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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성암 주지 대진 스님

“그 누구도 아프지 않은 세상 희망하며 호남제일 도량 일궈갈 터”

80년대 관통한 부조리에
방황하다 화엄사서 삭발

태국·미얀마·시킴 순례
온전과 완전 간극 체득

수행에 전념한 사람은
전 과정 기술할 수 있어야

철학·문학·미술·과학 저자들
‘나’를 겸손케 하고 익게 해

3년 만에 사성암 완전 변모
신도들 신뢰 더욱 두터워져

​​​​​​​고통·갈등 치유 사회 꿈꾸며
18미터 약사여래 조성 소망

“고통이 사라진 세상을 희망하며 18미터 약사여래 대불을 조성하고 싶다”는 대진 스님은 “사부대중의 힘을 결집해 구례 사성암을 호남지역 대표 기도도량으로 세워 놓겠다”고 전했다.

오산(鼇山)에서 떠오른 달이 휘어진 섬진강을 넘어가려 한다. 밤새 내려앉은 11월의 달빛에 암자의 새벽은 더 깊어진다. 멀리 내다보이는 산하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완전함과 온전함 사이의 간극을 체득한 때부터 시작됐다.

1998년 태국으로 떠났다. 선방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완벽한 낯섦에 자신을 떨어트려 거기서 이는 파문을 안아보고 싶어 떠난 길이었다. 정한 곳은 없다. 발 닿은 데로 가고 싶었던 곳이다. 

날 것 그대로 보고 싶어 큰 사원을 지나 산속 깊이 들어갔다. 비 정도는 피할만한 곳에서 홀로 정진하는 스님을 만나 바랑을 풀었다. 한 공간에 있었으나 수행시간대가 달라 동선은 크게 겹치지 않았다. 보름 즈음 포행 길에 두 수행자가 만났다. 찰나의 순간 나눈 미소 하나로 서로의 소통길이 열렸다. 정진 중에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 궁극에 닿을 곳은 어디인지 등의 법담이 이어졌다. 획일·단정·사유형식의 옳고 그름이 아닌, 땅속 감자 줄기처럼 수평으로 뻗어 나가는 사유형식의 리좀(rhizome)에 기반한 같음과 다름을 나눈 담론이어서 좋았다. 

시킴의 야생화와 칸첸중가.

네팔과 인도 사이에 솟은 칸첸중가(Kanchenjunga) 앞에 섰다. 세계 3봉으로 손꼽히는 태산의 둘레길을 짐 하나 들어 줄 포터(porter)도 두지 않은 채 시킴의 강토크(Gangtok)에서 욕섬(Yuksom)을 지나 고차 라(Goecha la)까지 걷고 또 걸었다. 설산 아래에 피어난 야생화는 찬연했고, 칸첸중가 남벽은 웅혼했으며, 일출과 함께 황금빛으로 변하는 고봉의 풍광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앵글에 담으려 하지는 않았다. 8450m의 고봉에서 내려오는 시린 바람 안으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실존 각인! 칸첸중가의 선물일 터였다.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곧장 ‘새로운 집’을 뜻하는 시킴(Sikkim)에 들어섰다. 까규파의 본산인 룸텍(Rumtek) 사원, 닝마파 대표 사원으로 손꼽히는 엔체이(Enchey) 사원 등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 수행자들의 일상과 궤를 같이하며 한 달 동안 정진했다. 티베트불교의 고졸함을 생생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1998년 시작한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미얀마, 라오스 등을 거쳐 2006년까지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그 여정에서 ‘완전’은 자신의 주장이 깊게 개입된 것이고, ‘온전’은 고정관념을 접고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것임을 새삼 깨우쳤다. 자연스레 사물과 사람,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렸다. 

‘수행자라면 세상을 온전히 보려해야 한다.’  

달빛 머금은 섬진강이 가슴으로 들어차는 순간 기형도(1960~1989) 시인이 떠올랐다.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서재에 꽂혀 있지 않았다. 늘 그러했듯이 ‘한 번 읽어 보라’고 누군가에게 건네주었을 것이다. 인터넷에 펼쳐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새겨갔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의 역사가 쓰인 1980년대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폭압’과 ‘저항’이다. 가느다란 불빛 아래서 책을 보던 청년, 선술집에서 정치 얘기하던 청년이 며칠 안 돼 보이지 않곤 했다. 기형도 시인이 전했듯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다. 대학생들은 가두시위를 하거나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저항운동을 벌여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는 지켜냈지만 군부독재 아래 짙어졌던 안개는 쉬이 걷히지 않았다. 희미한 길 위에 선 청년들의 방황은 그래서 지속됐다. 대학을 다니던 대진 스님도 그러했다.

책 몇 권 들고 지리산 천은사 도계암(道界庵)에 머물렀다. 경허, 성철, 청화 스님을 지나 티베트 최고 수행자로 손꼽히는 밀라레빠의 삶도 엿보았다. 가슴이 떨렸다. ‘깨달으면 된다. 길었던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화엄사 산문을 열었다.(1992)

낯선 곳으로의 여정 끝에서 건져 올린 건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의 승가교육·수행 체계에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습니다. 선원과 강원을 다니면서 그 어떤 역동성이나 참신성을 느끼거나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진부했습니다. 안일과 나태 속에 나의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무너져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신선한 충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떠난 길입니다. 그런데 되돌아와 보니 진부의 책임은 아상을 내세운 저에게 있었습니다.”

종단과 세상을 온전히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를 순례한 소감을 여쭈었다.

