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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제55칙 투자삼신(投子三身)

깊은 침묵도 설법이고 맛과 촉감도 설법이다

어떤 몸으로 설법하냐는 승의 질문에
손가락 튕겨 삼신 분별 말라 가르침 
혀끝 소리만 의지해 답변 찾기보다
삼신 모두 설법하고 있음 알아차려야

승이 투자에게 물었다. 삼신 가운데 어떤 신이 설법을 합니까.

투자가 이에 손가락을 튕겼다.

투자는 투자대동(投子大同, 819~914)으로 그 법맥은 조계혜능–청원행사–석두희천–단하천연–취미무학-투자대동이다. 삼신(三身)은 불신(佛身)을 삼종으로 분류한 것으로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 또는 응신(應身)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승은 지금 어떤 몸[身]이 설법하는가를 묻고 있다. 삼신 전체가 설법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떤 몸으로 설법하고 있는 것은 승 자신이 들을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제법 당차고 의기가 넘치는 자세로 묻고 있다.

이에 대하여 투자대동은 참으로 선사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승이 질문하는 의도를 벌써 알고 있는 까닭에 바로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튕겨 보이고 있다. 투자는 바로 이 소리야말로 누구에게서 나는 소리이고, 누구나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이며, 삼신으로 말하면 어떤 몸이 내는 소리인가를 알아차리라고 다그치는 제스처이다. ‘화엄경’에서는 부처가 설법하고 보살이 설법하며 국토가 설법하고 중생이 설법하며 삼세의 일체가 설법을 하는데 치열하게 잠시도 쉼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 승은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에 대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되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고, 더 이상 어디로 회피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지금‧바로‧이것을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삼신 가운데 어떤 몸도 답변을 주지 않는다. 승이 투자와 의기투합의 경지가 되지 않고서는 올바른 답변을 보여줄 수가 없다. 그런 승에게 투자는 삼신을 분별하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언설에 말미암지 않고 손가락을 튕겨주는 행위였다. 설법이라고 해서 언설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초보자에 불과하다. 설법은 언설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나는 일체의 음향도 설법이고, 깊은 침묵도 설법이며 온갖 색과 향기와 맛과 촉감이 그대로 설법으로 통한다.

그래서 이와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동산양개는 “나도 평소에 그 문제에 대하여 항상 간절하게 생각해왔다”고 답변하였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설법의 보편적인 의미를 그대로 제시해준 것이었다. 바로 동산은 스승 운암담성으로부터 무정설법에 대한 문답을 통하여 깊이 이해한 경지가 있었는가 하면 개울을 건너가다가 물에 어려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깨침을 터득할 수가 있었고, 나아가서 이것을 바탕으로 조동종의 중요한 교리에 해당하는 오위(五位)의 사상을 현창하기도 하였다. 또한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지문광조는 “그대의 콧구멍이 땅에 떨어져버렸다”고 답변하였다. 이것은 굳이 부처님의 광장설(廣長舌)에 의거한 경전만 가지고 설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편협된 이해를 지적해준 것이다. 오히려 부처님의 경전에 대한 몰이해는 물론이고 경전을 비방하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운문문언은 ‘요(要)’라는 글자 하나로 답변을 하였다. 이것은 질문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아니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운문은 석가의 몸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른 똥막대기[乾屎橛]라고 답변하였다.

이와 같은 답변은 바로 삼신의 어떤 몸이 설법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초월하여 삼신이 모두 설법하고 있건만 그것을 알아듣고 이해하며 남에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질문을 했던 승 자신이 그에 대한 답변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진정한 설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그와는 달리 투자의 혀끝에서 나오는 소리에만 의지하여 답변을 추구한다면 토끼의 뿔이 생겨나는 시절을 기다려도 불가능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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