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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감독의 삭발

기자명 원용진
"이제 정말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든 기분"이란다. 지난 번 스크린 쿼터 논쟁에서 판정승을 거두었다고 자평했던 영화인들은 이번에는 큰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 내에서도 스크린 쿼터 문제에 대해 이견이 생겨 문화관광부가 영화계의손을 들어주었지만 이번은 아니라고 한다. 언제까지나 영화계를 보호하는 입장에서만 설 수 없다는 뜻을 문화관광부가 슬쩍 내비쳤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벌어진 서해안 교전 그리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 등 일련의 사건들로 미국의 스크린 쿼터 감축요구를 예전처럼 무시하기 힘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들을 더욱 괴롭힌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해보기로 결정했다. 머리를 깍고, 미국 영화계를 찾고, 정부에 강력 항의하고, 다른 문예 단체들과 제휴하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기로 했다. 소중한 문화적 자원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세계 영상시장에서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패권의 영구지속을 위해 참으로 많은 공세를 펼치고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슬로건을 등에 업고 영상물도 자유롭게 시장경쟁의 혜택을 입어야 한다고 역설할 뿐 아니라 각종 보호책들은 자유무역의 위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공세 덕에 이미 많은 지역에서는 영상사업이 빈사상태에 이르렀고 헐리우드의 영상물로 극장과 텔레비전 화면이 채워지고 있다.

유럽은 국가간 연합을 통해 헐리우드의 공세를 막아내려 하지만 역부족임을 인정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상산업의 작은 거인이었던 홍콩도 헐리우드 영상의 진입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미국 영화의 직접배급, 프린트 벌수 제한 철폐, 잦은 스크린 쿼터 축소요구로 불안함으로 뒤덮혀 있다. 미리 '우산을 준비한' 일본 정도가 영화시장을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스크린 쿼터는 그같은 세계 시장의 조건을 감안해 자국영상 시장을 보호 육성하려 마련된 적극적인 제도다. 이는 자국의 영화가 안정되게 시장 점유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제도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난 우리 영상산업의 입장에서는 스크린 쿼터는 참으로 소중한 보호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영상문호의 중요성과 고부가가치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이 기회에 그 보호막을 걷어내라는 미국의 요청, 그에 화답하려는 정부의 방침 등에 대해 영화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제 물러서면 다시는 영상산업, 영상문화를 살려낼 길이 없을 거라며 행한 삭발은 봉두난발의 문화행정에 대한 강력한 항의임에 틀림없다.

영상물을 단순히 상품논리로만 파악해서는 안된다는 영화인들의 주장은 옳다. 한 사회가 다른 사회와 차별성을 가지며 살아갈 가장 소중한 방법은 자신의 정체성이 없다면 그 사회는 남에게 쉽게 동화되어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영화는그런 점에서 상품으로만 여겨져서는 안되는 소중한 문화적 요소다. 영화인들의처절한 저항이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져서는 안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수단이 점차 사라짐을 안타깝게 여기며, 일관성을 잃고 있는 문화행정 관료들을 일관하는 영화인들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정당하다. 이 올곧은 소리를 가진 영화인들이 더 이상 거리에 나서지 않고, 삭발을 하지 않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게 배려할 지혜를 짜내는 정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용진/동국대 교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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