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도와 광고의 잣대

기자명 윤원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방송이나 신문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안다. 자기와 가족, 직장, 그리고 가까운 주변의 일이야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자기 일상 생활의 영역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런 대중언론 매체의 보도를 보고 아는 것이다.

신문, 방송 등 대중 언론 매체의 보도 기능이 현대인의 생활에서 얼마나 필수불가결한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통신과 수송 수단의 발달이 물리적으로 세상을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언론 매체의 보도 기능은 우리의 의식을 범세계적인 차원으로 넓히는 데 결정적인역할을 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언론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신문이든 방송이든 보도라는 것은 진실을 표방하면서도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는 이미 별개인 것이다. 보도할 거리를 선정하는 데에서 이미 진실 전체를 담지 못하고 재단해서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어느 특정 기사거리에 대해서도 지면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전달할 것만 편집해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 편집은 불가피하나 그 순간 이미 왜곡이 저질러진다는 그런 근본적인 제약을 이미 안
고 있는데다가, 기자와 편집자가 나름의 의도를 품고 기사를 만들면 더욱 첨예한 각도로 왜곡이 저질러진다.

그런 의도적인 왜곡 여부는 보도 매체의 가장 기본적인 품위를 가늠할 수있는 척도가 되는 것인데, 요즘 보면 심지어는 보도 매체를 창건하는 실질적인 취지부터가 자기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실상에 대한 대중의 눈을 의도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데 있는 경우도 왕왕 본다. 특정 집단을 대변하려는 취지에서 기관지를 발행한다거나 하는 것 그 자체는 비난할 거리가 못된다. 다만, 그런 기관지의 품위, 권위, 그리고 생명까지도 여느 보도매체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신빙성에 달려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빙성의 구축은 남이 안 해 주는 자기 집단의 실상 전달을 정확하게 하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무턱대고 자기를 변호하고 무턱대고 남을 왜곡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제 무덤 파는 짓이 될 뿐이다.

불교계의 신문, 방송 등 보도 매체들도 늘 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도 단순히 불교계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믿고 경청할 만한 의견과 기사를 전달해주는 매체로서 신빙성과 권위가 구축하기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교계 내부에서부터 어느 신문은 어느 세력의 것이요 어느 방송은 누가 장악했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나온다는 소리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상업 광고의 문제이다. 광고를 싣는 것은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 기업적 경영을 위해 필수불가결이다. 독자와 시청자들도 그 점은 잘 알고 양해하며, 또한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독자들이 그런 구분을 꽤 잘 할 수 있게 되자, 어떻게든 그 구별을 흐리게 하려는 광고 기법이 개발되고 신문의 제작자들도 묵인해준다. 심지어 요즘 시중의 일간신문들을 보면, 신문 제작자가 먼저 나서서 기획특집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은 상업 광고인 것을 진짜 기사로 만들어 내보내는 기법도 구사되고 있다.

한편, 교계 신문의 경우에는 불교계 신문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고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예를 들면 승려를 내세워 보신 식품이니 그림이니 도자기니 하는 것들을 광고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부적(符籍) 장사라 할 만한 것인데, 승려를 앞세운 그런 광고를 불교계 신문이 실어준다는 것은 독자들에게는 그 신문이, 나아가 불교계가 그 상품을 인정해주었다는 의미로 읽히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몇 해 전에 그 비리가 시중에 폭로되어 물의를 일으킨 어느 승려에 대해, 해당 종단은 그이가 정식 승려가 아니고 사미계만 받았을 뿐이며 물의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파문했다고 해명했었다. 그런데 그 한참 뒤에 바로 그 종단 소속의 어느 교계 신문에는 그이의 법회와 저서 광고가 큼직하게 실려서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아무리 재정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라 해도, 적어도 교계의 언론 매체들은 상업 광고도 깐깐하게 선별해 실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너무 야속한 요구일까?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