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앵무새 - 상
7. 앵무새 - 상
  • 김진영 교수
  • 승인 2021.04.06 09:50
  • 호수 1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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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참된 의미 알려준 반려조

로마 때도 신성한 동물로 규정
아이큐 높고 인간과 교감 잘 해 
옛시절 잊지 않는 선우 돋보여
타자에 행하는 미덕 가치 성찰

앵무새는 화려한 색감과 인간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능력 때문에 특별히 사랑받는다. 고대 로마에서는 앵무새를 인도 왕실에서 기르는 신성한 동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앵무새는 약 300여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데, 특히 케아(Kea)앵무가 크고 IQ가 높아 주목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귀한 학(鶴)과 반대로 기계적으로 말을 반복하거나 말재주만 뛰어난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미물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잉꼬(いんこ)라고 불리는 사랑앵무(Budgerigar)는 금실 좋은 부부를 비유할 때 주로 사용된다. 불교경전이나 인도우화에 등장하는 앵무새는 목도리앵무(Indian Ringneck)로 부리가 붉은 인도 앵무새이다. 주로 베다를 암송하거나 도덕적 지혜를 갖춘 영험한 동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도 인간과 교감을 잘하고 말을 유난히 잘 따라하기 때문에 가장 인기있는 반려조(伴侶鳥)이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에도 앵무새가 자주 등장한다. 앵무새를 빨리어로 수까(suka)라고 하는데, 큰 앵무새의 전생이야기인 ‘마하수까 자따까(Mahāsuka-jātaka)’와 작은 앵무새의 ‘쭐라수까 자따까(Cullasuka-jātaka)’에 나타난 앵무새는 나무와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두 자따까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므로 ‘마하수까 자따까’의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갠지스 강둑의 앵무새 왕은 자신이 살던 우담바라 나무의 열매가 다 떨어졌음에도 다른 나무로 옮겨가지 않고 싹, 잎, 껍질 등을 조금씩 먹으며 자족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의 행복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제석천(帝釋天, Sakka)은 앵무새 왕의 공덕을 시험하기 위해 나무를 시들게 만들어 버린다. 메마른 나무의 가루와 강물로만 연명하면서도 앵무새 왕은 나무를 떠나지 않는다. 제석천은 기러기로 변장해 앵무새 곁에 날아가 나무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앵무새 왕은 나무에 대한 감사와 우정 때문에 떠나지 않는 것이며, 진실과 선을 생각하는 덕 있는 존재는 생사고락과 흥망성쇠 때문에 친구(sakha)를 버리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에 감복한 제석천은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하라고 하는데, 앵무새 왕은 주저 없이 나무를 살려 달라고 한다. 이에 제석천은 강물로 나무에 관정(灌頂)을 하여 나무를 살리고 열매를 맺게 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제석천이 바로 아나율(阿那律)이며, 앵무새의 왕이 부처님이셨다. 부처님이 이 앵무새 전생을 말씀하신 이유는, 한 비구가 주민들이 제공한 좋은 수행처에서 머물렀지만 우기에 마을에 화재까지 나서 음식공양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수행을 제대로 못했다는 고충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음식을 절제하고 수행처를 친구처럼 대해야 하는 이유를 마른 나무의 가루만 먹고도 우정을 버리지 않는 앵무새의 왕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비구에게 수행처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불교가 말하는 우정(Metti)의 참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앵무새 왕이 시든 나무가 제공하는 보잘 것 없는 음식에도 나무의 좋은 벗이 된 것과는 다르게 어리석은 존재(dummedha)는 친구와의 교제(mitta-santhava)에서 ‘자기중심적 생각(attaṭṭhapaññā)’에 사로잡혀 친구를 버린다. 평범한 새가 열매를 얻기 위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가는 것은 열매만 취하고 나무를 베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인간처럼 어리석다. 앵무새 왕은 자신과 고락을 같이 한 나무가 어려운 시절을 맞이해도 그 나무를 버리지 않는 선우(善友, kalyāṇa-mitta)가 된다. ‘사분율(四分律)’에 선우칠사(善友七事)라는 참된 벗의 일곱 가지 조건이 나온다.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하기 어려운 것을 하며,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비밀스러운 일을 서로 말하며, 잘못을 서로 덮어주고, 괴로운 일을 만났을 때 버리지 않으며, 비천할 때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등이다. 아난다(Ānanda)는 이러한 선우를 갖고 있다는 것이 성스러운 도(道)의 절반을 성취한 것과 같은 것이냐고 부처님께 묻는다. 이에 부처님은 “반이 아니라 전부”라고 답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앵무새의 왕과 나무의 우정은 우리가 친밀한 타자에게 행할 수 있는 고귀한 미덕의 온전한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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