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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을 살리는 길

기자명 정병조
다른 학문분야가 눈부신 발전과 변혁을 이루는데 비해 불교학은 여전히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연구자의 절대수가 부족하다. 내용은 둘째치고 불교학 관련의 논문을 쓸 수 있는 이가 승속을 망라해서 100명이 못된다.

군계일학이라고 했던가. 이래서야 도무지 불교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동국대학의 불교학부에서 배출하는 불교학·인도철학·선학전공의 학부생 숫자도 40명을 넘지 못한다. 이 가운데 대학원 진학을 하는 이는 스무명도 안된다. 내가 대학생이던 60년대에도 동국대학에는 세 과가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공은 셋이고, 학생수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불교학 전공졸업생이 2천명을 넘는다. 공공연히 불교학 관련 논문은 더 이상 쓸 것이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다음으로는 내용적면이다.

역사학·철학·종교학 등 인문학분야에서 마지못해 불교를 끼워주기는 한다. 그러나 중심역할이라기 보다는 구색 맞추기처럼 느껴진다. 논문이나 저술의 질도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 까닭은 예상외로 단순하다. 다른 학문분야에서는 인접학문과의 연계(costudy), 응용학의 방법론을 모색하는데 비해 우리는 여전히 훈고의 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불교학 관련의 전공분류는 여전히 화엄·천태·선학 등을 고집하고 있다. 이제 과감히 그 학문구조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불교심리학 하면, 그 안에 구사(俱舍)·유식(唯識)을 포괄시킬 수 있다. 불교윤리학이라고 하면 반야(般若)·계율(戒律)·보살계(菩薩戒) 등을 망라할 수 있다. 불교사회학이라고 하면 화엄·법화선 등이 모두 포함되지 않는가. 동시에 현대학문과의 접목을 시도할 수 있고, 불교학의 응용문제에도 천착할 수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불교라는 우리들 만의 정서·언어·가치속에 안주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에 원효나 의상연구를 위해서는 미국유학을 떠나야 할런지도 모른다. 신앙과 학문은 같으면서 다르다. 같아야만 자기 연구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을 혼동하면 신앙과 학문이 모두 죽고 만다. 철저한 객관성 유지가 학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불교학 관련 논문은 거의가 법문(法門)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심각한 자기 반성과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논문으로 말하고 논문으로 비판하는 풍토는 사라지고 감성적으로 분개하는 일에 익숙해 있다. "제 까짓 것이"하는 하찮은 자만심 때문에 학문의 발전 대신에 끊임없는 감성적 대립만을 일삼고 있다. 나의 선생 故 이기영(李箕永)교수가 '원효사상'이라는 책을 냈을 때, 비판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한결같이 "언제 제가 한문공부를 했냐?" 아니면 "참선도 못해본 이가 무슨 깨달음 운운이냐"하는 원색적이고 몰상식한 욕설뿐이었다. 나는 좀더 이성적인 비판을 기대하였다.

그는 '원효사상'을 통해 당시의 지식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 내용의 분석이나 응용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순서이지, 그의 학문적 역량을 문제삼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다. 우리 불교학계는 여전히 그와같은 비판아닌 욕지거리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나는 후배들에게는 이와같은 줄서기의 폐단, 훈고학적 전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 좀더 원전해석에 충실하고, 역사나 종교·철학 등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과감히 질적(質的) 변환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제자들로부터 "선생님, 그 논문의 어디는 틀렸습니다."라는 질책을 받고 싶다. 불교학이 살아야 불교가 산다. 불교가 살아야 나라가 건강해 지는 법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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