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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일면불·월면불

기자명 법보신문

건강 염려하는 이에게 오히려 깨달음의 경지 보이다

마조대사가 병상에 눕자, 원주(院主)가 찾아와 병문안을 드렸다.

'요새 건강이 어떠하십니까.'

이에 대사가 대답했다.

'일면불(日面佛)·월면불(月面佛)!'

『전등록』에 의하면 서기 788년 2월 4일 미세한 병의 증세를 나타낸 대사는 목욕한 뒤에 결가부좌하여 입적했다는 것이니까, 이 문답도 그 날의 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 화두를 다룬 설두선사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일면불·월면불!

오제삼황(五帝三皇)이 다 그 무슨 말뼈다귀?

이십년(二十年)이나 갖은 고생 다했나니 그대 탓에 몇번이나 창룡(蒼龍)의 굴 찾았던가.

억울토다! 어찌 이르랴!

슬기로운 선객도 부디 소홀히 말라.

日面佛 月面佛. 五帝三皇是何物.

二十年來曾苦辛, 爲君幾下蒼龍窟.

屈. 堪述. 明眼衲僧莫輕忽.

△五帝三皇. 성인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제왕들. △何物. 무슨(어떤) 것이냐. 物은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포함한 온갖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二十年 긴 수행 기간을 나타내는 말. 三十年을 쓰기도 하니, 꼭 실제의 시일을 이름은 아니다. △爲君. 君(그대)은 이런 말을 한 마조대사. 또 깨달음을 의인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屈. 억울한 것. △堪述. 여기서 堪은 반어(反語)로 쓴 것.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는 뜻. △明眼衲僧. 총명한 선승. △輕忽. 소홀. 경솔.



마조대사쯤 되는 이의 입에서는 빛이 나온다. 지금도 그러하니, 일면불이 1800년이나 사시는 데 비해 단 하루밖에 못 사심이 월면불이라 하지만, 이렇게 두 이름이 연결되어'일면불·월면불'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순간, 이 표현은 반야의 지혜 자체인 빛임이 된다. 이렇게 빛으로 바뀐 언어라면 언어 아닌 빛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길이라 해야 한다. 게송 첫머리에 마조대사의 '일면불·월면불'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옮겨놓은 설두선사의 뜻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니, 실질적으로 게송은 이 한 마디에서 완료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빛을 빛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언어인 줄 여기는 사람이 허다함을 잘 아는 처지에서는 여기서 붓을 거둘 수도 없어, 그래서 사족을 붙인 것이 '오제삼황'으로 시작되는 둘째 시구다. 오제니 삼황이니 하는 이름은 중국인에 있어서 신성시되어온 신화 속의 제왕들이다. 그것을 '그 무슨 말뼈다귀냐'고 깎아내렸으니 송(宋)의 황제 신종(神宗)이 불온하다 하여 『벽암록』의 대장경 편입을 막은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여기서 배격된 것이 어찌 오제와 삼황 뿐이랴. 세간·출세간을 가릴 것 없이 온갖 존재·온갖 가치가 깡그리 부정당한 것이 어서, 그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일면불·월면불'로 표현된 반야의 광명임을 뜻한다.

그리고 설두선사는 자기의 수행하던 시기를 회고하는 쪽으로 게송의 방향을 틀어, 얼마나 창룡의 굴을 찾아다니며 갖은 고생을 다했던가 하며 감회에 젖고 있다. 창룡의 굴이란, 한 사나이가 자맥질하여 물 속에 들어가 졸고 있는 청룡을 발견하고는, 그 턱 밑에 걸려 있는 구슬을 따가지고 왔다는 우화가 『장자』에 있어서 이를 인용함이거니와, 선의 입장에서는 깨달음(구슬)이 언어(창룡) 속에 있는 듯 착각해 수행하는 일쯤이 되는 터이므로, 반드시 실패(죽음)로 끝나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할 것이다. 기실 깨달음이라 하나 자기의 본성(본래, 면목)에 눈뜨는 일일 뿐이라면, 이런 각성에 입각해 회고할 때 어찌 피어린 뉘우침이 아니되겠는가. '억울하다'느니 '어찌 이르랴'는 절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질문과의 관계다. 스승의 병을 걱정함이 원주의 물음인 데 대해, 마조대사는 오직 원주를 비롯한 제가들 모두가 무명의 잠에서 깨어나 각자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도록 한 줄기 광명을 놓은 것일 뿐, 제 생사 따위는 터럭만큼도 괘념함이 없었다 해야 하리니, 마조대사의 마조대사다운 면목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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