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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법등사 주지 설오 스님

“히말라야 설산에서 빛나던 ‘티베트 수행법’ 올곧이 전할 터”

금강경 사구게에 감동
3개월 만에 출가 단행

대만 유학서 린포체 인연
스승 찾아 인도로 발길

임시 거처 불에 완전 타
잿더미에서 ‘무상’ 직시

따시종 독댄 암틴 만나
‘나로빠 6법’ 수행 체득

7년 반 수행·2002년 귀국 
법등사·티베트문화원 설립

​​​​​​​유튜브 ‘설오스님TV’
불교·수행자에게 인기

“모든 대중이 깨달음을 성취하고 정법을 널리 전하자는 의미를 담아 정각산(正覺山) 법등사(法燈寺)라 했다”는 설오 스님은 “인연에 따르고 근기에 맞춰 지장기도와 나무아미타불 정토수행, 그리고 티베트불교 수행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몸을 풀어서/ 누에는 아름다운 비단을 짓고// 몸을 풀어서/ 거미는 하늘 벼랑에 그물을 친다.// 몸을 풀어서,/ 몸을 풀어서,/ 나는 세상에 무얼 남기나.// 오늘도 나를 자빠뜨리고 달아난 해는/ 서해바다 물결치는 수평선 끝에/ 넋 놓고 붉은 피로 지고 있는데.’ (이수익 시 ‘오체투지’ 전문)

인도의 오월은 뜨거웠다. 들이킨 숨 내 뱉기도 버겁다. 그렇다해도 오체투지 10만 배만은 멈출 수 없었다. 

서울 서소문 지방검찰청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통근버스 안 법원 여직원들의 담소를 들으며 광덕 스님(光德·1927∼1999) 존재를 처음 알았다. 통기타 연주하며 생맥주 마시기 좋아했던 스물네 살, 불교에 관한한 문외한이었지만 호기심에 그 여직원들 따라 종로 대각사로 걸음했다. 고결한 풍모의 광덕 스님은 인상적이었는데 ‘금강경’을 강설하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듣는 경전이었음에도 사구게를 만난 순간 환희가 차올랐다.   

‘모든 형상 있는 것은 허망하다.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불광사 마포구 법등에서 신행활동을 시작했다. 3월의 오대산 적멸보궁. 광덕 스님과 대중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시작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꽃망울 맞이하는 산 아랫마을과는 달리 적멸보궁에 하얀 눈이 내렸다.

“부처님, 출가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전하신 그 수승한 법을 세상에 널리 펴겠습니다.”

광덕 스님 만나 ‘금강경 사구게’ 들은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출가 직후 대만 유학길에 올랐다. 공동묘지터에 지어진 빌라촌에 살며 납땜 노동도 마다않고 학비를 벌었다. 자연스레 대만 불자들로부터 지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티베트불교를 접하며 깔루 린포체와 인연을 맺었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지역에 처음으로 티베트불교를 전한 고승이 제2의 밀라레빠(Milarepa·1052~1135)로 칭송됐던 깔루 린포체(Kalu·1905∼1989)다. 생전에 자신이 예시한대로 입적 1년 후 조카의 아들로 태어났다. 2대 깔루 린포체(1990∼)는 달라이라마 14세로부터 환생을 인정받았고 현재 티베트불교 최고의 스승으로 손꼽히고 있다. 

대만을 한 번 방문한 바 있는 1대 깔루 린포체는 무문관을 남겨 두었는데 설오 스님은 그 무문관에서 티베트 수행 방식의 관음수행에 매진했다. 숙연이었을까? 다섯 살의 2대 깔루 린포체가 대만을 방문했다.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희유한 일이 펼쳐졌다. 법좌로 향하던 깔루 린포체가 군중 대열에 서 있던 설오 스님의 정수리를 손등으로 툭 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러자 단전에서부터 뭉클한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가슴으로 곧장 치고 올라왔다. 며칠 후 깔루 린포체를 친견해 자신의 정수리를 친 연유를 여쭈었다.

“당신은 전생에 내 제자였습니다.” 

