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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7분의 미덕’을 음미하자

기자명 법보신문

꽃잎을 피웠다가 다시 스스로 접을 수 있는 꽃은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를 추스리는 힘과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꽃잎을 피웠다가는 다시 접지 못하는 꽃은 곧 시들어 떨어진다. 자기를 추스리는 힘과 미덕을 잃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 10분의 욕망 탐익



사람도 자기 몸의 기(氣)에 따라 몸을 폈다가는 굽혀주어야 한다. 벼슬길도 나아갔다가는 세상 이치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이것이 삶의 도이다. 사람이 몸을 펴기만 하고 굽히지 못하거나, 벼슬에 나아갈 줄만 알고 스스로 물러나는 법을 모른다면 그것은 죽었거나 죽을 징조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쯤 이르렀을 때 굽히고 물러나야 하는 것일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그 때를 적절하게 잡는 것은 참 어렵다. 조선후기에 은일지사로 일생을 보낸 안석경 선생은 매사에서 7분(分)에 이르면 중지하라고 충고했다.

벼슬이든 음식이든 7분이면 좋고 10분이면 가득찬다고 했다. 7분을 넘어 10분에 가깝게 되면 해로움이 반드시 생긴다. 가령 동서남북의 마지막인 북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으며, 춘하추동의 마지막인 동에서는 한해살이가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욕망을 마음껏 다 채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 하더라도 바로 가득 채워진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질시를 받게 되거나 하늘의 응징을 받는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의 목표는 몇 분을 채우는 데 있을까? 내 안의 힘을 ‘충분(充分)’히, ‘십분(十分)’ 발휘하겠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을 보면 우리의 잠정적 목표는 ‘10분’인 것 같다. 7분은 물론 9분도 미흡하다. 대학 성적에서 7분은 C 인데, 학생들과 교수 어느 쪽도 그 점수를 만족스런 것으로 보기는커녕 최하의 점수로 인식한다.

이렇게 10분을 목표로 정한 사람들에게 적당히 스스로 그만두거나 물러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죽지 않고 살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하길래 죽는 순간 삶에 대한 갈애가 전광석화처럼 태아에 달라붙을까. 그러니 수명을 10분 누리려 하지 7분으로 만족할 사람을 찾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인간 배아 세포가 복제되었다고 한다. 찬반 논의가 분분하지만, 이윤 앞에 맥을 못추는 자본주의가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안에 알츠하이머 병을 비롯한 불치의 병들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해가는 과학의 모습이 놀랍도록 우람하다.

가령, 장기가 생기기 전의 배아는 생명체가 아니다는 논리를 만들어 인간 배아 세포 복제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생명체를 장기 존재 여부로 따지는 그들의 논리는 너무나 천박하다. 장기란 똥이나 오줌, 땀을 만드는 곳이 아닌가? 그것이 인간 생명을 확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란 말인가. 그들이 ‘전광석화’처럼 붙은 혼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7분에 만족하는 이 아무도 없어



과학의 끝없는 발전의 도달점은 어디일까? 불치나 난치의 병이 사라진다면 과연 인간의 수명에 대한 욕망은 얼마나 과장될까? 길어질 수명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는 인간들에게 수명을 더 늘리기보다는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의 7분 정도를 누리고 만족하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분 중에서 3분을 덜어내고 7분만 누리기는커녕 10분에서 3분을 더 보태어 살기를 추구할 존재가 지금의 우리들이다. 10분을 13분으로 늘리고, 그것을 다시 더 늘리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만원이 된 지구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탐욕의 인간들이 예견되는 이 뒤숭숭한 때일수록 진정하게 사는 길이 무엇이고 참답게 죽는 길이 어떤 것인지 조용히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7분의 미덕을 명상해야 할 때다.



이강옥 교수(영남대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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