“간화선, 위빠사나, 밀교 모두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배’입니다. 자신의 근기와 원력에 따라 선택해 일로정진하면 될 일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어떤 수행법을 해야 하느냐?’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간화선을 추천하겠습니다. 한 가지 짚을 게 있습니다. 어떤 수행법을 동력으로 삼아 정진하든 자신이 증득해 가는 과정을 분명하게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궁극의 경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해도 그 이전의 체험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면 출발점에 서야 합니다. 반드시 50미터 지점을 지나야만 합니다. 그래야 피니쉬 라인을 밟을 수 있습니다. 어떤 훈련을 통해 속도를 높일 것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삭발염의 했다고 갑자기 완성된 수행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1년이든 10년이든 수행했다고 하면 어떤 마장이 있었는지, 그 마장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삼매에 들었다면 얼마만큼의 삼매인지, 삼매 후의 낙처는 무엇이었는지 수행의 전 과정을 소상하고도 또렷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찾아온 제자를 점검할 수 있고, 스승에게 점검을 받아도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수행경험이 집약돼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뜻이다. 수행의 출발선은 ‘자비’라고 강조했다.

“부처님께서 성을 벗어나 길을 떠났던 연유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을 향한 연민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기에 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자비에서 시작한 수행은 대자대비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불제자라면 누구든 복덕 쌓아가며 자비를 펼쳐야 합니다. 이 점을 간과하면 수행을 해도 삿된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플라톤과 니체, 하이데거를 필두로 한 철학과 문학·미술·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대진 스님이다. 

“불교 외의 전문지식 수준은 현저히 낮습니다. 책을 통해 배우려 합니다. 저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을 찾곤 하는데, 그 길에서 만난 생소한 것들을 사유하곤 합니다. 그 사유는 또 다른 책장을 열도록 합니다. 독서의 힘입니다.” 

절 밖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고 틈틈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다가가곤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2011년 1월6일 부산 영도조선소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외친 고공농성은 309일 동안 이어졌다. 그 어느 날, 크레인 아래 홀로 앉아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의 아픔을 보듬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허공에 걸린 그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갈등으로 찢겨나가는 사회 문제를 끌어안으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건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입니다. 최근에도 서울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앞부터 종로구 서린동 유엔인권위 사무실 앞까지 ‘미얀마 민주화 기원’ 오체투지를 봉행했습니다. 사회노동위의 행보는 늘 숭고하게 다가옵니다.” 

오산에 깃든 사성암 전경. 구례군청 제공

2017년 사성암 주지를 맡으며 일으킨 변화는 실로 크다. 도량이 청정해야 마음도 청정해져 가피를 입는다는 확고한 소신을 부임 직후 펼쳤다. 

허름했던 요사채는 과감히 허물고 그 위에 새 종무소를 지었다. 그 곁에 마애삼존불을 조성했다. 마애약사여래가 봉안 된 유리광전도 보수해 좀 더 친견이 용이하도록 했다. 또한 기존의 33불에 20불을 더해 53불을 봉안하며 53불전의 면모를 되살렸다. 이 공간에 500나한도 봉안했으니 53불전이자 나한전이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 소원바위 앞에 새로운 관세음보살을 조성했다. 산왕전도 새로이 단청했다. 

주지 취임 3년 만에 이뤄낸 불사들인데 이것은 시주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기에 가능했다. 사성암이 변모해 가는 만큼 신도들의 신뢰도 두텁게 쌓여갔을 터다. 유리광전, 53불전, 지장전, 산왕전 등 모든 전각에서 울려 나오는 사부대중 염불·기도 소리가 오산을 꽉꽉 채워가고 있다. 

유리광전으로 향한 길.

약사여래 12대원을 함축한 12대원상과 높이 18미터의 약사여래대불 조성 원력도 품고 있다. 마애약사여래, 12대원상, 18미터의 대불. 동쪽으로 무수한 불국토를 지나 있다는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정토. 동방만월세계 약사여래 정유리국(東方滿月世界 藥師如來 淨琉璃國)을 희망하고 있음이다!

“고통과 갈등을 치유해가는 사회, 그 누구도 아프지 않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불사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이뤄내고 싶습니다. 하여, 사성암을 호남지역 대표 기도도량으로 세워 놓겠습니다!”

11월 열어 본 기형도의 시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대진 스님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사성암 불자들에게 매월 보낸 엽서 중 지난해 12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소재로 한 글이 눈에 띈다.

‘… 12월 발끝을 바라보며 저도 새로운 발걸음을 준비하려 합니다. 살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래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바라다보며 어깨를 토닥여 봅니다. 오늘 하루는 거울 속 나에게 ‘잘 살았다’고 ‘수고 많았다’고 위로해 주세요. 저의 작은 응원을 보탭니다. 힘든 한해 모두들 살아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성암은 섬진강을 품고 있다.

오늘 밤에도 달빛은 섬진강을 넘어가기 전에 유리광전에 깃들 것이다. 새벽이면 염불 소리가 숲에 스며들 것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대진 스님은
1992년 화엄사 입산.
1996년 해인사에서 혜암 스님을 계사로 종지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2002년 직지사에서 녹원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96년 해운정사 금모선원을 시작으로 4안거 성만.
2002년 중앙승가대 편입 졸업.
2013,09~2017,07 곡성 천태암 주지.
2017,05~2019,12 화엄사 성보박물관 관장.
2017,05~2019,12 화엄사 불사 도감.
2017,11~현재  구례 사성암 주지.
2018,11~현재 중앙종회의원.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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