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 문화재 찾는 순간 등골 찌릿…송광사 진영 회수가 최종 목표”
“도난 문화재 찾는 순간 등골 찌릿…송광사 진영 회수가 최종 목표”
  • 정주연 기자
  • 승인 2021.04.02 21:51
  • 호수 1580
  • 댓글 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

추리소설 좋아하다 ‘탐정’ 매료돼 법학 전공하고 2010년부터 사범단속반 근무
12년간 되찾은 도난문화재 수천 여점…1년 200일 출장 미행·잠복·허탕이 일상
조계종 표창장 수상 “성보는 기도하던 우리 어머니들 신심·원력이 빚은 유산”
올해 3월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을 만났다.

2014년 5월 어느날, 한상진(41)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경찰과 함께 한 건물을 급습했다. 건물은 가시덩쿨로 뒤덮혀 있었다. 헐어가는 지붕엔 틈새마다 잡초가 무성했다. 철제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갈색 테이프로 칭칭 감은 비닐 덩어리가 보였다. 한눈에도 금동불상임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니 건물벽에 핀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건물 안에 널브러진 종이 박스가 족히 수백 개는 넘어보였다. 신문지로 둘둘 말려있는 건 탱화였다. 고개를 들자 천장에 녹슨 구조물이 훤히 보였다. 온도, 습도, 조도는커녕 환기조차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한 반장은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교미술에 빠져 불교문화재를 보호하는 게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며 인터뷰하던 A사립박물관장의 사설 창고였다. 그가 30여년 간 사들인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찰에서 사라진 성보였다.

불법으로 수집한 유물 양은 상당했다. 사립박물관 지하 1층 수장고로는 감당이 되지 않자 본인 집 근처에 주택 3채, 컨테이너 박스 2개를 사들였다고 했다. 그 공간마저 부족하자 사돈 친척 명의로 경기도 성남에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더 마련했다. A관장으로부터 회수한 문화재는 3000여점. 곰팡이가 서린 눅눅한 박스엔 국보급 문화재도 여럿 있었다.

압수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A관장은 조사를 받았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그 다음엔 웃음을 보였다. “장물인 줄 모르고 샀다” “내가 이 그림을 사지 않았으면 해외로 반출돼 행방조차 몰랐을 것” 등등 허언만 되풀이 했다. 선의취득을 주장했다. 법망을 피해가려는 꼼수였다. 1970년대부터 불교문화재에 관심을 가져온 그가 장물인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사범단속반이 치밀하게 준비한 증거 앞에서 그 꼼수는 하나하나 무너져 내렸다. 한 반장은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12년 전통사찰 방재시스템이 구축되기 전까지 사찰 법당 및 전각은 도둑·도굴꾼들의 주 무대였다. 수법도 기상천외했다. 어떤 범인은 신심 깊은 불자로 가장해 법당에 들어와 기도하는 척 머무르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불상을 훔쳐갔다. 도난방지 장치선을 절단기로 자른 후 법당 벽을 뚫고 불화를 뜯어간 일도 있었다. 심지어 복장물을 훔치기 위해 5m가 넘는 불상 안으로 들어가 2박3일을 버틴 도둑도 있었다.

오랜 기간 사범단속을 전담한 한 반장은 문화재 도굴범 조직 체계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직접 문화재를 훔치는 ‘행동대원’과 이들을 관리하는 ‘상선’으로 나눠졌다. 두목 격인 상선은 평소 각종 문화재 정보를 입수해 도난·도굴을 기획한다. 이후 행동대원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문화재를 훔치도록 지시한다. 평소엔 고서방을 운영하거나 수집가 등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물건을 사는 자를 ‘윗선’이라 부른다. 윗선을 쫓다 보면 사회 지도층이나 전문직에 있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한상진 반장이 A관장이 은닉했던 구례 천은사 나한상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한 반장은 이들을 추적한다. 사범단속반이라고 해봐야 고작 3명이지만 이들은 전국에서 도난된 문화재를 회수하고 관련 사범들을 단속한다. 그 덕에 1년 중 150~200일은 출장이다. 혹 첩보를 놓칠세라 어딜가나 ‘업무폰’은 꼭 쥐고 다닌다.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달려가야 한다. 남들은 5년에 한 번 교체한다는 자동차 타이어를 반년에 한 번 갈아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상이 잠복과 미행. 허탕 치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망설일 틈이 없다. 바삐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10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한 반장은 어린 시절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다. 작은 단서 하나로 인간 심리까지 꿰뚫어 보는 에르퀼 푸아로의 추리력이 매력적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등 명탐정·대도들과 함께하며 ‘탐정’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그를 처음 알아본 건 강신태 전 사범단속반장이었다. 1983년부터 28년간 사범단속반에 근무하며 도난문화재 7264점을 되찾은 그가 후임자로 한 반장을 콕 집은 것이다. 입사 1년 만에 문화재정책국에서 안전기준과 사범단속반으로 발령이 났다. 강 전 반장은 한 반장의 타고난 넉살과 승부 근성이 마음에 들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는 것도 사범단속반원에 꼭 들어맞았다.

