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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현장에서 만난 선지식들

기자명 희유 스님

개관  20년 준비 앞두고 분주
행사 가능 여부 고민하기보다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
이런 이들이 진짜 선지식

마스크가 일상이 되어서인지 좀처럼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어느새 곁에 와 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 옷차림에도 봄이 왔다. 봄과 함께 마스크 없는 일상도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마음이 설렌다. 

요즘 우리 복지관은 무척이나 분주하다. 돌아오는 4월1일이면 문을 연지 만 20년이 된다. 복지관이 스무 살 청년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 곳에서 어르신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사회참여활동을 하신다. 어르신들을 위해 영양사는 어제, 오늘 달래장을 만들어드렸다. 오랜 대체식으로 지친 어르신이 기력을 잃을까 걱정해 봄나물을 준비한 것이다.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이쁘다. 또 사회복지사들은 20년 전 복지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용하신 어르신을 찾아 인터뷰를 하며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물어본다. 

며칠 전에는 무척 오랜만에 한 어르신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많이 연로해져서 괜시리 가슴이 찡해 눈물이 날 뻔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못하고 집에서만 계시니 활동량이 적어 갑작스럽게 변화하셨다는 것이 단박에 느껴졌다. 하루 빨리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어르신들에겐 복지관이 약이고 건강을 유지하는 곳인가 보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하루 빨리 다시 만날 수 있길 기원하며 그간 변화한 환경에 적응 잘 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복지관 환경도 많이 바뀌었고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많이 준비해 어르신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면서 갑작스럽게 어르신들이 오실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스무 살 청년이 된 복지관이 어르신들의 노후를 활기차고 편안하며 즐겁게 이끌어 드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느라 오늘도 까만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모두가 열심히 20주년을 준비하지만 이 또한 온라인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하는 수 없는 일이지만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복지관의 많은 직원들이 밤을 잊은 채 열정을 불태우며 앞으로의 20년을 보다 더 알차게 만들기 위한 걸음을 힘차게 걷고 있지만 정작 어르신들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믿음이 있어야 거센 물결을 건너고 게으르지 않아야 바다를 건너며, 수행에 힘써야 고통을 떠날 수 있고 지혜로워야 청정함을 얻느니라.” 

‘별역잡아함경’의 말씀처럼 믿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부지런히 지혜를 채워갈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는 불을 밝히고 있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키오스크 안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내 손 안의 복지관 구축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행이 따로 있을까. 이런 것이 수행이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믿으면서 한 길로 충실히 묵묵히 걸어가는 것, 이것이 정진이다. 

그러고 보니 센터 직원들이 선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구도 여행을 떠났을 때 여러 양상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도를 구하는 것처럼 복지현장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이 곧 선지식이다. 

희유 스님

“선지식은 곧 자애로운 어머니이니 부처님의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요, 선지식은 곧 자애로운 아버지이니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네”라는 가르침처럼 선지식은 큰 스승이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며, 훌륭한 의사이고 뱃사공이다. 인생에서 선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 복지현장에서는 많은 선지식이 나를 공부하게 만드니 이보다 좋은 도량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희유 스님 서울노인복지센터 시설장 mudra99@hanmail.net

 

[1579호 / 2021년 3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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