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제59칙 풍혈피구(風穴皮裘)
60. 제59칙 풍혈피구(風穴皮裘)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1.04.05 13:51
  • 호수 1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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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에 의거해도 얽매이지 않는 선문답

상징으로 표출된 언설 이해 못하면
선문답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어
수미산을 마음으로 표현한 풍혈
상식 초월한 자유로운 정신 추구

승이 풍혈에게 물었다. “저에게 친절한 이치란 무엇입니까.” 풍혈이 말했다. “수미산의 남쪽에서는 다함께 북을 치고, 하란산 위에서는 가죽옷을 쌓아놓는다.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는 임제종의 제4세이다. 수미산은 불교의 우주관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명칭이다. 그 남방에 인간세계인 섬부주가 위치한다. 하란산(賀蘭山)은 몽골의 동쪽 오늘날에는 감숙성(甘肅省)에 편입되어 있지만, 20세기 전반기에 한때 영하성(寧夏省)에 속했던 은천(銀川)의 서북쪽에 있다. 황하가 연접해 있고 몽골초원에서 섬서성(陝西省)과 감숙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한다.

본 문답에 나오는 친절한 이치[親切處]는 대단히 적절한 모습을 의미한다. 승은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어울리는 수행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누구에게나 적합한 분야 내지 어울리는 적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일찍이 이해하고 찾아서 활용하는 사람은 그만큼 앞서갈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모범이 될 수가 있다. 손쉽게 생각하면 더울 때는 시원한 곳으로 가고 추울 때는 불 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뻔히 덮고 추운 줄은 느끼면서도 정작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승은 풍혈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속이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방법에 대하여 묻고 있다.

풍혈은 그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상징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상징이란 선문답의 특징이기도 하면서 매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아가서 상징으로 표출된 언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선문답에 제대로 참여할 수가 없다. 때문에 선문답에서는 항상 상징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여기에서도 수미산과 하란산은 모든 사람이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당처로 제시되어 있는 삶의 터전이고 수행의 도량을 의미한다. 수미산은 인간세상으로 보면 우주의 중심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가리킨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를 설정해두고 있는 것은 대단히 상상력이 풍부하게 투영된 개념이다. 자신이 마음에 탐‧진‧치‧아만‧의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경우를 욕계로 설정하였고, 물질에 대하여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경우를 색계로 설정하였으며, 욕망과 물질의 개념을 초월하여 살아가고 있는 경유를 무색계로 설정하였다. 바로 그와 같이 삼계를 분류하는 기준이 수미산이다.

따라서 풍혈은 수미산의 남방에 해당하는 섬부주의 인간세계에서는 모두가 어울려 북을 치고, 하란산 위에서는 가죽옷을 쌓아놓고 햇볕에 말리는 모습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북소리를 듣고 그에 어울리는 노래와 춤을 추는 것은 일상에서 유희하며 살고 있는 모습이고, 가죽옷을 쌓아놓고 햇볕에 말리는 것은 누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으로서 수행이고 교화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는 노동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답변에 대하여 승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친절한 수행방식을 찾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가령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해변에 사는 사람일 것이고, 뛰어난 언변을 보여주는 사람을 보면 본토박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선문답은 바로 이와 같은 상식에서 철저하게 의거하면서도 그러한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 상식을 초월할 줄 아는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한다. 승에게 참으로 적절한 수행방식이란 다름이 아니라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질문으로 제시한 언설처럼 모르는 것을 묻고 아는 것을 확인하며 깨친 것을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굳이 형이상학의 고답적인 답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풍혈은 여기에서 불자라면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수미산을 끌어들여 그것으로 상징적인 답변으로 멋지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질문과 답변이라는 일종의 언설형식에 근거하면서 그 말자취를 초월하여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일깨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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