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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멸의 징후

기자명 윤원철
유신 정권은 그 숱한 비판과 저항을 잘도 깔아뭉개더니 결국 그 권력 내부 가장 깊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총질을 해서 숨을 거두었다.
역대 정권의 수족으로서 권세를 떨쳐온, 모시는 주인이 바뀌어도 끄덕 없이 건재하고 옛 주인에게까지도 거침없이 치도곤을 안겨대던 검찰도, 치명타는 역시그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온갖 것에 갖다 붙여 들먹이던 이른바 "민심"도, "국민정서"도 완전히 무시하며 버티던 법무장관이 부하의 주정한 마디에 재깍 목이 날아가 버렸다. 거 참 하도 신통한지라, 법무장관에 대한민심에 골치를 앓던 청와대가 그 검사에게 부탁해서 주정을 부리게 한 것 아니냐는 설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옷바람" 경우에는 들끓는 여론을 억지로 거스르며 조사결과를 보고 나서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버티더니, 이번 주정 사건은 진상 조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우선 재깍 장관 목부터 쳤고, 그리고 나서야 엄정한 조사를 지시했다니 그런 의심을 할만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튼 무리(無理) 또는 비리(非理), 곧 이치에 안 맞으며 도리가 아닌 억지가 성공하는 듯할 때 바로 그것이 이미 자멸의 징후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자멸의 징후가 터져 나왔다. 다이옥신에 오염된 수입 돼지고기 때문에 난리가 난 것이다. 수입 육류가 판매 금지되고, 국산 돼지고기를 고르는 방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쎄, 국내 축산업자들에게는 섭섭한 소리겠지만 국산 육류는 과연 정말 깨끗한가 하는 의심도 든다. 우리도 다이옥신 얘기는 오래 전부터 심심찮게 나온 터인데, 혹시 검사를 안 해서 검출이 안 되었을 뿐이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안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우리를 으스스하게 만드는 것은, 이 다이옥신 파동이 혹시 인류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숙이 자멸의 길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아닐까하는 짐작이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위해 인류가 저지르는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이 엄청난 가속도로 도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마침내 생명의 불가결한 질료 가운데 하나인 물이, 또 일분에도 몇 번씩 마시고 뱉어야 하는 공기까지도, 그 누적된 독소를 더 이상 희석시키지 못하고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산성비가 내린 것은 오래 전부터이다. 비가 오면대기 속의 오염 물질을 씻어주어 잠시 하늘이 맑아진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로 가는가? 땅으로, 강으로, 바다로 가서 쌓일 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지와 바다가 아무리 광대하다 해도 그것을 무한정 품어 녹여줄 리가 없다. 바야흐로 대지에서 돋아나는 식물에까지 그 독소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인류의 생명 시계는 23시 59분 59초라는 뜻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번파동은 다이옥신에 오염된 사료에서 비롯되었다는데, 누가 일부러 타놓은 것은 아닐 테고, 자,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이게 과연 국산돼지고기만 골라 먹으면 피해갈 수 있는 일이겠는가 말이다.

마침 또, 매연 단속에 걸린 차량을 갖고 오면 수리는 하지도 않은 채 증명서만 떼어준 정비소가 적발되었다는 보도를 듣는다. 수리비보다 좀 적은 액수로 해결되었다고 행복해 하는 손님과 짝짜꿍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다른 건 하나도 안보이고 오직 돈에 환장한 그이들도 어쩔 수 없이 세상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나의 연분(緣分)이라, 그런 이들만을 탓하고 있을 일도 아니다. 도도하게 진행되는 자멸의 수순을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저 이 한 몸만이라도 자연의 이치 앞에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만이 내가 기울일 수있는 정성이 아닌가 싶다.


윤원철/논설위원·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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