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 김종두 부국장(경향신문 전략기획본부)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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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를 방문하다 보면 흔히 눈에 띄는 글귀가 하나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가 그것이다. 이는 평소 무기며 장비를 잘 갈고 닦아 비상시에 적절히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구호이다. 대부분 수송부 정비창에 붙어 있는 이 글귀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이르는 말이다. 군대야 전쟁을 억제하고 비상시에는 즉각 전투에 임해야 하므로 유비무환의 정신을 늘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비무환의 정신은 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나 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단체에도 적용되는 용어다. 지금 우리사회는 유비무환의 정신이 사그러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언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겪었나 싶을 정도로 해이해져 있다. 해외골프관광이 하루 300여명에 달하며 미국 원정출산도 1년에 5천명에 이르렀다는 보도다. 그런가 하면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거나 납치극을 벌이는가하면 멀쩡한 부녀자를 납치해 살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급기야 자식이 부모를 굶겨죽이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 뿐이 아니다. 마약은 가정주부들에게까지 퍼져 나가고 있으며 학교폭력은 백주에 교실에서 동급생을 살인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사회지도층의 비리는 또 어떤가. 연초부터 각종 게이트가 활개를 치더니 급기야 대통령의 세아들 ‘3홍’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막내는 희대의 최규선게이트로 이미 구속됐고 둘째는 측근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가 구속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비리를 저지른 시장·군수들의 구속도 줄을 잇고 있다.

정치판은 더욱 가관이다. 이제는 난장판으로 가고 있다.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후보들이 쏟아낸 ‘깽판’‘양아치’, ‘쪽팔려’, ‘미친당’ 등 막말들은 유흥가 조폭들이 쓰는 말들이나 다름없다. 언어폭력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도대체 이들이 국가를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어느 예비역 장성은 사석에서 이를 두고 “우리나라에 지도층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은 불을 뿜고 있는 한일월드컵대회 때문에 국민들의 정신이 모두 월드컵에 팔려있고 언론 또한 월드컵 중계에 바쁘니 그 많던 부정덩어리가 일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하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면 곧바로 각종 비리와 정치권의 추태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러할 것이니 5년전 맞은 IMF체제가 또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당해봐서 그러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믿지만 정권교체기에 나라가 중심을 잃고 방황한다면 또다시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마 부처님이 이러한 나라꼴을 보고 계신다면 빙긋이 웃으시면서 “이 놈들아 아직도 정신 못차렸나”라고 한 말씀하실 법도 하다. 나라가 어려울 수록 우리 불자들이라도 지혜를 모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이다.

옛날 어느 고승은 인생지사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회가 온통 비리로 얼룩지고 정치권이 아무리 난장판이라해도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저지르는 일쯤으로 치부한다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려니 하면 말이다. 그러나 온갖 부정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그것도 대통령의 아들들이 연루된 비리를 보고 있으면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혼란은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대의멸친(大義滅親)의 정신을 보여야 한다. 월드컵기간이라해서 검찰도 수사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아니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월드컵대회에만 정신을 둘 것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육신을 초개와 같이 바친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한번 쯤 생각해 보고 나라꼴을 반성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 닦고 조이고 기름칠할 때이다.


김종두 부국장(경향신문 전략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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