대만 유학 중 ‘나로빠 육성취법(六成就法)’의 책을 접하고 매료됐었다. 여섯 가지 수행법 중 중맥(中脈)을 여는 뚬모(gtum mo·內熱) 수행이 대표적이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신비의 열을 단전에서 일으켜, 그 열을 이용해 몸을 정화하고, 몸 안의 기맥(氣脈)과 각각의 차크라(chakra)를 열어 궁극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티베트불교 수행법이다. 출가 전부터 태극권을 연마했고 도가의 기공에도 심취했던 설오 스님은 인도 북부로 향했다. 

사진 오른쪽의 독댄이 구루 암틴이다.

다람살라를 거쳐 티베트 사람들의 정착지이자 수행마을인 따시종(Tashi jong·길상한 마을)에 닿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겨울수행을 위해 마련해 놓은 거처를 빌려 바랑을 내려놓았다. 한 달 남짓 후 까규파 전승의 ‘나로빠 육성취법’과 닝마파 전승의 ‘야만타카’ 수행을 성취한 암틴을 만났다. 이곳을 ‘따시종’이라 명명하고 ‘캄파카 사원’을 창건한 8대 캄툴 린포체(1931∼1980)의 수제자가 독댄(Togden·무문관 수행자) 암틴이다. 

“기초 수행 십만번을 하고, 무문관 정진까지 마치면 ‘나로빠 6법’을 전해주겠다.”

티베트불교에 입문하면 종파와 관계없이 누구나 정진해야 하는 기초 사가행(四加行)을 말함이다. 불보살님께 귀의 예배하는 오체투지 10만번, 금강살타 진언 10만번, 만다라 공양 10만번, 나를 비우고 스승의 본성과 자신의 마음을 계합하기까지의 구루요가 수행 10만번을 이른다.

곧바로 사가행에 돌입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뤘다. 내심 다른 선지식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고승이라면 뭔가 신비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독댄 암틴은 시골 할아버지 같았기 때문이다. 세납 스물한 살의 밍규르 린포체를 만났다. 연꽃 속의 보석 같은 비범함이 엿보였다. 인근에 집 한 채를 예약하고는 원래의 거처로 돌아왔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이웃집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다가왔다. 머물고 있는 집이 방금 전 모두 불탔다는 것이다. 켜놓은 크리스탈 유등잔이 깨져서 카타(Khata)에 불이 붙으며 일어난 화재였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근의 작은 토굴에서 밤새 뜬 눈으로 새우고 아침에 독댄 암틴을 친견했다. 수중에 남아 있던 2500달러 중 2000달러를 봉투에 넣어 올리며 진심으로 간청했다.

“업장이 두터워 법을 구하러 왔다 불만 냈습니다. 그 잿더미 속에서 무상함을 실감했습니다. 더 이상 방황하며 분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저의 업장이 두텁고 근기가 약해 법을 받기 어렵다면, 더 많은 공양을 준비해 올리고 참회기도를 하겠습니다. 수행의 길에 들어서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독댄 암틴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미 화공(火供)으로 많은 공양물을 올렸다. 그보다 많은 공양이 어찌 필요하겠느냐!”

티베트불교에서의 화공(火供)은 불 속에 모든 공양물을 태워 올림으로써 가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한 가닥 남은 인색함마저 남김없이 태워 없앤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구루(Guru) 암틴이 언급한 화공에는 ‘이제 수행에 들 준비가 됐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낮의 열을 한껏 받은 담벼락과 땅을 식히려 물을 뿌리면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5월의 인도는 그만큼 뜨거웠다. 그 속에서의 오체투지는 구도를 향한 정성이자 열정이자 원력의 상징이었다. 6개월만 머물다 대만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마음은 사라졌다. 티베트에서의 정진은 그 후로 7년하고도 반년이 더해졌다. 그렇게 구루 암틴이 체득한 ‘나로빠 육성취법’과 ‘야만타카’ 수행은 올곧이 설오 스님에게 전해졌다.

법등사 티베트불교문화원.

한국으로 돌아온 설오 스님은 경기도 안성에 법등사를 세우며 티베트문화원도 설립했다. 9대 캄툴 린포체가 2011년, 2대 깔루 린포체가 2010·2011·2012년 법등사를 방문해 관정법회를 봉행했다. 현재 봉녕사승가대학 정교수로 한문불전을 강의하고 있으며 유튜브 ‘법등사 설오스님TV’를 통해서도 법을 전하고 있다.

