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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당 혜원 대종사, 지리산 꽃비 맞으며 ‘환지본처(還至本處)’

  • 교계
  • 입력 2021.03.28 01:42
  • 수정 2021.03.28 06:00
  • 호수 1580
  • 댓글 4

3월27일, 영결·다비식 종단장으로 쌍계사서 엄수

선·교·율을 겸수하고 이·사에 회통하며 한국불교의 큰 기둥으로 자리매김해 온 ‘지리산 무쇠소’ 고산당 혜원 대종사가 벚꽃의 배웅을 뒤로하며 법비 속에 지리산의 품으로 돌아갔다.

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 종단장 장의위원회는 3월27일 쌍계총림 쌍계사 도원암 앞마당에서 ‘고산당 혜원 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을 봉행했다. 특히 봄의 길을 재촉하는 법비가 내리고 지리산 일대를 수놓은 벚꽃도 만개해 영결·다비 법석과 행렬을 장엄했다.

영결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영결식장에 진입하는 모든 사부대중이 소독과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가운데 봉행됐다. 명종 5타로 시작된 법회는 개식 및 삼귀의, 동주, 선훈 스님의 영결 법요, 헌향 및 헌다, 행장 소개, 추도입정,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추모가, 헌화, 인사말씀, 사홍서원으로 이어졌다. 법석에는 조계종 원로의장 세민, 부의장 원경 대종사, 총무원장 원행, 중앙종회의장 정문,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경우,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영진, 천태종 총무부장 월장 스님 등 대덕 스님들과 주호영, 김두관 국회의원, 가수 조영남 씨 등이 참석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영결사에서 “선교율 삼장에 모두 투철한 안목을 갖추신 대종사님께서는 대중의 법도를 세움에 추호의 흐트러짐을 용납지 않으셨고 잠시도 쉬지 않고 정진하라는 석가세존의 유훈을 실천하셨다”며 “대종사님께서 남겨주신 큰 염주는 저희에게 수행과 전법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무언의 부촉일 것”이라고 가르침을 기렸다.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는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 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수행뿐만 아니라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신 행정력을 겸비한 선지식으로 후학의 귀감이 되어주신 고산당 혜원 대종사 각영 전에 ‘운문 삼전어’ 법공양을 올린다”며 “역겁(歷劫)에 매하지 않고 진리의 삼매락(三昧樂)을 누리시기 바란다”고 추모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세민 스님도 추도사에서 “큰스님의 자애스러운 모습과 대방무외한 선지와 대기대용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며 “대중의 비원을 저버리지 마시고 삼계왕래에 자재하는 기용으로 사바의 인연을 맺어 이 땅에 다시 한번 조계선풍을 드날려 주시길 기원한다”고 발원했다.

조계종 종회의장 정문 스님 역시 조사에서 “종횡무진 방방곡곡에서 펼쳐 주시던 그 사자후를 이제 들을 수 없다는 큰 슬픔을 주체할 수 없다”며 “후학과 제자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은 스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전법도생에 힘쓸 것”이라고 염원했다.

이어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경우,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이원욱 국회 정각회장,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조사를 전했다. 이밖에도 이 자리에서는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이 행장을 소개했으며 가수 조영남 씨가 고산 스님의 글에 곡을 붙인 추모가를 불러 숙연함을 더했다.

 

문도대표 인사에서는 보광 스님을 대신해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이 “여러가지로 어렵고 힘든 시절에도 은사 스님을 보내드리는 이 자리에 원근각지에서 참석해주신 대덕 스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후학들은 은사 스님의 꾸짖음까지 항상 새기며 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결식 이후 고산 스님의 법구는 쌍계사 입구에 위치한 차 시배지에서 헌다 의식을 가진 이후 평소 스님이 직접 일구던 밭을 돌아 연화대로 이운됐다. 연화대는 영결식장에서 도보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국사암 인근 쌍계연지 위쪽에 마련됐다. 스님의 법구와 만장 행렬이 연화대에 도착하는 동안 굵어지고 얇아지기를 반복하는 법비가 내렸다. 비와 함께 지리산 일대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벚꽃들도 그대로 연화대의 장엄이 됐다. 이윽고 다비식이 엄수됐다. 사부대중의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고산 대종사의 법구는 허공을 휘돌며 솟아오르는 불꽃과 연기 속에서 지리산의 품으로 홀연히 돌아갔다.

고산당 혜원 대종사는 1933년 12월9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입산 출가 해 3년 간 행자생활 후 1948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출가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스님의 삶은 치열했다.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선원 등에서 화두를 붙잡고 정진하면서도 부처님 경전과 율장을 놓지 않았다.

스님은 수행의 과정에서도 전법과 사찰불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대중화에 앞장섰고, 1975년 폐사에 가깝던 쌍계사 주지를 맡아 대대적인 불사에 착수하면서 교구본사로서의 사격을 갖췄다.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를 창건해 도심포교의 토대를 닦았으며, 통영 연화사에도 부처님 도량을 세워 낙후된 지역에 불연의 씨앗을 심었다.

‘지리산의 무쇠소’라고 불리기도 한 고산 스님은 평생 수행자로서 강직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했다.

스님은 수행과 포교의 남다른 행적으로 1998년 종단사태로 혼란한 상황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며 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다. 이후 절차상 하자에 의한 선거라는 법원의 판결로 1999년 총무원장 재선거가 치러졌지만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물러난 스님은 통영 연화사에서 수행과 포교에 매진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다. 2006년 원로의원, 2008년 조계종 전계대화상에 이어 2013년 9월 쌍계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돼 마지막까지 후학들을 지도했다.

‘춘래만상생약동 추래수장대차기 아어일생환인사 금조수섭귀고리(春來萬像生躍動 秋來收藏待次期 我於一生幻人事 今朝收攝歸故里)’ 스님은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 가을이 오면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내 평생 인사(人事)가 꿈만 같은데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라는 의미의 임종게를 남겼다. 그리고 3월23일 오전 8시46분, 쌍계사 방장실에서 세납 88세, 법랍 74세로 원적에 들었다.

한편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49재는 3월29일 쌍계사에서 초재를 봉행한다. 이어 4월5일 2재(쌍계사), 12일 3재(석왕사), 19일 4재(혜원정사), 26일 5재(쌍계사), 5월3일 6재(연화사)가 진행된다. 49재 막재는 5월10일 쌍계사에서 봉행된다.

하동=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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