물론 소설과 현실은 달랐다. 덜미가 잡힌 범인들은 문화재를 볼모로 오히려 협박을 해오기도 했다. 보통 “도자기를 바다에 버리고 잠적하겠다” “경전을 불태워버리겠다” “탱화를 찢어버리겠다”는 식이다. 유물을 안전하게 회수하는 게 목적이기에 황당한 이들 주문에도 설득과 회유를 거듭하며 참고 기다린다. 안 해본 운동이 없을 만큼 다부진 체력이지만 실랑이가 지속되면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있다.

“그래도 제 일이니까 해내야죠. 1~2년 전에 사라졌던 문화재가 회수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통상 5년 이상이죠. 긴 시간을 찾아다녔던 문화재가 내 눈 앞에 있을 때 그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어요. 등골이 다 찌릿찌릿 하죠. 그 기쁨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돼요. 우리가 찾았던 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특히 이들 문화재가 국보·보물이란 이름을 달고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모습을 볼 때면 피붙이를 다시 만난 듯 뿌듯한 마음이죠.”

최근엔 고창 선운사 ‘석씨원류’ 목판을 찾아냈다. 조선 성종 17년(1488) 왕명으로 제작돼 임진왜란으로 한 차례 소실됐던 것을 인조 26년(1648) 새롭게 복간한 목판이다. 석가모니 일대기가 글과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조선 삽화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지난해엔 조선 제12대 임금 인종(재위 1544~1545)이 스승인 하서 김인후(1510~1560)에게 하사한 ‘묵죽도’ 목판을 추적했다. 그랬더니 고구마 줄기처럼 도난됐던 목판 문화재가 쏟아졌다. 충남 무량사의 ‘원각경’ 목판과 ‘목조불좌상’도 함께 회수됐다.

1999년 ‘삼국유사’ 권제2 기이편 목판본을 빼돌린 범인도 잡았다.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범인은 “우리집 천장에 숨겨놨다”고 자백했다. 2013년 창원 상천리 절터에서 도난된 ‘석조여래좌상’은 한 재력가 별장 정원에서 발견돼 회수했다. 그가 말한 ‘등골이 찌릿'한 순간들이었다.

한 반장이 도난문화재 회수에 열정을 쏟은 것은 신심 깊은 어머니 영향이 컸다. 뿌연 비닐에 둘둘 싸여있던 불상이 사찰로 여법하게 돌아갈 때면 방 한 켠 자그마한 불단 앞에서 아침마다 자식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좌복에 앉아 향을 사르고 진언을 외우는 그 뒷모습은 한 반장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성보는 단순한 문화재를 떠나 우리 어머니처럼 과거 수많은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이 빚어낸 유산입니다. 저마다 가슴저린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죠. 그런 유물들이 원소장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건 우리 몫입니다.”

올해로 12년 째 사범단속반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 반장. 그동안 그의 손으로 되찾은 유물만 수천여 점에 이른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조계종에서 표창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2012년 6월 퇴직한 강 전 반장과의 약속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강 전 반장이 퇴직 전 그에게 맡긴 일이 있다. 바로 보물 제1043호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 진영’을 꼭 찾아야 한다는 당부다.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후기 활약했던 16명 고승을 그린 진영이지만 1995년 이 가운데 13점이 도난됐다. 현재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강 전 반장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서원하며 오늘도 한 반장은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다.

성보 환수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12월 조계종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보살행 2021-04-07 14:03:59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나라의 보물이자 불교문화재 중의 일부가 이와 같은 분들의 노력이 있으셨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절에 들렀을때 저절로 숙연해지고 발심의 원력을 일으키도록 영향을 주는 우리의 문화유산!!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깨불자 2021-04-06 02:14:14
감사합니다.

호법신장 2021-04-05 16:58:10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짝짝짝짝

無影塔 2021-04-04 23:35:56
참으로 장하십니다.
늘 건승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
더욱 크게 번참하십시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asanga 2021-04-04 14:19:01
유익한 기사에요...종단 큰스님들 비위 맞추는 기사 말고 이런 기사...불자나 스님들이 진짜 알아야 할 기사 많이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