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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제 백담사 만해당

기자명 법상 스님

깨달음 소리로 드러낸 수행자의 본분

1917년 쓴 만해 스님의 오도송
깨닫고 보면 천지와 나는 하나
주·객 없는 경지로 천하 평정해

인제 백담사 만해당. 글씨 석주정일(昔珠正一, 1909 ~2004).
인제 백담사 만해당. 글씨 석주정일(昔珠正一, 1909 ~2004).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飛
일성갈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비
(사나이 이르는 곳 모두가 고향인데
나그네 긴 시름에 겨운 사람 몇 사람이던가?
한마디 외쳐서 삼천세계를 갈파함에
눈 속의 복숭아꽃 펄펄 나부낀다.)

이 게송은 올곧게 독립운동을 하신 만해 용운(卍海龍雲, 1879~1944)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스님이 정사년(1917) 12월3일 밤 10시경 좌선 중에 홀연히 바람에 부딪혀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단박에 풀려서 얻은 시라고 알려져 있다.

남아는 사내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출격장부를 뜻한다. 격식에서 벗어난 장부라는 의미로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는 당당한 사람이다. 견성한 이를 출격장부, 줄여서 장부라고 한다.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에 비유해 심우라고 하듯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이를 혈기 왕성한 장정에 비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장정은 힘이 세고 한창 활발한 시기이기에 어떤 일이든 크게 개의치 않고 해내며 막힘이나 걸림이 없어 자유자재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시문의 첫머리에서 장부도처라 하지 않고 남아도처라 한 것은 스스로 낮춰 하심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라고 봐야 한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여기서는 마음의 본성을 나타낸다. 게송의 첫머리에서 이미 살활자재한 도리를 여과 없이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기인은 몇몇 사람을 말한다. 객수는 객지에서 쓸쓸한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아직 견성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사람을 나타내며 그러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기인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객수는 업장과 번뇌에 얽매여 시달리는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고통이 따르는 삶은 타향살이며 중생의 삶이다. 반면 깨닫고 나면 가는 곳곳마다 본향이 되는 것이다.

고려 시대 보조지눌 스님은 견성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염불요문’에서 “대개 말세 중생들은 근기와 성품이 어둡고 둔하여 탐욕과 습기가 두텁기에 오랫동안 나고 죽음에 빠져 온갖 고뇌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스승과 도반의 꾸지람을 받지 않으면 고뇌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 했다. 또 “애욕에 휘둘리는 번뇌장, 알음알이에 집착하는 소지장, 육신에 집착하는 보장, 고요함만 집착하는 이장, 사물에 대해 분별심을 내는 사장”을 다섯 장애로 지적했다.

일성갈파, 다시 말하면 깨달음 소리이다. 이를 사자후, 확철대오라고도 한다. 고로 이다음에 나오는 시구는 오도송의 핵심이다. 삼천계는 우주 삼라만상이다. 깨닫고 보면 내 마음 안에 삼천대천세계가 있음을 명확하게 알기에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됨을 아는 것이다. 용운 스님도 자신도 모르게 일성을 함으로써 수행자의 참다운 본분을 드러내고 있다.
설리도화, 눈 속의 복숭아꽃은 설중매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펄펄 날리는 눈은 번뇌 망상을 표현했다. 세속의 모든 일이 시련의 연속이듯 번뇌 망상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눈 속의 복숭아꽃이라고 했으니 이는 단심을 말하는 것이며 마음을 나타내었다.

설리도화를 설리화라 해도 될 것을 굳이 복숭아꽃이라고 했을까? 예로부터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는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복숭아나무를 사용했다. 여기서 번뇌와 망상이 곧 귀신이기에 이를 홀연히 타파했음을 나타낸다. 편편비라고 하면 눈이 나부낀다는 표현이다. 참고로 ‘한용운시전집’에서는 편편비가 아니라 편편홍으로 되어있다. 편편홍은 “눈 속에 점점이 복사꽃이 붉게 지네!”라는 표현이 된다. 

스님은 결국 객수를 전도해 주도 없고 객도 없는 경지로 천하를 평정했다. 시비가 끊어진 자리라 분별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인이 됐다. 이를 선종에서는 “진면목을 드러냈다”고 하는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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