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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파업과 집단이기주의

세간의 삶은 언제나 어수선하다. 그 풍경을 전하는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가뭄에 웬 파업?”이라는 큼직한 신문 표제들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가뭄으로 온 나라가 목타고 있음에도 항공대란이 일어났다고 아우성이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병원 파업이 벌어졌다는 부르대기도 쏟아진다.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도 이어진다.



노사갈등 부정적 현상 아니다

노사 양쪽의 사이에 서서 두 당사자들을 모두 나무라는 것이 중도(中道)이거나 중용(中庸)의 미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냉철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도나 중용이 한낱 양시양비(兩是兩非)론이나 기회주의적 처신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먼저 노사갈등에 대한 우리들의 ‘무명’(無明)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는 노사 갈등을 마치 일어나서는 안 될 일로 생각한다. 초등학교 입학이후 십여 년 넘도록 사회화 되어오면서 그렇게 배운 까닭이다. 노동쟁의와 파업이 일어나면 하루속히 사라져야 할 부정적 현상처럼 인식하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노동운동, 노조 합법화 이끌어내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갈등은 결코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노사갈등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를 민주화해온 동력이었다. 만일 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부딪치며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지금과 확연히 다른 살풍경일 터이다.

가령 지금은 대다수 나라가 받아들이고 있지만, 노동조합을 합법화하고 하루 8시간 노동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 숱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바쳤다.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마구 처형한 것이 유럽의 역사였다. 불과 100여 년 전 미국경찰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향해 서슴없이 발포하는 야만적인 학살극을 벌였다. 만일 노동자들이 전혀 싸우지 않았다면, 우리들 대다수는 여전히 생존권을 위협하는 저임과 빈곤의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을 터이다. 지금도 지구상의 적잖은 나라들에서 어린이들이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있지 않은가.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끊임없이 인간화해온 것은 바로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노동자들이었다. 유럽에서 노동운동이 보편적인 사회문화로 인식되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에서 노동운동 현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이미 수 십여 년 전에 사라진 야만행위로 기억되고 있다. 이를테면 몇 해 전 프랑스에서 월드컵 축구가 개최되었을 때 프랑스 항공사들이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어떤 프랑스 언론도 “월드컵에 웬 파업?” 따위의 보도를 하지 않았다. 물론 파업을 하면 시민들로서는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럽의 사회구성원들은 그 불편을 민주주의 발전의 ‘비용’으로 인식한다. 기실 시민들 대다수가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곧 노동자 아니던가.

과거와 달리 한국사회가 상당부분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억압받고 있으며 임금삭감과 실직의 공포 앞에 놓여있다. 게다가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의사결정과정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지시만 받고 있다. 유럽에서 작업장 민주주의 운동이나 노동자들의 경영참여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자주적 노동운동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에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자 권리이다.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화두처럼 떠오르는 경구가 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견강부회일까. 하지만 저 봉건시대의 임제(臨濟)선사가 오늘 살고 있다면 대다수가 노동자들인 중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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