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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출가와 재가의 의미를 통해 장자를 교화하다

행색 갖췄다고 해서 출가자라 하지 않는다

세속 모든 것 포기한 뽀딸리야
장자로 불리자 불쾌하게 생각
부처님, 버려야 할 8가지 설명
내용이 갖춰져야 진정한 출가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정당하게 평가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당한 평가란 주관적이어서,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된다. ‘도대체 정당한 평가란 무엇인가?’

엄밀하게 말하면 ‘정당한 평가’란 주관적 관점에서 벗어나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과 관념을 갖고 사실을 판단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맛지마니까야’에 ‘뽀딸리야의 경(Potaliyasutta)’(54번경)이 있다. 이 경은 장자 뽀딸리야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의 첫 머리에 부처님께서 “장자여, 자리가 있으니 원한다면 앉으십시오”라는 말에 불쾌해하며 화를 내는 뽀딸리야가 그려진다. 이에 대해 장자 뽀딸리야가 부처님께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뽀딸리야] 존자 고따마여, 당신이 저에게 장자라고 하며 말을 거는 것은 옳지 않고 적당하지 않습니다.
[붓다] 장자여, 그대는 장자의 그 모습, 그 인상, 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뽀딸리야] 존자 고따마여, 저는 모든 일을 포기했고 모든 직업을 그만 두었습니다.
[붓다] 장자여, 어느 정도 그대는 모든 일을 포기했고 모든 세속의 일을 그만 두었습니까?
[뽀딸리야] 존자 고따마여, 저는 저의 재산, 곡식, 은, 금 등 그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충고나 훈계를 하지 않고, 단지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으로 살고 있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이와 같이 저는 모든 일을 포기했고, 모든 세속의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붓다] 장자여, 그대가 세속적인 일을 그만 두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성자들의 계율에 비추어 세속적인 일을 그만 두는 것과는 다릅니다.

뽀딸리야는 부처님이 자신을 ‘장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자신은 재산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정말 청빈하게 살면서 세속적인 일에서 떠났으니 장자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 우리는 뽀딸리야와 같은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데’라며 말하는 경우이다.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와 같은 의미이다. 이들은 자기 생각에 얽매여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에 부처님은 뽀딸리야에게 ‘그것은 그대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암시하듯이, ‘세속적인 일을 그만 두는 것’은 형식과 내용을 잘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자 뽀딸리야는 어떠한 것이 세속적인 일을 그만두는 올바른 의미인지 여쭙게 된다. 부처님은 이에 버려야 할 8가지 원리를 말씀하셨다.

①생명을 죽이는 것 ②훔치는 것 ③거짓말 ④이간질 ⑤탐욕 ⑥악의 있는 비난 ⑦분노에 찬 고뇌 ⑧교만한 마음.

위의 내용은 이른바 팔재계(八齋戒)의 내용과는 다르다. 팔재계는 오계(五戒)에다가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 것’ ‘무용이나 음악, 노래 등을 보거나 듣거나 또 꽃이나 향으로 분장하고 장신구로 치장하지 않는 것’, ‘높고 호화로운 침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위의 경문에 나오는 8가지는 팔재계와는 다소 다른 측면에서 설하신 것이다. 팔재계가 평소 생업 등으로 수행에 전념할 수 없는 재가불자를 위해 하루만이라도 수행자의 청정한 삶을 살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라면, 위의 8가지 원리는 늘 삶에서 실천하여야 하는 수행자의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형식이나 외적인 내용으로 출가와 재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과 내용이 잘 갖추어져야 함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이다. 뽀딸리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청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부처님의 진실한 재가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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