를 듣고 장애물이 있어도 들을 수 있는 공능을 지니고 있다.

이근수행이란 이와 같은 이근을 관찰하는 수행으로,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귀로 들을 때 단순히 소리를 듣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그 소리를 듣는 성품을 깨달아 들어 가도록하는 방법이다. 경전에서는 이를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한다. 반문문성은 밖의 소리를 돌려 듣는 성품으로 돌이킨다는 의미이다. 이때 말하는 성품은 이근의 근본 바탕인 진여공성으로써의 불성여래장이다. 귀에는 주변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 많은 소리들은 기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크게 두 종류이다.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소리를 따라 집착한다. 바깥의 소리를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로 구분하고 이에 집착한다. 사람의 귀는 소리 방향으로만 치우쳐져 있다. 반문수행은 이와 같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마음의 근본성품인 진여불성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반문문성 수행의 방법은 바깥의 소리가 귀에 들리건 말건 앉아서 소리를 듣는 주체인 귀 쪽에 마음을 집중한다. 처음에는 마음이 귀 쪽에 집중이 되지 않고 망상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계속 귀 쪽에 마음을 두다보면 망상들이 점차로 조복이 되고 귀를 향한 집중력이 생긴다. 이근수행은 이렇게 하여 생긴 귀를 향해 만들어진 집중력을 일상의 삶 속에서도 적용한다. 그러다 보면 소리를 향했던 집착심도 점점 약화가 되면서 다른 망상과 집착들도 점차로 끊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귀와 소리라는 주객의 대립 세계를 벗어나게 되고 듣는 귀의 근본성품인 진여불성을 깨닫는 다는 것이 반문문성 수행의 개요이다.

근본 진여불성은 소리도 없고 귀도 없는 공성의 열반이다. 관세음보살을 관세음이라 칭한 연유가 ‘능엄경’의 ‘이근원통품’에 있는 것이다. 소리를 관찰하여 듣는 성품인 진여불성 쪽으로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의 이와 같은 이근원통에 대해 극구 칭찬을 하고 법문을 듣기만 하는 다문제일 아난존자를 향해 ‘어째서 삼세의 부처님의 설법소리는 다 들을 줄 알면서 듣는 놈은 듣지 못하느냐,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의 근인 이근을 돌이키면 육근의 근본 성품도 진여불성으로 돌아가느니라’고 하신다. 바깥 소리에 길들여진 범부들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낸 적 없는 반문문성의 이근원통 수행을 집중적으로 수행해 보기를 권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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