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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옷'과 서울의 '옷'

기자명 원철 스님
신라 김유신장군에게는 보희와 문희라는 두 누이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서악에 올라서서 소변을 보았는데 오줌이 서라벌에 가득차는 것이였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하도 이상하여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듣자마다 바로 '용꿈'임을 알아차린 슬기로운 동생 문희가 그 꿈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였다. 비단치마 한벌로 그 값을 치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유신은 김춘추와 공놀이를 즐기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을 밟았다. 그리하여 옷끈을 떨어지게 한 후 누이동생 보희로 하여금 꿰매게 하였다. 그러나 보희는 남녀간의법도에 맞지 않다고 사양하였다. 이에 동생 문희로 하여금 꿰매어 달게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에 자주 내왕하게 되었다. 더불어 두사람의 우정도 깊어져갔고 아울러 문희와의 사랑도 함께 깊어갔다. 그리하여 뒷날 문희는 문명왕후가 되었다.

꿈값으로 비단치마를 지불하는 문희의 과감성과 함께 찢어진 옷고름을 매개로 하여 결국 왕족으로 편입되는 오누이는 오늘날 '옷 로비'의 길을 터 놓았다. 본의 아니게.

일천여년 전의 서라벌 '그 옷'은 그래도 낭만적이었는데 요즈음 서울의 '그옷'은 온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무심코(?) 한 말(실은고급정보)이 아내가 이를 우정과 같은 종교라는 이유 때문에 그 모임의 대모(代母)에게 넌지시 알려주자, 결국 당사자 부인에게까지 전해져 미리 대비를 하게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잘못 꼬여 오히려 일파만파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왜 '그 옷'이 문제가 되는지는 다 알고 있다.

첫째, 당사자가 현직에서 법을 다루는 최고위 공직자라는 사실이다. 둘째, 공적인 고급정보가 사사로운 통로를 통하여 밖으로 빠져나온다는 사실이다. 셋째, 우산준비(?)를 알리는 장소가 기상청과 함께 종교단체·자선단체까지 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사람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서로 보호해주고 감싸주는 음성적인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전체의 정의실현보다는 어느 계층과 단체의 이익을 더 우선하는 이중성 때문인 것이다. 정치·경제 분야야 본래 그런 곳이라고 해두더라도 이제 종교공간·봉사단체마저도 그 존재의의와 투명성을 의심받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 인사치레성 덕담이라고 믿고 싶고, 또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옷값을 깎아주는 디자이너를 '애국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회지도층의 옷값을 깎아주었기 때문(이는 '짐이 곧 국가'라는 중세적 사고와 연결)이 아니라 탁월한 디자인 능력으로 국위선양한 업적 때문에 그렇게 불렀겠지만. 어쨋거나 '장아함 선생경'에 지아비가 아내를 경친하는 조건 중에 '옷'을 때에 따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옷이 필요하면 지아비에게 이야기 할 일이다. 말도 하지않고 남편 몰래 직접 마련하려 나서는 것은지어미의 도리가 아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옷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아주자비로운 여성 수행자가 있었다. 언제나 옷차림이 단정하였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덕지덕지 기운 것 마저 다 헤어진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자비심이 일어났다.

"내가 이 옷을 그대에게 주겠으니 그대가 입은 옷을 나에게 주시겠습니까?" 그리하여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그러나 여성 수행자가 헤어진 옷을 입고 다녀 속살이 다 보이니 입방아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처님이 이 일을 듣고는 그 여성 수행자를 불러서 타일렀다. "여자들은 좋은 옷을 입어도 오히려 좋지 않거늘 하물며 헤어진 옷이랴." 그 뒤로부터 여성 수행자들은 더욱 옷을 잘 갖추어서 입어야 했다.

지도층 부인들이 자기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몽땅 벗어주어 남편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듣는 날은 언제 올런지.


원철 스님〈화엄학림 강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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