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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종식

기자명 황태연
선진국 경제는 근력(筋力)중심·자원기반의 외연적 경제발전 패턴에서 두뇌중심·지식기반의 내포적 발전패턴으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다. 이 두 발전패턴은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영향에서 정반대 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중화학공업 위주의 근력중심·자원기반 산업화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비서구제국의 인력과 자원을 침탈·경략해야 하는 제국주의 활동으로 내몰렸다. 동시에근력중심·자원기반 산업 체제는 대량으로 소모되는 자원과 동력을 얻기 위해 지구 곳곳을 파헤치고 공업적 생산과정에서 대량의 산업폐기물과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반환경적 경제체제였고, 주로 남성적 근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친남성적·반여성적이었다.

이에 반해 지식·정보통신·문화산업에 기초한 두뇌중심의 지식기반 산업화는무형자원(지식·정보·문화)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물적 자원과 인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따라서 영토면적, 부존자원, 인구규모가 열세한 소국도 21세기에는 부강대국(富强大國)이 될 수 있다. 근력중심의 자원기반 산업이 고정된'자연적 비교우위' 경제라면, 두뇌중심의 지식기반 산업은 인간의 노력여하에 따라가변적인 '인공적 비교우위' 경제체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경제체제는 물적자원을 매우 적게 필요로 하므로 자원채취 과정에서 자연파괴도 줄고 생산과정에서 공해도 적은 친환경적 산업이다. 자원기반 경제가 하드웨어 중심 경제라면, 지식기반 산업은 소프트웨어 중심 경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강한 근력을 필요치 않는 지식기반 산업은 양성친화적인 산업이다.

지식기반 산업화가 보여주는 새로운 경향 중에서 그래도 역사적으로 가장 결정적인 측면은 제국주의를 종식시킨다는 것이다. 지식기반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은 대규모의 인력과 자원을 필요치 않기 때문에 후진국의 인력과 자원을 수탈·착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간 남북무역은 세계무역의 20% 안팎으로 가파르게 감소되었다. 세계무역의 대부분은 OECD 국가끼리의 역내무역(域內貿易)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의 경우에는 대외무역에서 남북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말에 이미 거의 제로에 접근했다. 선진국은 이제 후진국의 자원과 인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종식을 뜻하는 것이다.

외자유입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도 선진국 기업의 개발도상국 진출 의도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이제 시대착오가 되었다. 반대로 개발도상국들은 어떻게든 투자환경을 개선하여 외국자본을 유인해야 하는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래야만 투하된 외국자본으로 설립된 기업에서 자국민이 일자리를 구하고 정부가 세금을 걷고 기술과 경영기법이 자국 안에 파급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역사는 '반제항쟁(反帝抗爭)'의 시대에서 '투자유치 경쟁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 나라 같은 개도국에서 유행하던 좌우익의 민족주의적 반외세주의(反外勢主義)는 더 이상 애국이 아니라 국익을 해치는 시대착오적 해국(害國)행위로 변하였다. 오늘날의 애국은 반외세주의가 아니라 세계를 벗삼아 살아가려는 세계주의이다. 지식기반 산업화에 따라 제국주의가 종식됨으로써 세계시장,세계시민사회, 세계시민적 민주주의와 인권협약이 요청하는 세계주의에 늘 따라다니던 마지막 의구심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주의 정신으로 나라를 구한 예는 오늘날 얼마든지 있다. 가령 광산과 중공업의 몰락으로 1960-70년대에 처참하게 유럽의 '제3세계'로 전락하였던 영국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지방은 미국, 일본, 한국 등의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하여 다시번영하는 지역이 되었다. 40%에 육박하던 지역 실업률은 10%대로 낮아지고 공공문화시설은 다시 빛깔을 내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 태백시의 '확대판'이나 다름없던 과거 탄광지역 웨일즈는 이미 1980년대 중반에 런던으로부터 받는 보조금보다 많은 세금을 중앙에 상납하는 흑자지역으로 변모하였다.

21세기는 가능한 한 많은 외국 자본을 자국에 유치하여 가능한 한 오래 묶어 두어야만 재력과 기술과 정보가 축적되는 새로운 시대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의 저변에 횡행하는 반외세적 행태의 극복 여부가 21세기 한국을 좌우할 것이다.


황태연/동국대 교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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