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문 휘휘 감은 연꽃같은 가람
나와 운문사의 인연은 십 수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그림은 새 천년 벽두(2000년)에서야 이루어 졌다. 늘 일행과 함께 하던 관례를 깨고 홀로 금남(禁男)의 도량에 머물며 며칠을 묵었기에 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어느 절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루 사시를 머무를 때 가람의 온전한 향기를 접할 수 있게 되는데 특히 밤과 새벽의 산사 분위기는 각별한 느낌이 든다.
나는 당시 새벽예불을 마치고 뜨락의 거대한 반송(천연기념물 제180호)이 달빛에 어려 월송(月松)이 된 산사에 머물렀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수 백년을 달과 조우하며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어온 반송. 현재의 가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지켜오며 도량을 지켜온 생명이 아니던가. 나는 그 날 방으로 돌아온 즉시 먹을 갈아 ‘운문사의 월송’을 그렸고, 날이 밝자 소나무 속에 들어가 장엄한 가지의 용틀임과 기세를 만끽하며 붓을 들었었다.
한편 승가대학 후원의 은행나무 한 쌍은 꼭 부부의 환생처럼 보였고, 다리건너 목우정(牧牛亭)의 연못과 주변생태는 참으로 아기자기 했다. 또 새로 조성한 야외 수목원은 가히 야생화 천국으로 가꾸어지고 있었는데 이곳 소나무들의 위용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다. 즉 비구니 도량의 살뜰함과 해맑은 따스함이 가람의 향기로 배어 나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계곡을 거슬러 사리암으로 오르는 길. 협곡 위의 낙엽송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옷을 갈아입고 그 아래로 흐르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그 옥빛 구슬처럼 영롱한 물빛을 진정 잊을 길 없다.
가람의 전경을 그리기 위해 호거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절은 마치 연꽃이 피어나는 형국이다. 즐비한 거송(巨松)이 구름과 함께 골골이 잠겨 있고 호쾌한 도량은 특이한 방위로 자리잡았다.
어디가 산문인지 도시 알 수 없는 운문사. 실로 일주문이 따로 없는 구름문을 뚫고 휘적휘적 산문을 걸었다. 그 날이 새삼 그리워진다.
이호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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