화재를 직면했을 당시 수행을 포기했을 만도 한데 오히려 원력을 더 다졌던 설오 스님이다. 

“이역만리 낯선 인도 땅까지 와서 남의 집까지 태워먹는 저 자신이 서글프고 처량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만큼 제 업장이 두터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업장 녹여야 수행성취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이르고 보니 잿더미 속에서 ‘무상(無常)’이 보였습니다.”

나로빠 육성취법 중에는 사람과 동물의 의식 속으로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천식법(遷識法)이 있다. 그 중 죽음 직전의 의식을 정토로 인도한다는 ‘포와수행법’이 궁금했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육신의 아홉 구멍을 통해 나가는데 이 구멍을 윤회에 드는 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가피를 믿고 평소 포와법을 수행하면 정수리의 범혈(梵血)이 열립니다. 죽음 직전의 의식이 그 통로를 통하여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임종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임종 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행법입니다.” 

티베트불교에서 구루 즉, 스승을 향한 마음은 지중하다.

“티베트에 이러한 속담이 있습니다. ‘혼자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 이생에 성취를 할 수 있을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으나, 구루에 온전히 헌신한 사람은 금생에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모든 깨달음의 근원을 스승이라고 여깁니다. 스승은 부처님의 화현으로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나투신 존재입니다.”

설오 스님은 따시종에 자신이 수행할 공간과 스승이 머무를 집, 무문관 등 6채의 건물을 지었다. 티베트가 머금은 법이 두루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빚은 불사다. 따시종에서의 수행을 마친 설오 스님은 2002년 귀국했다. 

정각산 법등사 전경.

법등사 대웅전 옆에는 지장보살상이 우뚝 서 있다. 

“2005년 들불이 번지는 곳을 들어오는데 네 마리의 코끼리가 노닐고 마을 사람들이 길을 터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노곡리 염티마을에 작은 포교당(법등사 전신)을 마련했습니다. 2007년에도 상서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나무 지장보살’ 염불소리가 땅 속에서 울려 퍼지더니 지장보살님이 ‘이곳은 좋은 절터’라고 일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법등사 자리입니다.” 

손 안에 400만원도 없었던 설오 스님은 불사금만도 20억원이 투입된 법등사를 4년 만에 창건했다.   
“모든 대중이 깨달음을 성취하고 정법을 널리 전하자는 의미를 담아 정각산(正覺山) 법등사(法燈寺)라 했습니다. 인연에 따르고 근기에 맞춰 지장기도와 나무아미타불 정토수행, 그리고 티베트불교 수행을 전하고 있습니다.”

법연 따라 깨달음의 인(因)을 심어주겠다는 뜻일 터다. 

“티베트불교의 수행법과 구루들의 지혜에 매료되어 정진한 지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전히 정화되지 않은 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히말라야 설산에서 빛나던 티베트 고유의 수행법을 힘닿는 한 우리 불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습니다.”

여느 사찰과 달리 법등사 대웅전 외벽에는 뚬모 수행을 형상화한 그림 등 티베트불교 성향이 짙은 벽화들로 가득해 이채롭다. 그중에서도 ‘세존열반유훈도’는 특이하다. 누워 계시는 부처님 앞에 코끼리 한 마리가 있는데 뱃속에 큰 소라고동을 품고 있다. 

“대만에서 인도로 떠나기 직전 꿈에서 본 정경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코끼리 배 안 쪽의 소라고동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물건을 발견했다’며 만졌습니다. 그러자 여행가이드처럼 보이는 남자가 ‘이 소라고동을 발견한 사람은 말법시대에 법을 전할 임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 꿈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자신의 꿈을 벽화에 새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전법에 더 매진하겠다는 선언이자 원력일 터다. 오대산 적멸보궁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세운 그 발원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전하신 그 수승한 법을 세상에 널리 펴겠습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설오 스님은
1958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1981년 묘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봉녕사승가대학과 율원에서 수학하고, 대만에 유학해 중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북인도 따시종에서 7년간 티베트 밀교를 수행하고, 달라이라마의 통역을 맡았다. 경기도 안성에 법등사를 세우고, 티베트문화원을 설립했다. 현재 봉녕사승가대학 정교수로 한문불전을 강의하고 있다. ‘법등사 설오 스님TV’를 통해서도 법을 전하고 있다.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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