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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교포럼 지상중계 "제3의 수행법을 묻는다"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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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법으로 보기엔 아직 꺼림칙…”

“일시적 반짝 효과 유도하는 방편일뿐”-종호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

“새로운 수행방법 가치성 인정해야”-오원명〈명상 아카데미 원장〉

“간화선이 최고 단정 가능할지 의문”-전재성〈한국 빠알리성전협회장〉

“불교지도자들 능력부족도 문제”-김열권〈위파사나 수행자〉




한국불교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이 건재함에도 최근 들어 세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제3의 수행법에 대한 첫번째 본격토론이 벌어졌다. 제3 수행법이 과연 불교적 수행법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불교포럼(공동대표 박승원·김연규)과 동산불교대학이 공동 주최하고 법보신문이 단독 후원한 ‘제3의 수행법을 묻는다’ 주제의 포럼이 4월 24일 동산불교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홍사성 불교방송본부장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서는 오원명 명상아카데미 원장이 기조발표를, 동국대 선학과 교수 종호 스님,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 위파사나 수행자 김열권씨가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자- 최근 제3 수행법이 교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수행법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원명- 우리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간화선을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대중화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물론 불자들도 간화선이 아닌 다른 수행법을 찾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김열권- 동감입니다. 재가불자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화두 수행을 통해 확철대오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수행법을 찾는 것입니다.

종호 스님- 한마디로 재미를 찾을 수 있고 현상적으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간화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까.

오원명- 간화선이 최상의 수행법이라면 대중이 깨치고 해탈에 이르러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중은 그 단계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화선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가 대중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김열권- 가장 큰 문제는 불교 지도자들의 능력부족이라고 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최상의 수행법과 현실사이의 벽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간화선은 불자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할 만한 대안을 내놓은 것도 아닙니다.

전재성- 간화선이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일면으로는 화두만을 절대화하기 때문에 다른 수행법이 무시된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종호 스님- 간화선이 최상의 수행법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간화선은 한 마디로 최고의 구경각에 이를 수 있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태의 마하지관에 보면 ‘법화삼매 속에서 보아야 바로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관부사의경에 ‘한 생각속에 삼천 세계가 있고 그 하나의 생각을 묶어서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로 응집한 그것이 화두입니다.

이것을 풀어서 본 것이 점차지관 등 여러 수행방법이고, 이 가운데 최상의 방법이 간화선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볼 때 어떠한 체계를 따라야 할 지는 분명해집니다.

수행에도 분명히 단계가 있습니다. 수행중 일어나는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도 어떤 것이 ‘마’인지를 분명히 적시해 놓았습니다. 새로운 수행법을 통해 경험하는 현상이나 얻어지는 어떤 특수한 능력 때문에 이 수행법을 선택한다면 불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간화선에는 수행의 단계가 없어 배울 수 없다는 지적은 제대로 알지 못해서입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최근의 새로운 수행법들은 불교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종호 스님- 사회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수행법은 불교적 수행의 목적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외도선이나 범부선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불교적인 측면은 없다고 봅니다.

김열권- 간화선이든 제3의 수행법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정견으로 12연기를 관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3수행법에는 불교의 연기나 팔정도가 없습니다. 중도와 연기를 이해하고 팔정도를 실천하는 부처님의 수행법과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행이기 때문에 논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원명- 나라와 시대에 따라 새로운 문화와 종교사상이 꽃을 피웠습니다. 현재 서구에서 동양사상이 새로운 문화의 꽃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새로운 수행법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재성-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현재 붐이 일고 있는 수행법들을 모두 ‘불교적’이라 단언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제3수행은 특수한 심리적 기술과 명상 기술을 배우는데 불과한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적 수행이 아닙니다. 기술적 수행만 배우고 종교적 삶, 도덕적 양식을 갖추지 않는다면 진정한 수행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원명- 불교에서 제3의 수행이라고 하는 새로운 수행법들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다종교사회에 접어든 우리사회는 이미 종교간 첨예한 접점에 서 있습니다.

수행법 또한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수행법들을 살피고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제 3수행법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에는 상업화를 위한 일회성 수련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재성- 초기 경전에 따르면 팔정도가 곧 수행체계이고 윤리적인 체계이며 삶의 지향점입니다. 즉 윤리와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삼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바타, 마인드컨트롤, 마음수련회 등의 새로운 수행법들은 상업적 요소를 갖고 있으며 수행을 기술화하고 있습니다. 명상수행을 상업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의 수행체계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단순하게 테크닉과 기계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종호 스님- 수행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인 지향점을 분명하게 알고 수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일시적 심취나 재미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오원명- 요즘의 수행법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일정정도 공감합니다. 또 일종의 상업성을 띠고 있는 곳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수련(수행)의 기본적인 조건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데 있다면 무 자르듯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자- 새로운 수행법을 불교에서 말하는 구경각에 이를 수 있는 수행단계의 하나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호 스님- 잘못된 생각입니다. 천태학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교리와 실천체계를 점차지관, 원돈지관, 부정지관 세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수행체계가 어떠한 과정을 취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수행법이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새로운 수행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학문적으로 수행체계와 실천방법이 제시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 무엇을 위해 수행하는가에 따라 얻어지는 경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오원명- 천태 스님의 사상을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수행법은 그 나름대로 추구하는 바가 있고 얻는 것이 있습니다. 제3의 수행법들이 갖는 새로운 수행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열권- 부처님은 탐진치 삼독을 끊고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을 수행으로 제시했습니다. 새로운 수행법들을 이러한 단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궁극의 해탈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자신에게 맞게 수용하고 정진한다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전재성- 제3 수행이 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일상의 삶을 변화시켜 가기 위한 노력이 동반될 때 참 수행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호 스님- 새로운 수행법들이 일정 정도의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면 삶의 변화는 필연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불교가 추구하는 구경각의 경지를 향해 진행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면 일정 부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원명- 새로운 수행이 불교의 근본을 깨닫게 할 수 없다는 점과 생활 속에서 집착을 끊을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오늘의 이러한 토론에 그치지 않고 간화선을 강조하는 스님들을 비롯해 각각의 수행법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부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수행법을 체험하고 문제를 파악해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수행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제 3수행에 대한 좀더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정체성 여부를 확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3수행에 대한 논의가 오늘 토론으로 그치지 말고 관련 전문가들의 활발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해 이 문제가 지속적으로 다뤄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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